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퇴직 법관도 탄핵심판 대상? “각하 당연” “헌법 수호 위한 판단 필요”

이혜리 기자

사상 첫 법관 탄핵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소추 사건 첫 변론기일에 출석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헌정 사상 법관이 탄핵심판의 대상이 된 첫 사건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이 우리 헌법질서에서 가지는 엄중한 무게를 깊이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여 공정하게 심리할 것입니다.” 지난 1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변론기일의 시작을 알리며 말했다. 사건번호 2021헌나1, 임성근 전 판사(57)에 대한 탄핵심판이다.

헌법 제106조1항은 “법관이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징계 종류에 파면이 포함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법관은 함부로 파면할 수 없게 돼 있다. 독립된 재판을 위해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다. 법관은 탄핵이라는 절차를 통해 파면할 수 있지만 헌재가 법관 탄핵을 심리한 적은 없었다. 임 전 판사가 첫 대상이다.

임 전 판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으로 있으면서 일선 재판부에 재판과 관련해 말을 한 것이 탄핵 심리 대상이다. 법원의 1심 판결로 사실관계는 대체로 드러나 있지만 헌법적 평가가 남아 있다. 참고할 만한 국내외 선례나 학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 측과 임 전 판사 측은 ‘법관 탄핵심판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두고 격렬하게 공방했다.

■ 임기만료 법관 앞 ‘탄핵의 본질’

‘임성근 전 판사’ 헌재 심리 시작
“이미 퇴직, 파면 결정 못해” 주장
국회 측 “개인의 처벌·징계 아닌
헌법정신 관철이 탄핵심판 목적”

사법농단 연루 법관을 탄핵하라는 목소리가 나온 지 약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탄핵소추를 의결한 게 국회 발목을 잡을까. 변론에선 현직 법관이 아닌 임 전 판사가 과연 탄핵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부터 쟁점이 됐다. 임 전 판사는 국회 의결 때인 지난 2월4일에는 법관 신분이었지만 지난 2월28일 임기 만료로 퇴직했다. 임 전 판사 측은 법복을 벗은 법관에게는 국회가 주장하는 ‘파면’ 결정을 할 수 없고, 따라서 탄핵심판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탄핵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따질(본안 판단) 필요도 없이 헌재가 바로 ‘각하’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땅한 법령도, 전례도 없는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법 제53조2항은 피청구인이 결정 선고 전에 공직에서 파면됐을 때는 헌재가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임 전 판사는 파면이 아니고 임기 만료로 퇴직한 것이라 이 조항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국회법 제134조2항은 탄핵소추된 사람은 권한 행사가 정지되고 임명권자는 소추된 사람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그를 해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임 전 판사 측은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다. 법관은 임기가 10년이고 10년마다 재임용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임기제 공무원’이고, 국회법 제134조2항은 ‘임기제 공무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만일 소추위원(국회) 측 해석에 따르면 임기제 공무원이 임기 만료로 퇴임했건, 공무원이 탄핵소추 중에 사임해 공직을 떠났건 언제든지 재직 시의 사유로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탄핵대상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그 일생을 통하여 언제든지 탄핵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탄핵소추권자인 국회, 특히 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에 탄핵소추라는 가공할 무기를 무기한으로 부여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임 전 판사 측 이동흡 변호사)

국회 측은 법관 탄핵심판의 목적이 ‘헌법 수호’에 있는 만큼 퇴직한 법관에게도 탄핵심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초유의 사건을 헌재가 외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따져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헌법소원의 형식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각하 결정을 하면서도 ‘헌법적 해명이 긴요히 필요하다’거나 ‘헌법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예외적으로 각하 결정문에 본안에 대한 판단을 담은 사례가 다수 있다. 특히 헌법에 어긋난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을 때 그렇다.

“탄핵심판의 목적·기능·본질은 단순히 어떤 판사 개인의 처벌·징계·정죄 그 자체가 아닙니다. 탄핵심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헌법질서의 수호, 모든 국가작용·사회작용에 있어서 헌법정신이 관철되게 하는 것, 헌법정신이 훼손되는 사태를 헌재가 좌시하거나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사건은 본안 판단에서 엄정한 심리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국회 측 송두환 변호사)

국회 측 이명웅 변호사는 현직 법관에 대해서만 탄핵이 가능하다면 퇴직에 임박해 위법행위를 저지른 법관에 대해서는 탄핵심판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문제를 제기했다. “탄핵심판의 본질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탄핵심판 제도라는 것이 영국에서 발전해서 미국을 거쳐 독일, 우리나라로 들어왔는데 원래는 전직 공무원에 대한 탄핵도 가능했던 것으로 마련됐습니다. (…) 만약 현직 공무원이 임기를 만료해서 더 이상 탄핵심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임기 만료 즈음해서 생긴 공무원의 불법행위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런 경우마다 본안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탄핵심판의 본질에 반하는 것입니다.”(이 변호사)

■ 순수한 조언이냐, 재판 개입이냐

파면할 정도의 ‘법 위반’도 논쟁
후배에 ‘순수한 조언’했다는데
법적 절차 따르지 않은 조언이
재판에 개입해 결과 바꿔도 되나

‘재판 개입’ 사건 1심에선 ‘무죄’
헌재는 새 기준 만들 수 있을까

본안 판단으로 들어가면 임 전 판사의 행위를 파면할 정도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헌법 제65조1항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규정과 결정례, 임 전 판사 행위의 성격에 대한 양측의 해석이 상반된다.

임 전 판사 측은 임 전 판사가 후배 법관에게 ‘순수한 조언’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직무집행이 아닐뿐더러, 대통령 탄핵심판과 같이 ‘중대한’ 헌법·법률 위배가 아니기 때문에 파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 개입의 대상으로 지목된 법관들이 임 전 판사가 재판 개입을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근거로 댔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피청구인(임 전 판사)이 친한 선배이고 자기를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why not(왜 안 되겠어)?’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피청구인의 의견 제시에 이 부장판사가 충분히 공감한 결과 재판이 진행된 것이지, 결코 피청구인이 어떤 지시나 강요, 요구를 한 것은 아닙니다.”(임 전 판사 측 윤근수 변호사) 임 전 판사 말을 참고 의견으로 받아들였을 뿐 재판권 침해로 느끼지 않았다는 최창영 전 판사, 김윤선 판사 증언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먼저 임 전 판사에게 ‘조언’을 요청하지는 않은 사실이 형사재판에서 확인됐다. 수석부장이라는 임 전 판사 지위도 살펴봐야 한다.

국회 측은 대통령과 법관은 탄핵심판의 기준도 달라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때 대통령 탄핵에는 중대한 법 위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 결정문에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공직자의 경우에는 파면결정으로 인한 효과가 일반적으로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미한 법위반 행위에 의해서도 파면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 이명웅 변호사는 이 대목을 언급하며 “과연 법관도 중대한 법 위반이 꼭 있어야만 파면되는 것이냐, 아니면 법관이 정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을 파면의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냐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국회 측 양홍석 변호사는 재판 개입 대상 법관들의 주관적 인식과 별개로 임 전 판사의 행위 자체가 법과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 우리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재판을 받도록 정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법이 정하지 않은 절차에 따라서 사건의 결과를 바꿨습니다. 이는 법이 예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 재판 관여 대상 법관들이 관여 행위에 대해 동의·동조했다고 그 행위가 미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법관 독립은 규범과 제도로써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해당 법관이 외부 관여를 용인하거나 요청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양 변호사)

임 전 판사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퇴직을 앞두고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법원 내부통신망은 임 전 판사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 판사들도 이용한다. 이어 임 전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음파일을 공개했고, 사법연수원 17기 동기들은 탄핵이 부당하다는 성명을 냈다. 그는 지난 21일 2심 결심공판에서는 “법원과 법원 가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나, 국민의 사법 신뢰에 누를 끼치지 않았나, 밤잠을 설치며 성찰하고 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위헌적인 재판 개입은 있었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선고는 8월12일로 정해졌다. 각하 결정으로 이 사건을 끝낼 것인지, 재판 독립을 위한 사법행정권의 한계를 제시할 것인지가 헌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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