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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유학생 간첩단’ 35년 만에 무죄…“반공 독재시대 마무리”

이혜리 기자

기소된 22명 중 양동화씨 등 4명 재심서 첫 무죄 ‘환호’

“반국가단체 협조나 국가 위태롭게 하는 행위 입증 안돼”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지 3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양동화·황대권·김성만·이원중씨(앞줄 왼쪽에서 세번째부터)가 선고가 끝난 뒤인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무죄 축하 현수막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과학연구소 허상수 이사장 제공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지 3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양동화·황대권·김성만·이원중씨(앞줄 왼쪽에서 세번째부터)가 선고가 끝난 뒤인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무죄 축하 현수막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과학연구소 허상수 이사장 제공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지난 14일 오후 2시3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 형사33부 재판부의 재판장 손동환 판사가 이 말을 끝으로 선고를 마치자 방청석에선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피고인석에 선 4명의 남성은 1985년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동화(62)·김성만(63)·황대권(65)·이원중(57)씨다. 양·김씨는 사형, 황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2개월을 복역했다. 이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도 10개월을 감방에서 살았다. 황씨는 수감 생활을 하며 야생풀들에 대한 책 <야생초 편지>를 썼다.

재심 끝에 무죄라는 말을 듣기까지 35년이 걸렸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22명 중 재심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 판사는 말했다. “사건 기록을 살피면서 여러분의 고초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저희가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법원과 재판에 대해 느꼈던 절망과 좌절이 이 판결로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1985년 9월9일 전두환 정권 국가안전기획부는 양·김·황·이씨가 미국과 서독 등지에서 유학할 때 ‘북괴’에 포섭된 뒤 국내에 잠입해 간첩 활동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국가보안법은 반공 독재시대의 무기였다. 안기부는 당시 20·30대 청년이던 이들에게 북한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한 혐의, 북한을 찬양한 혐의, 북한 지령 수행 목적으로 서울에 잠입했다 탈출하고 운동권 학생들의 동향을 수집한 혐의 등을 적용했다.

1년 만에 서울형사지법과 서울고법을 거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양·김·황씨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8월15일에야 광복절 사면으로 풀려났다.

재심은 2년5개월이 걸렸다. 2017년 9월 재심 청구 후 이듬해 5월 법원이 안기부의 강제연행과 구금은 불법체포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며 재심을 개시했다. 21명의 증인이 법정에 나왔다. 증인들은 안기부 등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영장 없이 구속돼 물고문이나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폭력과 압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진술했다는 것이다.

황씨는 “제 혐의 관련 증인 3명의 안기부 진술서를 꼼꼼히 읽어봤는데 너무 황당했다. 나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내가 그 사람들에게 했다는 말들, 내가 북한을 찬양했다는 말들을 진술서에 써놓았는데, 3명의 진술서 내용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다”고 했다. 북한에서 받은 돈을 한국에서 환전해 북한 지령 수행에 썼다는 김씨 혐의와 관련해서는 남대문 암달러 환전상을 했던 90대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왔다. 검사는 당시 할머니가 썼던 자술서를 보여줬지만, 할머니는 자술서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안기부와 검찰의 참고인 진술조서와 피의자 신문조서, 안기부의 수사보고서 등 유죄 근거가 된 자료 대부분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압수물품도 위법하게 수집됐다고 했다. 재판부는 “불법수사로 강제수집한 증거”라며 “영장 없이 압수가 이뤄졌고 사후에도 적법한 시간 내에 영장이 발부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정 증언을 담은 공판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피고인들의 일부 자백 취지 진술에 대해 재판부는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되거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해치는 등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의 시간은 누가 책임질까. 사건을 조작한 정권도,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도, 안기부의 ‘간첩 검거 발표’를 받아쓴 언론도 책임지지 않는다. 간첩 낙인 때문에 이들의 인생은 왜곡되고, 가족까지 고초를 겪었다. 김씨가 말했다. “방송국이 ‘간첩 나온 집’이라며 우리 집을 촬영했어요. 그 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우리 집에 돌을 던지는 거예요. (…) 주위의 냉대와 시선 때문에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외롭고 참혹하게 살아왔어요.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감개무량해 눈물이 났습니다.”

양씨와 이씨가 말했다. “한 달간을 저희 집에 돌을 던지고 손가락질을 해 어머니와 여동생이 겁이 나서 도망 나왔어요. 간첩의 ‘간’이라는 단어만 들려도 꼭 나한테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두려웠어요. (…)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렸어요. 여기까지 아주 멀리 돌아왔는데 지금이라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돼 감사합니다.”(양씨) “구치소에서 나와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았을 때의 미안함이 생각났어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는 때가 있잖아요. 판사가 선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이씨)

황씨는 무죄 선고를 ‘반공 독재시대를 마무리짓는 판결’로 평가했다. “독재의 기준이 반공이었어요. 독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공의 논리로 무수하게 쳤습니다. 우리처럼 간첩으로 조작해서 처벌한 거죠. (그 국가폭력이) 우리 사건이 나오고도 35년을 간 겁니다. 이번 판결로 더 이상 그런 식의 정치공작은 할 수 없는 시대가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검사가 항소하면 2심 재판을 또 받아야 한다. 이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지만 재심 청구를 하지 못하거나,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기다리는 피해자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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