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변화는 작은 균열부터 시작…여기서부터 퍼져나가기를”

임아영 젠더데스크

아들에게 엄마 성 물려준 원의림 변호사 등 법률자문단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에서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자문을 맡은 원의림, 범유경, 최나빈, 김윤진 변호사(왼쪽부터)가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에서 성·본 변경 청구서 작성 자문을 맡은 원의림, 범유경, 최나빈, 김윤진 변호사(왼쪽부터)가 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mjw@kyunghyang.com

2018년 10월 원의림 변호사(법률사무소 의림)가 혼인신고를 할 때 당시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로스쿨 친구들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참고해 ‘혼인 축하선언문’을 작성해서 선물했다. 이 선언문 ‘판결 요지’에는 “현행 민법상의 부계성본 원칙을 타파하기 위해 사회운동, 헌법소원, 입법청원 등의 수단으로 가족관계등록법과 민법 등 관계 법령 개정에 앞장서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로부터 4년여 후 원 변호사는 2023년 태어난 아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줬다. 그가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원 변호사는 “이 프로젝트 소식에 반가웠고 ‘내가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신청 마감 후 최종 신청자가 137명에 이르자 원 변호사는 평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다른 변호사들에게 법률자문단 합류를 요청했다. 5명의 변호사가 화답하면서 자문단은 범유경·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김윤진·최나빈 변호사(재단법인 동천), 이상은 변호사(이상은 법률사무소)로 총 6명이 됐다. 변호사들은 직접 사건을 수임하진 않고 성·본 변경 청구서에 대한 의견을 주는 방식으로 자문한다. 변호사들은 몇주간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방법에 대한 자료집을 만들고 세미나를 준비했다. 최나빈 변호사는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성평등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제 ‘청구’라는 행동을 하는 당사자들의 진심이 청구서에 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서면으로 인터뷰한 후 지난 6일 만났다.

법원은 주로 이혼·재혼 가정 등 ‘친부가 (자녀의 성장에) 기여하지 않은 때’에 성·본 변경 청구를 허가해왔지만 이런 경우에도 친모의 성으로 바꾸긴 쉽지 않다. 계부와 자녀의 성이 다를 경우에는 가정의 통합에 방해되고 자녀의 복리를 저해한다며 계부 성으로의 성·본 변경을 허용한 결정례가 많다. 반면 2018년 6월 부산가정법원은 “‘모의 성과 자녀의 성이 다른 것은 일반적’이고 ‘모가 재혼할 수도 있으므로’” 어머니 성으로의 성·본 변경을 불허했다. 김윤진 변호사는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판단할 때 주로 ‘아버지와 성이 다름에서 오는 불이익’ ‘아버지와 성이 같아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이혼·재혼 가정에서도 친부는 기여하지 않아도 자기 성을 물려줄 수 있지만 어머니는 기여를 많이 해도 성을 물려줄 수 없다.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정부에 “민법에서 부계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밝히며 부성주의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고, 2020년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부모의 협의를 통해 자녀의 성·본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2022년 대법원은 “어머니의 성씨와 본관을 따른 자녀는 어머니 쪽 종중의 구성원이 된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종중은 부계혈족을 전제로 구성되는 집단이었지만 대법원 판결로 종중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고 민법상 부성우선주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졌다. 2022년 11월 법무부는 민법의 부성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여전히 이 논의를 꺼내면 “성이 뭐라고 유난이냐”는 반응이 따라온다. 김윤진 변호사는 “‘성이 정말 아무 실질이 없는 명목상 기호에 불과한지 되묻고 싶다”며 “현재 우리 사회는 법적·문화적으로 ‘성을 같이하는 것’에 분명 의미를 두고 있으면서, 왜 자녀가 ‘여성’과 성을 같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체 성이 뭐라고 그러느냐’며 갑자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구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문단은 ‘아동의 복리’라는 관점에서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변호사는 “엄마 성을 쓴다 하면 한부모 가정으로 오해할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며 “엄마 성이든, 아빠 성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어떤 가정이든 편견의 시선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의 성, 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국가들도 있다.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에서는 부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독일은 출생신고 때 어머니 성을 선택할 수 있고 부모의 성을 둘 다 사용할 수도 있다.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 다른 성씨를 물려주기도 한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동생 베에타 에르만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있다. 미국 역시 출생신고 때 성이 결정되며 주에 따라 아예 새로운 성을 사용할 수도 있다.

호주제 폐지 후 16년이 흘렀다. 자문단 변호사들은 ‘부성이 기본값’인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이상은 변호사는 “이번 청구를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재판부에, 나아가 사회에 알릴 수 있다면 큰 실익을 거둔 셈”이라며 “큰 변화는 정말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작은 균열들이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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