주식(酒食)탐구생활㉙

호주 와인에 대해 풀어야 할 오해

박경은 기자

국내 와인시장에서 호주 와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어떨까.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만큼 고급와인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친근함이나 인지도 면에서는 칠레 와인에 밀리는 편이다. 대략 정리해 보면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1만원대 안팎의 싼값에 사서 편히 즐길 수 있는, 적당한 가성비 와인 정도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했을 때 호주 와인은 꽤나 오해를 받고 있다. 우선 호주는 세계 5위의 와인 생산 대국이다. 생산량으로 봤을 때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미국, 호주 순이다.

국내 수입통계를 보면 호주 와인이 갖는 애매한 위치가 대략 이해된다. 수입물량으로 봤을 때 호주는 칠레,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에 이어 6위를 차지한다. 금액으로 봤을 때는 프랑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미국, 이탈리아, 칠레, 스페인, 호주 순이다. 이 같은 순서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수입량에 비해 금액에서 차지하는 순서가 낮은 칠레 와인은 저렴한 와인이 대거 수입된다는 것이다. 물량이 많다 보니 인지도 면에서 유리하다. 반면 프랑스와 미국에서 수입되는 와인은 고가 와인의 비중이 높다. 상대적으로 고급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호주 와인이 갖고 있는 애매함의 이유이기도 하다.

품질면에서는 어떨까.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디캔터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주류 시상식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즈’(DWWA)의 올해 결과를 보면 호주 와인이 최고의 성적을 냈다. 출품된 1만8000여 병의 와인 중 최고점을 받은 50개 와인 중 10개가 호주 와인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각각 8개, 이탈리아는 7개로, 전통적인 유럽의 와인 산지를 품질로 이긴 셈이다. 지난해 같은 시상식에서도 호주는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톱 50개 와인 중 6개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또 지난해 국제와인챌린지에서는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정도면 국내 시장에서 받는 오해는 답답함을 넘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와인의 세계는 오랫동안 보수적인 편이었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스페인이 포진한 구대륙이 와인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왔다. 미국이나 호주, 남미 등 신대륙에서는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품질이나 인지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 같은 구도를 뒤집었던 사건이 1976년 ‘파리의 심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당시 출품됐던 미국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을 꺾어버렸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전파됐고 신대륙 와인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신대륙 와인으로 관심이 옮겨지긴 했으나 호주 와인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1995년 미국의 대표적인 와인매거진 ‘와인스펙테이터’는 호주 와인 ‘펜폴즈 그레인지’를 당시 올해의 와인으로 선정했다. 자연히 이 와인은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게 됐고, 세계 시장에서도 호주 와인의 가치와 위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

호주 프리미엄 와인의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펜폴즈, 하디스, 헨쉬키 등이 꼽힌다.

주요 와인 생산 국가마다 최고라고 내세우는 품종이 있다. 독일하면 리슬링, 스페인하면 템프라니요, 아르헨티나는 말벡, 미국은 진판델이다. 호주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품종은 쉬라즈다. 펜폴즈 그레인지의 주요 품종도 쉬라즈다. 쉬라즈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며 산도와 타닌 함량이 높아 묵직하고 강한 맛을 낸다. 진한 맛과 개성 덕분에 21세기 들어 세계 와인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숙성 잠재력이 높아 오랫동안 숙성 시켜 마시기에도 좋다. 원래는 프랑스 론 지역에서 많이 자랐으나 현재는 호주의 쉬라즈 재배 면적이 전 세계 쉬라즈 재배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쉬라즈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은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순이다.

하디스의 와이너리          하디스와인 인스타그램

하디스의 와이너리 하디스와인 인스타그램

호주에서 최대의 와인 생산지는 애들레이드가 있는 남호주 지역이다. 시드니, 캔버라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즈주,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도 전통적으로 포도를 많이 재배해 왔다. 남단의 섬 태즈매니아도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한다. 서호주 지역의 마거릿 리버는 올해 와인 어워즈에서 수상한 제품을 많이 낸 산지로 각광받았다.

코르크 마개 대신 스크류캡을 주로 사용하는 것도 호주 와인의 특징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대다수는 스크류캡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스크류캡은 저가 와인에 사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코르크 손상으로 인한 와인 변질 등을 방지하고 편의성을 높인다는 장점 때문이 다른 와인 생산국에서도 사용 비중이 늘고 있다.

아콜레이드 그룹 총괄 와인 메이커 헬렌 맥카시가  하디스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영 FBC제공

아콜레이드 그룹 총괄 와인 메이커 헬렌 맥카시가 하디스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영 FBC제공

호주 프리미엄와인에 대한 국내 시장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호주의 주요 와인 회사들은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 6일에도 프리미엄 와인 하디스를 생산하는 호주 최대규모 와인기업 아콜레이드 그룹의 총괄 양조 책임자 헬렌 맥카시가 방한해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을 선보이며 시음 행사를 열었다. 그는 “하디스가 추구하는 가치는 확실성(Certainty)”이라며 “어느 해의 어느 제품을 골라도 균질하게 우수한 품질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제품 유지가 가능한 것은 서로 다른 지역의 우수한 포도를 가지고 블렌딩해서 약점을 보완하는 생산 방식 덕분이다. 호주 전역에 포진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포도밭에서 최고의 포도를 찾아 한병의 와인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땅이 넓지 않고 원산지별 재배, 생산 규정이 엄격한 유럽과는 달리 국토가 넓은 호주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지역을 아우르며 블렌딩하는 이 같은 제조 방식은 하디스가 호주에서 처음으로 시도했고, 이후 호주 와인업계에 퍼지면서 호주 특유의 양조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하디스를 생산하는 아콜레이드 그룹만 해도 서호주 마거릿 리버부터 동쪽 빅토리아주에 이르기까지 호주 전역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호주 와인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데다 상대적으로 선입견이 적은 젊은 소비자층이 시장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이 같은 부분은 개선되고 있다”면서 “실제로 많은 국제대회에서 호주의 와인들이 꾸준히 수상하면서 객관적인 우수성도 입증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6일 시음회에서 선보인 와인                      아영FBC 제공

6일 시음회에서 선보인 와인 아영FBC 제공

한편 그는 이날 하디스의 프리미엄 와인 3종(HRB샤르도네, 아일린 하디 쉬라즈, 토마스 하디 카베르네 소비뇽)을 소개했다.

‘토마스하디 카베르네 소비뇽’은 170년 전 하디스 와이너리를 만든 토마스 하디를 기리기 위해 만든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100%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국내에서는 2017년 빈티지가 판매되고 있다. ‘아일린 하디 쉬라즈’는 1960년대에 하디스를 이끌었던 아일린 하디를 기념하기 위해 출시했던 제품으로 국내에서는 샤르도네와 쉬라즈를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아일린 하디 샤르도네를 호주 최고의 샤르도네로 평가하기도 했다. HRB는 여러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해 만든 호주 최초의 프리미엄 와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 와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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