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로 아동학대 사각지대 더 커져…‘긴급돌봄’ 늘려야

고영득 기자

서울시, 1~9월 학대 신고 2768건으로 지난해 수준 이미 넘어

집에 머무는 시간 늘자 신체·정신적 폭력, 방치 등 위험 노출

현장조사는 코로나로 급감…자치구별 전담공무원 배치 추진

다섯 살 푸름이(가명)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엄마·아빠는 2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주민들은 푸름이가 말을 잘 못하고 끼니도 거르고 있는 것을 알고선 동주민센터에 이 사실을 알렸다. 담당 복지플래너는 발품을 팔아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게 했고, 푸름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게 됐다.

다들 한시름을 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할머니는 오전 내내 잠을 자느라, 또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푸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방치되기 일쑤였다. 지금 푸름이는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생활한다. 동주민센터는 할머니의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돕고, 주민은 모니터링 요원으로 나서 푸름이를 살피고 있다.

■ 비대면에 커진 사각지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 두기 강화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신체·정신적인 폭력이나 방치 등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평소라면 가까이서 챙겼을 교사나 보육시설 종사자들의 시선에서도 멀어지게 됐다. 감염 우려로 학대 의심 가구에 대한 현장조사가 위축되면서 사각지대가 커지는 형국이다.

20일 서울시 집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접수된 서울지역 아동학대 신고는 2768건에 달한다. 지난해는 3353건이었다. 올해 9월까지 월평균 307.6건 발생해 지난해(279.4건)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교사 등 신고의무자의 신고가 적어진 점까지 감안하면 올해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9월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어른들이 실직하고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아동학대가 2배가량 늘었다는 보고서를 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용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전국에서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신고 비율이 최근 5년간 처음으로 10%대에 그쳤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의심사례 현장조사는 지난해 7500회에서 올해엔 1300회로 급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바깥에서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없는 만큼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가 더욱더 살펴야 하지만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보호자 동의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설령 만났다 하더라도 ‘아이가 학대로부터 안전한지 살피고 지원하겠다’는 걸 밝히기 힘들다고 한다. 보호자가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찾동’은 돌봄이나 건강, 주거 등 취약계층을 직접 만나 문제점을 찾고 맞춤형 지원을 하는 현장 밀착 행정체계다.

보건복지부와 경찰 등으로부터 학대 의심사례를 전달받으면 동주민센터의 전담 복지플래너가 해당 가정을 방문해 필요한 지원책을 점검한다. 아동학대 예방 및 사후 관리가 찾동의 역할이다. 사실상 방치돼 있던 푸름이의 경우 경찰 등 관계기관 연락에 앞서 주민 제보로 발굴해낸 사례로 꼽힌다. 공공영역의 대민 접촉이 힘든 요즘엔 무엇보다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서울시는 강조한다.

■ 긴급돌봄 지원체계 시급

아동학대 진원지의 대부분은 ‘집’이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에서 3만45건의 아동학대가 발생했다. 2018년보다 5441건 증가했다. 학대로 숨진 아동은 42명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았다. 학대 행위자의 75.6%는 부모였다.

코로나19는 분명 위기이지만, 진일보한 대응책을 설계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현재 신청주의로 운영되는 학교의 긴급돌봄을 확대해 지역 돌봄기관과 함께 촘촘한 아동 돌봄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동학대 예방에도 스마트한 비대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할 시대가 왔다”고 했다.

서울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자치구별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배치와 팀 신설을 추진 중이다. 김경미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가족담당관은 “아동학대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 시·구·동의 행정체계를 단단히 결속해 지역사회 안전망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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