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1년

세수 늘리려 ‘제사보다 젯밥’…금연 대책은 ‘눈 가리고 아웅’

김상범·박병률 기자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뒷골목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최모씨(77)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필터만 남기고 끝까지 피웠다. 최씨는 “우리처럼 돈 없는 노인네들은 이게 유일한 낙”이라며 “몇 번 끊어 보려고도 했는데 쉽게 안되더라. 소용없더라”고 말했다. 올해 초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서 최씨도 한때 금연을 결심했다. 직장에서 담배를 배워 50년 가까이 피워왔지만 은퇴 후 40여만원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처지에서 4000원이 넘는 담뱃값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기 위해 3개월간 ‘야매담배(쑥 등으로 만든 일종의 금연초)’도 피워 봤지만 결국 다시 담배를 손에 잡았다.

[담뱃값 인상 1년]세수 늘리려 ‘제사보다 젯밥’…금연 대책은 ‘눈 가리고 아웅’

지난해 12월 ‘2015년부터 담뱃값을 평균 2000원 인상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4년 담뱃값이 갑당 500원씩 오른 이후 10년 만의 대대적인 가격 인상이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담뱃값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씨 같은 소득이 없는 노인·청소년들과 서민층의 금연 효과가 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정부가 계획한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는 달성됐을까.

■담배 판매량·흡연율 ‘도돌이표’

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15년 흡연실태 수시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금연에 나선 성인 남성은 7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연을 결심한 사람 3명 중 2명(62.3%)은 “담뱃값 인상이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담뱃값 인상 뒤 남성 흡연자 중 금연을 시도한 사람이 42.9%, 흡연량을 줄인 사람은 23.5%로 조사됐다. 올 1~6월 기준 보건소 금연클리닉 이용자는 전년 동기(19만4710명) 대비 106.8% 증가한 40만2710명을 기록했다. 담배 판매량도 가격 인상 직후인 지난 1월에는 1억7000만갑으로 인상 직전인 지난해 12월(3억9000만갑)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담뱃값 인상 1년]세수 늘리려 ‘제사보다 젯밥’…금연 대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지만 이는 ‘반짝 효과’에 불과했다. 가격 인상 직전의 사재기와 연초 재고 밀어내기, 일부 흡연자들이 전자담배 등으로 갈아탄 덕에 몇 달간은 효과를 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담배 판매량은 상승세로 전환했다. 한국담배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1억7000만갑이던 담배 판매량은 9월 3억4000만갑을 기록하는 등 2배로 늘었다. 지난해 판매량(월평균 3억6000만갑)에 근접했다.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찾는 흡연자들도 연초에 비해 20% 수준으로 감소했다.

■올해 담뱃세 11조원

한국납세자연맹은 올 한 해 정부가 걷어가는 담뱃세가 1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세율인상에 따른 세수증가분은 4조3000억원이다. 당초 정부추산(2조8000억원)보다 1조5000억원 이상 많다.

담배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담배판매량은 2억9000만갑이다. 올 11월까지 연간 누적 판매량은 총 30억3000만갑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담배세수는 11조48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납세자연맹은 2013년 12월 기준 전월 대비 판매증가율을 적용, 아직 집계되지 않은 12월 판매량을 3억갑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2월 판매량을 기준 삼지 않은 것은 담뱃세 인상을 앞두고 사재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담배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3.4% 줄지만 연말 기준 담배 세수는 63.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 분들 중엔 육체노동자 등 정치적인 힘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약자들이 많다”며 “소득불평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담배로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제대로 된 증세정책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모욕감 주는 금연 광고

금연 광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회사원 박모씨(36)는 최근 버스정류장에서 ‘폐암 주세요’라는 광고(사진)를 보고 화가 치밀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학 시절부터 담배를 피워 온 박씨는 “금연 광고를 볼 때마다 화가 나고 가족들 앞에서 죄인이 된 심정이지만 끊으려고 마음먹어도 정부에서 도와주는 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실에 따르면 복지부가 ‘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사업’에 배정한 올해 1000억원 예산 중 지난 7월까지 집행한 예산은 126억원으로 10%에 불과했다. 이 중 가장 달성률이 높은 것이 TV광고 등 기타 운영비이다. 배정된 65억원 중 51억원을 사용했다. 실질적인 금연 지원 없이 금연 광고에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최비오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정책부장은 “담배부담금으로 걷은 세수가 금연사업이나 흡연자 건강관리에 쓰여야 하는데, 흡연자들이 금연을 결심할 수 있도록 구제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흡연을 죄악시하는 공익광고보다 흡연자들도 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면서 금연 동기를 제공하는 환경을 갖추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흡연자는 담배가 지닌 중독성의 최대 피해자이므로 이번 금연광고에도 흡연자를 모욕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은 강력한 금연캠페인을 통해 담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금연광고는 비흡연자와 청소년이 흡연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금연예산은 올해보다 더 줄어든다.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내년 국가금연지원사업 예산으로 1315억원을 편성했다. 올해(1475억원)보다 160억원 줄었다. 특히 청소년 흡연 예방을 위한 사업 예산은 올해 444억여원에서 내년 333억여원으로 25% 줄였고, 금연치료 지원 사업비는 128억원에서 81억800만원으로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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