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 연재 이래 최고의 보부상을 만났다.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나의 멤버 서영택씨는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한 아름 품고 온 가방 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소지품에는 유독 목 관리를 위한 용품이 많았다. 팀 내 밝고 경쾌한 음색으로 ‘햇살 테너’를 맡고 있는 서씨의 목소리 비결이 그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
서영택, 모두가 반대할 때 ‘끝장’을 보다
서영택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와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2023년 <팬텀싱어> 시즌4에 도전하면서 이동규, 오스틴킴, 김성현과 함께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나를 결성했다. 1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들은 지난달 서울과 부산, 대구에서 진행한 단독 콘서트 ‘엠파이어(Empire)’를 마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다소 엄숙하고 무거운 클래식 무대에만 섰던 그에게 단독 콘서트는 팬들과 교감하고 웃음을 나눌 수 있었던 생애 첫 무대였다. 그는 성악에서 크로스오버로 전향한 후 ‘직업 만족도 최상’이라며 흡족함을 전했다.
“크로스오버 장르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만큼 노래를 할 수 있어 무대에 서는 것 자체로 감정 해소와 힐링이 돼요. 무대는 그동안 힘들고 지쳤던 모든 감정을 노래로 풀어내는 장소 같아요. 공연이 없는 날은 오히려 발산이 안 돼 답답할 정도예요.”
그가 프랑스 유학 중 <팬텀싱어>에 도전해보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과 부모님 모두 반대했다. 성악을 공부한 10년의 세월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는 <팬텀싱어>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석사(마스터) 과정을 마치고 에이전시의 권유대로 독일 무대에 진출했을 것이라 말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와중에 치열하게 생각했어요. 저는 한번 선택하면 끝장을 보는 타입이라 그동안 유학 생활에서 쌓은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결심까지 했죠. 부모님도 ‘만약 실패하고 유학길로 되돌아간다면 더 이상의 지원은 힘들 것’이라는 엄포를 놓기도 하셨어요.”
그는 <팬텀싱어>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최초의 포테너 그룹 포르테나에 합류했다. 네 명의 테너가 쏟아내는 부드러운 음색으로 그 어떤 그룹보다 확실한 색을 낼 수 있지만 음역대가 같다보니 조화로운 화음을 완성하기까지 더디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떤 그룹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음색이 저희의 강점이지만 ‘블렌딩’(어우러짐)이 남은 숙제예요. 그래서 서로 화음을 정하고 맞춰보는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일주일에 딱 하루 빼고 거의 매일 만나요. 게다가 모두의 지향점이 ‘평범하게 가지 말자’라서 다양하게 연습하죠.”
포르테나 결성 1주년이 됐다. 순조롭게 단독 앨범도 내고 콘서트도 마칠 수 있었다. 올해는 팀의 활동 방향성을 더 구체화하고 새로운 곡을 팬들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4명의 팀 적응기였다면 올해는 우리가 보여줄 음악에 대해 고민할 시기예요. 뻔하지 않은 포르테나만의 음악을 위해 다양한 장르 변화와 도전을 시도할 거예요. 올해는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안정적인 팀을 위해 집중할 때라고 생각해요.”
크로스오버 가수 서영택의 가방 속에는?
서씨의 묵직한 가죽 가방에는 목 관리 관련 용품이 가득하다. 목이 건조하고 잠길 때는 목 전용 온열 팩을 붙이고 홍삼을 먹는다. 감기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독일산 목캔디(겔로리보이스)와 프로폴리스 사탕을 먹는 것이 예방 노하우다.
“목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고 미지근한 물을 마셔요. 하루 2ℓ의 물을 마시는 건 성악을 시작한 때부터 만든 습관이에요. 지금은 건조하지 않은 계절이라 가습기까지 켜지는 않는데 겨울에는 자는 동안 기본 3대는 가동해요. 평소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재채기할 때도 목이 상할까봐 주의해요. 그만큼 목을 보호하는 것이 일상이 됐어요.”
목 관리 용품은 이게 끝이 아니다. 목 주변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챙기는 롤링 마사지기도 있다. 책을 선택할 때도 ‘목’을 생각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은 <강신주의 감정수업>. 여백에 연필로 꼼꼼히 써놓은 메모들도 눈에 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흥분은 목에 좋지 않기 때문에 명상하듯 독서해요. 책을 읽다 느낀 점을 사각사각 연필로 쓰다 보면 어느새 차분해지거든요.”
MBTI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가방 속을 보자마자 ‘파워J’의 향기를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그는 늘 태블릿PC 2대를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평소 가볍게 쓰는 용도, 다른 하나는 악보를 보는 용도다. 악보용 패드에는 연습이 끝난 곡, 연습 중인 곡, 연습할 곡을 장르별로 구분해 저장해놓았다. 자신의 파트만 따로 정리한 악보 노트도 가지고 다닌다. 스마트폰 배터리팩을 가지고 다니지만 혹시 몰라 충전 케이블도 함께 챙긴다.
가방부터 각종 파우치, 향수, 인이어(공연을 위한 삽입형 이어폰), 목 보호 사탕까지 모두 팬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보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팬이 준 선물을 최대한 소지하고 다니며 써보기 때문이다. ‘햇살 테너’는 경쾌하고 밝은 음색의 고음을 내는 레제로 테너라는 의미도 있지만, 팬들에게 유난히 다정해 붙은 별명이기도 하다. 팬들은 그를 ‘서다정’이라고 부르곤 한다.
“팬들은 연령층이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해요. 한 팬분이 다가와 ‘나이가 많아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좋아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프랑스에서도 높은 연배분들과 ‘모나미’(친구) 하면서 얼마나 잘 지냈는데요.”
그는 포르테나 활동을 하며 성격이 더욱 밝아졌다고 말한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 하는 걱정보다 ‘힘들어도 자양분이 되어 성장하겠지’라는 긍정이 앞선다. 그에게 노래가 있고 함께 공감하며 들어줄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