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감수성에 치우쳐 추행 판단하면 군 조직 운영 어렵다”는 군사법원

오경민 기자

군사법원 성범죄 ‘천태만상’ 판결들

“어깨·옆구리 민감 부위 아냐”
성인지 감수성 부족 수두룩
“성실히 근무” 이유로 감형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연합뉴스

“어깨나 옆구리는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다.”

“피해자의 감수성에 치우쳐서 추행을 판단하면 군 조직 운영이 어렵다.”

9일 군사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이용해 2019년 6월~2021년 6월 ‘여군’을 키워드로 검색한 판결 33건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23건은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 등 성범죄 사건이었다. 나머지 10건은 여군 상관에게 유사강간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성관계를 하고 싶다고 하는 등 성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한 상관모욕 사건, 여군 숙소나 아파트에 침입해 속옷을 훔치는 등 주거침입절도 사건이었다. 33건 중 성범죄에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 성폭력치료 강의 프로그램 이수 명령, 사회봉사 명령이 선고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 이면에는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 문제가 있었다. 육군 제6군단 보통군사법원은 20대 여성 하사에게 사격 자세를 취해보라고 한 뒤 1분여간 껴안듯이 양팔을 붙잡은 상관의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개개인마다 감수성이 다른데 피해자의 감수성에 치우쳐서 추행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면 누구보다 긴장해 정확하게 배워야 할 위험한 무기를 다루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군대에서 복무하는 개개인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군 조직 운영도 원활히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또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2회 툭툭 친 행위에 대해서도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고 그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행위가 일반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켜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군사법원에서도 어깨와 손은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가 아니라거나 피해자의 감정이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에 이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강제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제1부는 “옆구리가 유방이나 음부와 같이 특히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는 아니며 피고인의 행위가 쓰다듬거나 잡거나 만지작거린 것이 아니라 단지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 것에 불과하다”며 추행이 아니라고 했다.

일부 군사법원에서 형을 깎아주면서 제시한 양형 이유가 황당한 사례도 있었다. “약 30년 동안 성실히 근무함” “지휘관과 동료들이 선처를 구해서” 등과 같이 민간법원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감경 사유가 제시됐다.

33건의 판결 중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5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3건은 지휘관이 20대 여성 초임 부사관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었다.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군 하사를 모텔에 데려가 성폭행하려고 한 지휘관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막 임관한 부사관에게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강제추행한 상급자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22세 여군 하사가 술에 취해 잠든 상태를 이용해 성폭행을 시도한 지휘관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사법원이 성범죄 사건에 실형을 선고한 비율은 13%로 같은 기간 민간법원 1심에서 성범죄에 실형을 선고한 비율(25%)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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