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는 사고없이 잘 지내지?”…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 참석 못한 어머니의 편지

김현수 기자
박남희씨(62)가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로 세상을 떠난 딸에게 쓴 메모. 칠곡군 제공

박남희씨(62)가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로 세상을 떠난 딸에게 쓴 메모. 칠곡군 제공

“사랑하는 미영아, 천국에서는 사고 없이 잘 지내겠지? 보고 싶구나.”

박남희씨(62)는 지난 18일 경북 칠곡의 한 병원에서 딸에게 메모를 남겼다. 사랑스러운 딸이 세상을 떠난 지 20주기가 됐지만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해서다.

박씨의 딸 이미영씨(당시 19세)은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매년 2월18일이면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지만 그는 참석하기 어렵다. 딸의 기일이 다가오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져서다. 박씨는 올해에도 2월이 시작되면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간 기능이 나빠져 3주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미영씨는 참사 전날 성인 오케스트라 협연 제의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성인 오케스트라가 미성년자에게 협연을 제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박씨는 전했다.

사고 당일 박씨의 딸은 칠곡 왜관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구역까지 온 후 지하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동성로에 있는 유명 강사에게 피아노 개인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중앙로역에서 참사와 마주한 미영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대구 중구 중앙로역 ‘기억공간’에서 한 유가족이 헌화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동훈 기자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대구 중구 중앙로역 ‘기억공간’에서 한 유가족이 헌화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박씨는 “당시 레슨비가 비싸서 미영이에게 오케스트라 협연을 포기하자고 했다”며 “미영이가 너무 하고 싶어해서 허락했는데, 그때 말리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참사 때 미영씨의 마지막 목소리가 박씨의 귀에 아직 생생하다. 미영씨는 어머니 박씨에게 “지하철에 불이 났어요. 문이 열리지 않아요. 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칠곡군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을 잃은 아픔을 봉사로 달래고자 적십자 등 각종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오다 지난해 7월부터 비례대표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재(人災)로 자녀를 가슴에 묻는 부모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박씨는 “참사가 발생한 지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같은 아픔이 반복되고 있다”며 “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일상에서의 안전의식 개선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는 2003년 2월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50대 남성의 방화로 시작된 불길이 번져 승객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친 대형 참사다. 이 사고는 한국 철도사고 사상 가장 큰 사상자를 낸 것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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