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교육’에는 없는 성소수자…“우리도 사랑하는 법 알고 싶어요”

탁지영 기자

학생이 고민 털어놔도 교사들 자료 없어 난감

“쉬쉬한다고 없어지나…성소수자 겉돌게 할 뿐”

교육부는 “부적절” 입장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 황모씨(25)는 지난해 한 여학생에게서 “애인이 생겼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말한 애인은 옆반 여학생이었다. 학생은 “저는 성소수자”라며 “애인이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상담했다.

하지만 황씨는 학생에게 필요한 성교육을 할 수 없었다. 교육부 자료에서도, 인터넷 검색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황씨는 성소수자의 성관계가 나오는 영상물까지 다운로드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황씨는 “나 자신도 교육받은 적이 없어 학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며 “쉬쉬한다고 성소수자 학생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성소수자 학생을 학교에서 겉돌게 한다”고 했다.

교육 현장에 성소수자를 위한 성교육 자료가 없어 교사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교육부가 2015년 6월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은 학교 밖에서 성관계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얻기도 한다.

초·중·고교에서 최소 연 15시간 이상 해야 하는 성교육은 모든 학생이 ‘이성애자’임을 전제한다. 표준안엔 초등학교 1~2학년은 “이성 친구에게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돼 있다. 초등학교 5~6학년은 “사춘기에 나타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을 바르게 표현하고 건전한 이성 친구를 사귄다”고 돼 있다. 중학교는 “이성과의 교제에서 지켜야 할 바람직한 조건을 알고 실천한다”, 고등학교는 “건전한 이성교제의 의미를 알고 지켜야 할 예절을 안다”는 게 목표로 설정돼 있다.

교육부가 2015년 9월 발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운영 시 유의사항(지침)’은 “성교육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범위에서 지도”하도록 하고, “학생의 성 행동은 금욕을 기본으로 가르친다”고 규정했다. 경기도 한 중학교 교사 문모씨(28)는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교육이 제대로 다루지 않아 억압된 마음을 부정적으로 분출하기도 한다”며 “성교육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소수자 학생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정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불법 영상물을 통해 얻기도 한다. 이들은 학교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괴로움도 호소한다. 청소년성소수자연합 ‘회상’ 대표인 논바(19·활동명)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정보를 배운 적이 없어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걷는지 모르겠다는 성소수자가 많다”고 했다. 고교생 김모양(18)은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고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잘못된 곳에서 성관계를 배운다”며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반영하지 않는 성교육은 성소수자 학생의 존재를 지워버린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공교육에서 다루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성교육 시간이 아니라 인권교육 시간에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과 상담하면서 별도로 성 지식에 대해 알려주는 것과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성교육 표준안에서 동성애를 다루지 않겠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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