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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감사한 감사원, ‘통신자료 조회’ 건은 공수처 자체 점검에 맡겨···‘문제없음’ 결론

이보라 기자    강연주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 제공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 제공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를 벌인 감사원이 지난해 논란이 된 통신자료 조회 건은 직접 감사하지 않고 공수처에 자체 점검을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공수처로부터 자체 점검 결과를 보고받은 감사원은 통신자료 조회 건에 대해 ‘문제 없음’ 결론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감사원의 이같은 처분이 이례적이며, 공수처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고발된 사건을 쥐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감사원 사무처는 22일 공수처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회에 보고했다. 감사원은 공수처에 대해 지난해 10월24일부터 11월25일까지 실지감사를, 11월28일부터 12월9일까지 추가감사를 벌였다. 보고 내용은 그 결과를 담은 것이다.

감사결과보고서에는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건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기재됐고, 감사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이같은 감사 결과는 이날 확정됐다고 한다. 통상 감사위원회의에선 감사 결과 문제점이 확인돼 조치가 필요하다고 기재된 건의 적정성 여부를 논의하지 ‘문제 없음’으로 기재된 건은 논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2021년 12월 공수처가 언론사 기자와 정치인 등에 대해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은 제동 장치가 없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이동통신사가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고도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통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건에 대해 감사원이 ‘문제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주목되는 건 감사원이 통신조회 건을 직접 감사하지 않고 피감기관인 공수처에 자체 점검을 맡겼다는 사실이다. 공수처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실시한 통신자료 조회 건 중 수사·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 검찰 등 타 기관으로 이첩한 사건을 제외한 사건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현황을 자체 점검해 보고했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통신자료조회심사관(인권수사정책관)의 통신자료 조회 사전·사후 통제, 수사자문단의 심의 의무화 등 개선안도 보고했다. 감사원은 공수처의 보고 내용을 검토한 뒤 ‘문제 없음’ 결론을 내렸다.

공수처는 통신조회 건을 자체 점검한 경위에 대해 통신자료 조회는 수사 행위여서 당초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에 따르면 수사와 같은 준사법적 행위는 수사 기밀 유출 등 우려 때문에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통신자료 조회 개선안이 시행된 뒤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량이 줄었고, 내부에서도 통신자료 조회를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감사원을 비롯해 검경이 하고 있는 통신자료 조회 현황을 점검받은 기관은 공수처뿐인 것으로 보인다. 당초 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감사원에 협조해 자체 점검을 한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는 감사원 고위 인사를 수사하고 감사원은 공수처를 감사하는 상황에서 수사와 감사의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두 기관이 통신조회 건을 공수처가 자체 점검하는 선에서 타협을 본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앞서 공수처는 이해충돌 지적이 나오자 사무 업무를 총괄하는 여운국 차장을 감사원 표적감사 사건 수사지휘라인에서 빼고 독립적으로 수사할 특별수사본부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대상은 개별 사건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가 아니라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한 공수처 내부의 통제장치 작동 여부, 통신자료 조회시 비례성 원칙(통신자료 조회를 남발하지 않는 것)의 실행 여부 등이고, 이는 ‘준사법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원의 직접 감사 대상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감사원 업무에 밝은 한 인사는 “통신자료 조회와 관련한 통제장치 작동 여부 등은 수사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사원의 직접 감사 대상”이라며 “감사원이 기관운영 감사를 하면서 주요 감사 대상을 자체 점검에 맡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녀 특혜채용 의혹’ 감사를 거부하겠다고 하자 감사원이 “정당한 감사 활동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감사원법 제51조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대응한 것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결국 선관위는 감사원 감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물러선 터다.

일각에선 감사원의 이번 처분이 공수처가 지난해 8월부터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의 표적감사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두 사람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가 더디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지난 19일 “이미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공수처에 고발하였고,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직접 고발한 건도 있다”며 “지난번 공수처장을 찾아 항의성 면담을 했고, 공수처장은 공수처가 엉금엉금 기는 수준에서 걷는 수준까지 되었음을 보여드리겠다고 공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원장, 사무총장에 대한 고발장이 지지부진하다 못해 방기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통신조회 건을 공수처가 자체 점검토록 한 경위 등에 대해 “감사 결과가 확정돼 시행을 하고 공개문을 만들고 보고자료를 배포하든 공개를 하는 시점이 돼야 말씀드릴 수 있다”며 “지금은 드릴 말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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