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과 관저는 달라"…법원, 한·미 정상회담 당일 대통령실 앞 집회 허용

이효상·박하얀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입구 건너편에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김창길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입구 건너편에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김창길기자

법원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21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시민단체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는 20일 참여연대가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상대로 집회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경찰의 집회금지 처분의 효력을 본안 판결 전까지 일시 정지시킨 것으로, 참여연대는 예정대로 집회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가면서부터, 집회·시위의 자유와 대통령 안전보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는 난제로 떠올랐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11조3호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로부터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금지하는데, 종전의 청와대와 달리 새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분리됐기 때문이다. 법적 쟁점은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관저’에 업무 공간인 ‘집무실’이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대통령 관저란 대통령이 직무수행 외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거 공간만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며 참여연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또 집시법 11조에 대통령과 함께 규정된 국회의장·대법원장 등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집시법은 국회의장·대법원장 공관 인근에서의 집회는 금지하는 반면, 이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국회의사당·대법원 인근의 집회는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재판부는 집회 시간과 장소를 제한했다. 당초 참여연대는 아침 8시부터 14시간 동안 국방부 청사와 맞은편인 전쟁기념관 사이의 2개 차로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낮 12시부터 5시간 동안 전쟁기념관 앞 1개 차로에서만 집회를 허용했다. 재판부는 교통 혼잡 우려와 돌발 상황 발생 가능성 등을 언급하면서 “허용 범위를 일부 제한하더라도 집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도 이날 “대통령 관저에 대통령 집무실이 포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이 낸 집회금지통고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평통사 역시 집회 시간과 장소는 일부 제한됐다. 법원은 지난 11일에도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용산 집무실 앞 행진을 허용한 바 있다.

용산 집무실 앞 집회를 허용하는 법원의 결정례가 쌓이고 있는 만큼 경찰의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를 대리한 김선휴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무리한 해석으로 집회를 원천 금지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집회·시위 자체가 대통령의 직무나 외교 행보에 위협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원 결정대로 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면서도 “(참가) 인원이 많아지거나 도로를 점거하면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본안 판단이 이뤄질 때까지 용산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 원칙을 유지할 방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20~22일) 용산 일대에서는 각종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사흘 동안 50건 이상의 집회가 신고된 상태로 경찰은 바이든 대통령을 국빈 최고등급 경호 대상으로 정하고 돌발 사태에 대비 중이다. 경찰은 서울·경기 지역을 합해 2만명 이상의 인력을 투입할 예정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21일에는 120개 중대 7200명의 경력이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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