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치명률 0.13%는 잊혀진 ‘엔데믹맞이’

김향미 기자

요양시설의 비극

마스크… 검사소… 이번엔 항공권 구매 ‘긴 줄’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을 중단했던 항공사가 28일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서 연 운항재개 항공권 할인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마스크… 검사소… 이번엔 항공권 구매 ‘긴 줄’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을 중단했던 항공사가 28일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서 연 운항재개 항공권 할인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독감 정도라던 오미크론 정점기
사망 38%가 요양병원 등서 발생

사회가 일상회복 속도 내는 사이
고위험 시설은 여전히 “전쟁터”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기를 벗어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2020년 1월 첫 확진자 발생 후 2년4개월간 우리 일상을 꽉 조였던 거리 두기와 방역조치가 풀리면서 일상회복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정권 이양을 앞둔 문재인 정부는 ‘K방역’ 성과라고 자평한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은 누적 치명률(0.13%), 높은 백신 접종완료율(60세 이상 89.4%) 등의 숫자를 그 근거로 댄다.

‘K방역’이란 이름의 방역정책들은 공동체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시행됐다. 더 큰 피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용된 조치들이지만 이로 인해 보호받지도, 위로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로 격리된 요양병원·요양시설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 백신 접종을 했다 이상반응에 시달리는 사람들, 감염병과 인권침해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는 노숙인·장애인·이주노동자 등이 그들이다. 지금의 유행 감소세도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반기 새 변이 바이러스가 재유행을 몰고 올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차기 정부가 K방역 공과를 평가하고, 취약계층을 배제하는 방역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계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요양병원·요양원의 비극

코로나19 3차 유행 때였다. 2020년 12월15일 A씨의 어머니가 지내던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다음날 20여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오자 요양병원은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조치를 했다. A씨의 어머니는 12월17일 확진 판정을 받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당일 늦은 저녁 요양병원 의료진으로부터 통보받았다. A씨 가족들은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시신이 안치된 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선 화장, 후 장례’ 지침 때문이었다. A씨 측은 지난해 12월 국가와 서울시, 요양병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씨 측은 소송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최재홍 변호사를 통해 “비통하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을 감을 때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 같다”는 심경을 전했다.

■정부, 계절독감 수준 치명률 자찬…“환자 치료보다 숫자 이야기만”

100명 이상 집단감염 11건 중
요양병원·시설 9건으로 대다수

정부의 고위험 시설 방역대책
뒷북이거나 ‘현장 모르는’ 조치

최 변호사는 “비감염자들에 대한 보호조치 없이 ‘코호트 격리’를 함으로써 오히려 감염 위험을 방치했다는 부분에 대해 적법했는지 재판에서 다퉈볼 예정”이라고 했다. 최 변호사는 “요양병원이라는 특성상 간병인 등 돌봄인력 보강이 없으면 제대로 된 처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정된 인원으로 환자들을 케어하다 보니 간병인을 고리로 한 감염 전파도 상당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정부와 자치구, 해당 요양병원이 감염 관리를 위해 최선의 정책을 활용했는지 법리적으로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취지다.

코로나19 유행 1년차인 2020년엔 백신 접종도 없었고, 격리 병상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2021년 1월에야 확진 환자들만 전담하는 ‘코로나19 전담 요양병원’이 지정되기 시작했다. 2021년 겨울 백신 효과가 예상보다 빨리 떨어져 요양병원·시설에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전담 병상은 여전히 부족했고 ‘코호트 격리’는 반복됐다.

‘K방역’ 중 하나인 시설의 코호트 격리는 정당한 조치였을까. A씨 측 공동대리인을 맡은 정제형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학술저널인 ‘공익과 인권’(제21호)에서 “코호트 격리 조치가 1인 1실 격리가 어려울 때에 한해 일시적으로, 감염자와 비감염자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도록 시행되어야 한다는 국내외 지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코호트 격리가 감염자에 대한 시설 밖으로의 이송 또는 분리 조치를 시도해보지 않은 채, 기한을 정하지 않고, 감염자와 비접촉자 등을 시설 내부에 분리해 격리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은 채 시행됐다”고 짚었다.

국내 요양병원·시설은 대개 다인실에 ‘3밀’(밀집·밀접·밀폐) 구조로 돼 있고, 입원·입소자들이 대부분 고령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집단감염이 일어나기 쉽고, 감염자 다수가 중증·사망으로 이어지는 ‘고위험 시설’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집단감염이 발생한 주요 사례 11건 가운데 요양병원·시설 관련이 9건이다. 오미크론 정점기가 속한 지난 2월27일~4월2일 5주간 사망자는 9034명에 달했는데, 요양병원·시설에서만 이 기간 3326명(36.8%)이 숨졌다.

이 같은 고위험 시설에 대한 방역정책은 ‘뒷북’이거나 ‘현장을 모르는 조치’인 경우가 많았다. 일반 확진자들이 재택치료를 받고, 누적 치명률(0.13%)이 계절독감 수준(0.05~0.1%)으로 떨어진 지난 3월에도 요양병원에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 TV에선 평화롭게 나오는데, 여긴 전쟁 중”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먹는 치료제는 국내에 지난 1월 처음 도입됐지만 요양병원 원내 처방이 가능해진 것은 4월6일부터였다. 요양병원·시설 종사자들의 감염도 잇따르면서 인력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지난달 말 ‘3차 접종 완료·무증상 확진자’인 요양보호사는 3일만 격리하고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3일 격리 지침은 노동자에겐 가혹한 형벌”이라고 했다. 요양병원과 달리 의료진이 없는 요양시설에서 의료처치가 힘들어지자, 정부가 방문진료가 가능한 ‘기동전담반’을 꾸린 것은 이달 5일이었다.

요양병원·시설에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완료자에 대해 대면 면회가 가능해진 지난해 6월 경기 안산시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부인 이모씨(89)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88)가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요양병원·시설에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완료자에 대해 대면 면회가 가능해진 지난해 6월 경기 안산시 경희재활요양병원에서 부인 이모씨(89)와 입소자인 남편 김모씨(88)가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만2588명의 죽음

[K방역에 가려진 사람들]① 치명률 0.13%는 잊혀진 ‘엔데믹맞이’

위중증 환자 보호자와 유족들
“정부 지침, 감염병 관리만 집중
치료에는 책임지지 않으려 해”

“통계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들
각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엄마는 2021년 11월28일 코로나 양성을 확진받은 후 음압병실이 부족해 구급차 3대를 바꿔가며 대기하다 겨우 병상이 배정돼 음압병동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러다 일반 격리병동으로 전실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음압병상 확보하라는 정부 지침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엄마의 폐가 호전돼 일반병동으로 간 걸로 찰떡같이 믿었습니다. 엄마는 결국 2022년 1월3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엄마 영정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제가 죄인 같고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릴 수 없었다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코로나19 사망자 유족 B씨)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빠를 2022년 1월12일 영원히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17일 동안 면회 한 번 못하고 홀로 쓸쓸히 병마와 싸우시고 ‘선 화장, 후 장례’ 그리고 ‘고인 확인 불가’ 때문에 관 속에 누워계신 사람이 아버지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뜨거운 화장터로 보내드렸습니다. 아직도 남은 유가족들은 그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장례 절차만 밟게 했어도 우리는 정부에 이리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코로나19 사망자 유족 C씨)

지난 8일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인권단체들이 주최한 ‘코로나19 사망자 추모문화제’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단체들은 지난 2월 “많은 목숨을 잃고도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애도와 기억의 장(remember2022.net)’이란 온라인 추모공간을 개설했다. 특히 2020년 유행 초기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크던 때 만들어진 ‘선 화장, 후 장례’ 지침에 유족들은 애통해했다.

이 지침은 올 1월27일 ‘방역조치 엄수 하 장례 후 화장’도 가능하도록 개정됐고, 지난 25일 폐기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시신을 통해 코로나19 감염이 이뤄진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했으나, 현실엔 더디게 반영됐다. 최재홍 변호사는 “(화장을 강제함으로써) 제사 주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며 A씨 측 소송에서 유가족이 겪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다툴 것이라고 했다.

추모문화제에서 유족 B·C씨의 사연을 대독한 마민지씨는 ‘위중증 환자 보호자’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머니는 여전히 에크모(인공심폐기) 치료를 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중환자 병상이 부족할 때 20일이 지난 중환자의 전원·전실을 명령했다. 현재는 의무 격리일 7일을 지난 경우, 혹은 일반병상 입원 중 감염된 경우 등 ‘일반병상에서의 코로나19 환자 치료’가 확대됐다. 당국 입장에선 “일반병상으로 옮겨도 감염 위험이 줄어들었고, 비코로나 증상(질환)에 대한 적정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격리 병상’을 확보하기 위한 ‘병상 효율화’ 작업이기도 했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일반병상으로의 전원·전실은 환자 안전이나 비용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다. 마씨는 “위중증 환자 보호자로 지내며 느낀 것은 정부가 환자의 치료와 회복보다는 숫자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위중증 환자 보호자들이 간담회를 열었는데, 공통적으로 ‘정부 방역지침이 감염병 관리에만 집중돼 있고, 치료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위중증으로 가지 않으려면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고령자들이 집에서 지내다 폐렴이 오고, 치료제 처방 시점도 놓쳐서 위중증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일상회복 조치를 두고는 “괴리감, 고립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K방역을 두고 성공이냐, 실패냐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사후대응 측면에서는 A학점, 사전대비 측면에서는 F학점”이라며 “한국은 마스크 착용, 외출 안 하기, 거리 두기 등 사후대책을 만들고 시민들도 일사불란하게 따랐다. 그렇지만 다음을 준비하는 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불확실성이 크지만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통계에 보여지지 않았던 가치들에 대한 리뷰(평가)가 중요하다. 통계가 말하지 않는, 각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방역을 이유로 외부인 출입이 극도로 제한됐던 요양병원·시설, 전담 병원들에선 지난 2년여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전담 요양병원에 간 고령의 환자는 적절한 의료돌봄 서비스를 받았을까’ ‘혹여 사망했다면 임종의 순간은 존엄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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