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우는 진짜 이유는,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김소영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거라는 내게 “선생님도 무서우면 그냥 우세요”

‘큰다 큰다, 울 때마다’

며칠 전부터 주변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긴장하고 있다. 어린이가 아니고 내 얘기다. 성인은 안 맞아도 된다는 기사가 있지 않을까 샅샅이 검색했지만 허사였다. 병원이 북새통이라는 소식, 서둘러 맞으라는 전문가의 조언만 잔뜩 읽었다.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올해는 정말 너무하는 것 같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교실에서 단체로 예방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간호사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하는 나를 보고 담임 선생님이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소영이가 먼저 씩씩하게 맞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은 수술 때문에 입원했을 때 주사를 안 맞겠다고 하도 몸부림을 치고 주삿바늘을 튕겨내서 결국 발등에 링거 바늘을 꽂은 전력이 있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알릴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 선생님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휘청휘청 걸어나가 변변히 저항도 못하고 첫 번째로 어깨를 내밀어야 했다. 잠시 울음을 그친 아이들의 눈길이 쏠린 데다 이 사태에 나 자신이 너무 놀란 나머지 주사를 다 맞을 때까지 울지도 못했다. 선생님은 내 옷을 챙겨주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도 안 아프지? 소영이 안 우는 거 너희도 봤지?”

그때 그만 참았던 눈물이 줄줄, 아니 콸콸 쏟아졌다. 이후의 교실 풍경이 어땠는지는 묘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방주사’가 특히 못마땅했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주사를 맞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는 그래도 ‘어쩌면 주사를 안 맞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어볼 수 있다. 그런데 예방주사는 처음부터 맞을 것을 알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부당함에 대한 분노와 주사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어린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어린이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오랫동안 쌓인 불만이나 불안이 어떤 순간을 만나 폭발한다
눈물이 먼저 나와 버려서 왜 우는지 울면서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어른도 ‘어린애처럼’ 울고 나면 마음이 풀려 달음박질할 기운이 생긴다
주사 맞을 때 무서우면 아이들 말을 떠올려야지…아마 난 안 울겠지만

첫 인터뷰 대상은 열 살 성호. 독서교실에서 제일 의젓한 어린이다. 한자를 많이 알아서인지 어려운 말도 자주 쓴다. 이사 간 친구와 오래간만에 만났다기에 그 친구 어떻게 지내더냐고 물으면 “일반적으로 지내더라고요”라고 한다. 살짝 어색하지만 “그래, 별일 없이 지내는구나” 하고 대답한다.

“성호야, 요즘 독감 예방주사 맞는 사람들이 많던데….”

“저도 오늘 맞았어요.”

성호는 평소처럼 침착했다. 전혀 오늘 주사를 맞고 온 사람 같지 않았다. 어땠는지 묻기가 무안할 정도였다. 그랬구나 하고 그만두어야 하나 싶었는데 성호가 덧붙였다.

“저는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엄마가 가라고 하셔서 할 수 없이 갔어요.”

“그래? 아팠어?”

“아프긴 아프죠. 주사니까.”

“울었어?”

성호는 무슨 그런 무례한 질문이 있느냐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성호 같은 어린이가 주사를 첫 번째로 맞아야 되는 거였는데. 나는 약간 기가 죽었다.

현진이한테 물어볼 때는 조금 기대를 걸었다. 현진이는 열한 살인데 평소 눈물에 후하다. 언젠가 경쟁률이 무척 높은 무슨 기관의 프로그램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혹시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더니 진지한 얼굴로 “일단 울 거예요”라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떨어진 뒤에 계획대로 울었다). 아버지랑 배드민턴을 칠 때 하기 싫어서 대충 했다가 혼나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울었다고 했을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아플 뻔했다. 그런데 이어서 “다 울고 제대로 했더니 엄청 재미있더라고요!”라고 해서 같이 웃고 말았다. 현진이는 아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독감 주사는 빨리 맞고 싶습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장난스럽게 습니다체까지 써가면서 아주 신이 난 얼굴이었다.

“뭐라고? 너 그거 진심이야?”

“네! 이번에 주사 안 울고 맞으면 엄마가 게임 아이템 5000원어치 사준다고 했거든요.”

이 어마어마한 보상을 걸 때의 어머니 마음은 어떠셨을까…. ‘이번에 안 울고 맞으면’에 답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그동안 현진이는 병원에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진아, 그런데 안 울고 주사 맞을 자신 있어?”

“제가 일단 해보긴 하려고요.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원래는 병원에 가면서부터 우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들어갈 때까지는 거의 안 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현진이하고는 말이 더 통할 것 같아서 나의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어른도 무서운 건 비슷한데 차마 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원래 어른 되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예방주사를 안 맞아도 되는 거였는데 이번에는 다 틀린 것 같다고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현진이가 문득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어린이라서 우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이건 어린이가 더 좋네요.”

그렇다. 우는 것은 어린이의 특권이다. 현진이 얘기를 들으니 윤석중의 동시가 생각났다.

“아기는/ 큰다 큰다/ 기지개를 켤 때마다.// 아기는/ 큰다 큰다/ 떼를 쓰고 울 때마다.// 아기는/ 큰다 큰다/ 달음박질할 때마다.// 아기는/ 큰다 큰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아기는 큰다 큰다’ <날아라 새들아> 창비 )

기지개를 켜거나 달음박질을 하는 것처럼 우는 것도 어린이의 일상이다. 슬퍼서도 울지만 서러워서 운다. 억울한 사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운다. 때로는 주장하기 위해서도 운다. 창피해서도 운다. 걱정스럽거나 무서워서도 운다.

그런가 하면 어른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일로 어린이가 울 때가 있다. 그런데 어린이가 우는 진짜 이유는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어린이로서는 오랫동안 쌓인 불만이나 불안이 어떤 순간을 만나서 폭발하는 것이다.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없이 눈물이 먼저 나와 버려서 왜 우는지 울면서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울지 않고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다. 여전히 못 참고 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이는 눈물을 다루는 법을 익히면서 자란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현진이의 호쾌한 눈물을 응원하는 한편으로 과연 이번에 게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울 수 있는데 왜 참아야 하는가, 갈등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래도 현진이는 좋겠다. 울든, 선물을 받든 둘 중 하나는 할 수 있으니까.

그 얘기를 전하자 예지는 펄쩍 뛰었다.

“우는 건 우는 거고 선물은 선물이죠. 주사도 맞았는데! 저는 울기도 하고 장난감도 꼭 받을 거예요.”

예지도 아직 올해 주사는 안 맞았지만 늘 그렇듯 동생들과 함께 예방접종을 하러 갈 것 같단다.

“일단 차에서부터 기분이 안 좋아요. 울려고 하고 있죠. 그러다가 병원에서 키랑 몸무게 재고 순서를 기다리면 거의 울어요. 저는 그래도 조용히 우는데, 제 동생 중 하나는 이미 누워서 막 울고 있어요. 근데 선생님, 우리 엄마는 맨날 저보고 ‘네가 누나니까 모범을 보여야지.’ 그러거든요? 그래서 지난번에 주사 맞을 때는 제가 엄마한테 ‘엄마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는 어제 와서 맞으셨어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거짓말이었어요!”

나는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엄마는 주사를 안 맞아도 힘이 들겠죠. 그것도 이해가 가요.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요? 저희 셋이 다 그러고 있는데.”

“예지야, 그래서 동생들을 위해서 안 울고 주사 맞았어?”

예지는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울었어요. 걔네도 진실을 알아야죠.”

하마터면 예지를 껴안을 뻔했다. 수십년 전 내 눈물이 정당성을 인정 받은 것 같았다. 어린이는 진실을 폭로하기 위해서도 운다.

예지는 주사를 맞으러 갈 거라는 나에게 조언도 해주었다.

“선생님도 무서우면 그냥 우세요.”

“어른이 체면이 있지. 안 그래도 아프고 무서운데 창피하기까지 하면 어떡해.”

“체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른도 무서우면 우는 거지.”

그러고 보니 어른이 체면 차리지 않고 울 때, 거리낌 없이 소리 내어 울 때 ‘어린애처럼 운다’고들 한다. 울다 보니 그간 고여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라서 눈물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린애처럼 운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풀려서 다시 ‘달음박질’할 기운이 생긴다. 그러니까 어른도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

매년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왔고 여덟 살 이후 주사를 맞으며 운 적이 없다는 열세 살 대훈이는 꽤 여유가 있었다.

“그냥 따끔해요. 독감 주사는 맞고 나면 조금 피곤한데 그날은 많이 자면 돼요. 선생님도 다른 주사는 맞아 보셨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말이야, 내가 어른이잖아? 그래서 원래는….”

“맞다.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주사 더 큰 걸로 맞죠?”

주사 얘기는 그만하기로 했다.

마침 이번주에 건강 검진이 예약되어 있으니 간 김에 독감 예방접종도 하고 올 생각이다. 주사를 맞고 나면 푹 쉴 것이다. 과자를 산처럼 쌓아놓고 종일 넷플릭스만 볼 것이다. 정말 기대가 된다. 혹시 주사 맞을 때 무서우면 예지가 한 말을 떠올려야지. ‘엄마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진실을 알아야죠.’ 내 평생 처음으로 웃으면서 주사를 맞을지도 모른다. ‘어른도 무서우면 우는 거지.’ 나는 물론 안 울 것이다. 아마 안 울 것이다.



[김소영의 어린이 가까이]어린이가 우는 진짜 이유는, 어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많다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친다. 비양육자로서, 돌봄과 교육의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에 관심이 많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이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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