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건희 계좌 3개, 2차 주가조작에 쓰였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은 13일 판결문에서 여러 번 등장한 김건희 여사의 계좌 다수를 “시세조종에 이용된 계좌”로 판단했다. 공소시효가 남은 이른바 ‘2차 작전’ 시기에 김 여사의 계좌가 쓰였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함에 따라 김 여사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조병구)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시세조종 행위별 유무죄를 판단하면서 2010년 10월 이후 2차 작전 시기에도 김 여사 일부 계좌가 작전 세력의 시세조종에 연루됐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 11월 2차 작전을 주도한 ‘주포’ 김모씨와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임원 민모씨가 시세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 계좌가 쓰였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거래일수나 횟수가 많지 않으나 이 거래들에서 해당 계좌(대신증권 계좌)는 피고인들 의사에 따라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에선 김씨가 당시 민씨에게 “3300원에 8만개 매도하라고 하셈”이란 문자를 보내자 7초 뒤 김 여사 계좌에서 8만주 매도 주문이 나온 일이 다뤄졌다. 재판부는 “해당 계좌에서 직접 주문을 낸 것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문자메시지를 통한 의사연락과 주문·체결 시점을 종합해보면 권 전 회장 또는 시세조종 세력에 일임됐거나 적어도 이들 의사나 지시에 따라 운용된 계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당시 김 여사 명의 계좌는 영업점 단말로 김 여사가 직접 전화해 거래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김씨→민씨→이씨(2차 주가조작 ‘선수’)→권 전 회장→김 여사’ 순으로 연락이 간 것이냐고 캐물은 바 있다. 재판부는 김씨부터 권 전 회장 순으로 연락이 이뤄진 점은 인정했으나 김 여사가 직접 거래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2차 작전을 주도한 이씨와 김씨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터다. 여기에 더해 김 여사 명의 계좌가 이들의 범행에 이용됐다고 법원이 판단함에 따라 이씨와 김씨의 주가조작에 김 여사가 관여했는지 밝히는 것이 검찰 수사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김건희 파일’에 거래 내역이 적힌 김 여사의 미래에셋증권·DS투자증권 계좌 역시 2차 주가조작 세력이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이용한 계좌로 인정됐다. 블랙펄 인베스트먼트 측에서 관리하던 이 파일은 작성 시기가 2011년 1월이고, 거래가 이뤄진 시기는 2010년 11월로 재판부가 공소시효가 남아있다고 본 시기에 포함된다.

재판부는 “김 여사는 2010년 1월29일경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이씨(1차 주가조작 ‘선수’)에게 계좌관리를 맡겼다고 볼 만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2차 작전이 시작된) 2단계 이후에 ‘주포’가 변경됨에 따라 범행 방식이 갱신되어 권 전 회장을 통해 재차 (계좌가) 위탁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담긴 1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윤석열 대통령 측이 그간 내놓은 해명과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김 여사가 2010년 이씨(1차 주가조작 ‘선수’)에게 위탁관리를 4개월간 맡겼는데 손실이 나서 돈을 빼고 절연했다”고 주장했다. 주가조작이 주로 벌어진 시기는 2011~2012년이며 이때는 김 여사가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계좌가 2차 주가조작 시기에도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뿐 아니라 모친인 최은순씨 계좌 1개도 통정·가장매매에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최씨의 계좌를 권 전 회장이 차명계좌로 운용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주가조작 의심 계좌로 제시한 최씨의 또 다른 계좌에 대해서는 “최씨가 권 전 회장으로부터 도이치모터스 주식 정보를 듣고 직접 매매 여부를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권 전 회장이 최씨를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회사 내부 정보를 흘려 주식을 사게 한 혐의(사기적 부정거래)에 대해서는 범죄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를 기각했다.

1·2차 주가조작 세력 모두에게 계좌를 빌려준 사람은 김 여사와 최씨 둘뿐이라는 사실도 판결문에 적시됐다. 두 사람이 권 전 회장과 오랜 기간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정황도 적혔다. 김 여사와 최씨는 도이치모터스가 상장되기 전인 2008년부터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 2011년 도이치파이낸셜을 설립할 때 투자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제대로 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주가 조작에 활용된 계좌라고 해서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김 여사가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가 주도적으로 거래에 개입했다면 (주가 조작의) 공모를 입증할 수 있겠지만 현재 나타난 사실관계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며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거래를 해왔는지 수사를 통해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변호사도 “제대로 수사를 하고 책임있는 사람은 처벌받으면 되지 않느냐”며 “국민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통해 진상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 계좌가) 단순히 동원된 계좌에 불과한지 당장 알기는 어렵지만 국민적 의문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고 국민들은 이 사건을 권력에 관한 수사라고 생각한다”면서 “검찰이 신속히 수사를 해서 결론을 내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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