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 원인? 근거 부족한 조례안 폐지 강행

김원진 기자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26일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26일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12년 만에 폐지됐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주된 원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교사 교육권과 학생 인권을 적대적·대립적 개념으로 볼 수 없다는 점, 학생인권조례가 교사 교육권 침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조례 폐지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혜영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 통과 전 학생인권조례를 ‘손톱 밑 가시’라고 표현하면서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서호연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오전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권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해당 조례가 학생 권리와 책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조성했다”고 했다.

시의회 여당 측은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답한 비율이 55%’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학생인권조례의 어떤 내용이, 어떤 경로로 교권 침해에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는 않았다.

학생인권발전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회원들이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본회의에 상정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학생인권발전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회원들이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본회의에 상정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시의회 이소라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에 (교권침해의) 책임을 전가할 뿐,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거가 부족하고 통계적, 사회적 인과관계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 인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놓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이끌어낸 것이 문제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학생인권과 교사 교육권을 ‘제로섬’으로 볼 것이 아니라, 두 권리가 조화를 이루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다수의 교사들도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교사 교육권 보호가 실현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김희성 서울교사노조 부대변인은 지난해 7월 SBS 라디오에 출연해 “학생 인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조를 가져가면서 교사들에게 정당한 권한을 줄 수 있어야 맞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에 시달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다. 그는 “어느 한 쪽이 커지면 다른 한 쪽은 작아져야 하는 것처럼 보는 시선 자체가 가장 고질적인 문제”라며 “학생인권조례만 고쳐서는 아무 실효성이 없고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한 선례가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소수자의 권리 보장 등 인권의식을 발달시키는데 긍정적 역할을 해온 점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내놓은 ‘지방교육자치법규에 대한 사후입법영향분석: 학생인권조례를 중심으로’를 보고서를 보면, 연구진은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 학생들의 ‘인권’ 의식이 미시행 지역보다 일반적으로 더 높다고 분석했다. 또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학교의 인권침해 요소를 유의미하게 감소시켰고,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 학교폭력 심의건수가 유의하게 줄었다는 기존 연구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확정되면 성소수자 학생 등의 학교 생활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돼 있다. 그동안 보수단체는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등을 냈으나 모두 기각, 각하 결정이 나왔다.

조희연 교육감이 26일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를 마친 후 학생인권조례안 폐지에 대해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조희연 교육감이 26일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를 마친 후 학생인권조례안 폐지에 대해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국민의힘은 이같은 보수단체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김혜영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찬성 토론에 나서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어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됐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 책무성을 강화한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발의했음에도 조례안 폐지를 강행한 시의회를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 구도로 몰아가면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근본 대책 마련은 외면한 채, 학생과 선생님의 편을 가르고 모든 책임을 오로지 학교에 떠넘기는 아주 쉬운 방법일 뿐”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재의 요구와 대법원 제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교육자치법은 교육감이 시·도의회 의결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저해한다고 판단할 경우 20일 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교육청 본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부당함을 알리는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5시30분 시작해 72시간 동안 농성을 할 예정이다. 그는 “교육청 있는 본관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심정으로 3일 동안 (조례 폐지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항의도 표현하고, 많은 분을 만날 것”이라며 “그다음에는 폐지를 번복시키기 위한 ‘이동버스’(이동 집무실)를 운영하겠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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