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어 늘 주눅 들어 있고 표현력이 부족하다는데…그건 오해다

김소영

말하기와 말수

아무 말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마스크에 가려진 눈이 힘껏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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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10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나는 윤서 덕분에 알게 되었다. 열한 살 어린이와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교실에서 대화가 뚝 끊겨 버린 10초. 첫 수업을 하는 한 시간 동안 거의 모든 대화에 그 10초가 생겼다. 내가 무슨 어려운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다. “떡볶이는 매운 게 좋아, 안 매운 게 좋아?”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인데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결국 내가 다시 질문하거나 말을 돌리거나 해야 했다.

“선생님은 매운 걸 잘 못 먹어. 근데 떡볶이는 매워야 맛있잖아? (윤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늘 매운 떡볶이를 먹고 후회해. 윤서는 어떠니?”

“매운 거 잘 먹어요.”

“평소에 언니랑 윤서랑 얘기 많이 하니? (고개를 젓는다) 그럼 언니가 독서교실 어떻다고도 얘기 안 해줬어? (고개를 젓는다) 얘기는 했구나. 뭐라고 했어?”

“재미있대요.”

이런 식이었다. 이렇게 말이 없는 어린이는 처음이었다. 어찌어찌 수업은 마쳤지만 내내 윤서를 곤란하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윤서는 애초에 독서교실에 오는 것도 내키지 않아 했다. 먼저 다니기 시작한 언니가 어머니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람에 와본 것이다. 안 그래도 조금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독서교실에 안 오고 싶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윤서 어머니가 전화로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 윤서가 어제 재미있었대요. 자기가 얘기 엄청 많이 했다고 그러던데요?”

윤서가 무슨 얘기를 했지? 나는 얼떨떨해서 기록을 살펴보았다. 윤서는 매운 떡볶이를 좋아한다. 언니하고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독서교실에 대해서는 들었다. 수학을 좋아하고 체육을 싫어한다. 피아노를 배운 지 2년 되었다. 강아지는 아무리 작아도 무섭다. 초록색을 좋아한다. 계절은 겨울이 좋다, 귤을 좋아하니까. 윤서로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정말 많은 정보를 알려준 셈이다. 윤서 덕분에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말수가 적은 어린이는 ‘말하기’가 아닌 ‘듣기’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느라 애쓴 동안 윤서는 듣느라 애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독서교실에 계속 오겠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수업 시간에 말이 거의 없었는데도 집에 가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말하기’가 아닌 ‘듣기’로 대화한다는 걸 알게됐다. 비슷한 어른들도 아마 조용한 어린이였겠지, 그래서 걱정도 들었겠지 소극적이거나 답답하다? 아니다! 자신감은 말로만 드러내는 게 아니다

어린이와 가까이 지내면서 말수가 적은 어린이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전에는 막연히 어린이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는 으레 재잘거리게 마련이고 그래서 어른들한테 종종 “조용히 해라” 하고 꾸중을 듣기도 한다고. 떠들썩하고 소란스럽게 구는 것이 마치 어린이의 본성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 것 같다.

실제로 독서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은 대체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내 얼굴을 보면 신발을 벗기도 전에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부터 소상히 자랑하고, 내 말을 듣는 동안 자기도 할 말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손을 들고 엉덩이를 들썩인다. 자기를 소개하는 글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말하기다”라고 쓰는 어린이도 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는 자기를 잘 드러낸다. 어른들도 이런 어린이는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된다. 그에 비해 말수가 적은 어린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조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이는 떠들게 마련이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말수가 적은 어린이와 대화할 때는 조금 긴장이 된다. ‘어떻게 하면 말을 하게 할까’ 고민스러워서는 아니고 대화를 불편해할까 봐 조심스러워서다. 어린이가 대답을 준비할 수 있게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건 아는데, 그게 정확히 얼마큼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정적이 너무 길어도 부담이 될 것 같고, 그 부담을 줄여주려고 내가 말을 하면 어린이가 말할 기회를 빼앗는 것 같다. 처음 말수 적은 어린이를 대할 때는 ‘몇 초 기다려주는 걸 좋아하는지 제발 알려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을 정도다. 방법이 없었다. 어린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말이 생각이나 마음에서 출발해 목울대 어디쯤까지 와 있는지 더 유심히 살피는 수밖에.

그러다 보니 말수 적은 어린이들이 적잖은 오해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소극적이다’라는 것이다. 다른 자매나 형제는 활달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한 어린이만 말수가 적을 경우 특히 그렇다. 부모님들은 종종 “우리 땡땡이는 늘 주눅 들어 있다”고 걱정하시기도 한다. 아마 안쓰러운 마음에 그러실 것이다. 그런데 막상 어린이를 만나보면 걱정과 다를 때가 더 많다.

한번은 어머니로부터 ‘오빠보다 친구도 적고 자신감이 없다’고 걱정을 듣는 열세 살 어린이를 만난 적이 있다. 말수가 적을 뿐 속이 아주 단단한 어린이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 적이 없어서 친구랑 노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중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 노래는 잘 못하지만 좋아한다며 뮤지컬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진로’는 몇 살 때까지 정해야 되는 거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기에 청소년소설들을 보여주었더니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아…. 못 고르겠어요. 다 너무 읽고 싶어요.”

자신감은 말하기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어린이가 자신감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말수가 적은 어린이는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오해도 종종 받는다. 그런데 자신을 꼭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이나 연주도 표현의 도구가 된다. 어떤 어린이는 무언가가 표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평소에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어린이가 잠자리에 들면서 낮에 본 책 얘기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어린이가 하루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잊고 있다가 잠들기 전에 퍼뜩 그림책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어린이가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어떤 느낌이나 아이디어는 어린이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책을 매개로 어린이를 만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것만 겨우 엿볼 뿐,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헤아릴 방법이 없다. 그 마음속의 일을 바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린이가 ‘답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어떤 어린이는 말을 적게 해서 성숙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동생보다 조용하고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어른스럽다’고 칭찬받는 어린이들도 사실은 ‘어린이’다.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고, 농담에 소리 내어 웃고, 엉뚱한 실수를 하고, 칭찬에 얼굴이 붉어진다. 어떨 때는 나도 그걸 깜빡한다. 어린이가 잠잠하게 듣고 있으니까 이해하려니 하고 어려운 말을 하기도 하고, 양해를 구하는 듯 양보를 부탁하기도 한다. 한번씩 그걸 깨달을 때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마 나처럼 뒤늦게 아차 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말수 적은 어린이들이 말을 좀 ‘잘’ 했으면, 많이 했으면 하고 바란다.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들한테 자기를 어필하고, 잘 소통하고, 사회생활도 원활하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려서부터 연습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좋은 말하기가 말수에 달려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수 적은 나의 ‘어른’ 친구들이 그 증거다. 나는 그들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그 ‘적은 말’을 내게 들려주는 것이 늘 고맙다. 솔직히 말수 적은 게 멋있어 보여서 따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늘 실패한다. 그런 것은 타고나는 모양이다. 대신 이따금 그 친구들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조용한 어린이였겠지. 오해를 받아 속상하고 답답할 때도 있었겠지만 대체로는 괜찮았을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익숙한 고요함 속에서 자기를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되었겠지. 말수가 적은 어린이도 그러니까 괜찮을 것이다.

재희도 말이 없는 어린이다. 다른 어린이가 살짝 귀띔해주기를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얘기를 잘하는데 어른이 있으면 조용해진단다. 독서교실에서도 수업 내용을 제외하면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갈 때도 있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역시, 오늘 선생님하고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다며 소파에 눕는다고 한다. 다행히 그러고도 계속 수업에 온다. 말수 적은 열 살의 마음을 알아내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그간 쌓인 경력 덕분에 나도 기술이 늘었다. 재희와 대화할 때는 10초 다음에 또 10초를 세어 보았다. 덕분에 재희는 13~15초 구간에서 말을 하거나 아니면 안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제는 요즘 마스크 때문에 재희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읽기가 다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재희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눈으로 레이저를 뿜는 기세로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핼러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언니가 핼러윈 때 사람들이 분장하는 게 무서워서 싫대. 재희는 어떠니? 핼러윈 좋아?”

13초.

“네.”

“그래, 재희는 사탕 좋아하지. 분장하는 것도 좋아해?”

8초.

“네. 근데 돌아다니는 건 싫어요.”

“맞아. 원래 돌아다니면서 사탕 얻는 거잖아.”

5초.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돌아다니는 거는 안 했어요.”

“그럼 되게 좋네! 집에서 사탕 많이 먹으니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나는 재희가 웃는 것을 금방 알았다.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입술 대신 눈이 힘껏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희가 보낸 사인을 잘 받았다는 뜻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는 잘 통하고 있다.



김소영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어린이와 함께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친다. 비양육자로서, 돌봄과 교육의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에 관심이 많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상이 어른에게도 좋은 세상이라고 믿는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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