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서 하는 모든 일이 불법진료”···간호사 ‘자진신고’만 1만건

민서영 기자

간협,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검체 채취 등 검사가 6932건 ‘최다’

수술 및 수술보조도 1700건 넘어

“할 사람 없어 알면서도 불법진료”

24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4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18일부터 대한간호협회(간협)가 운영해온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닷새 간 1만 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의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들은 “출근해 하는 모든 일이 불법진료 사례”라고 전했다.

간협은 24일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1만2189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앞서 간협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준법투쟁’의 하나로 ‘불법 의료행위 리스트’를 현장 간호사들에게 배포하고 신고센터를 운영해왔다.

대한간호협회가 배포한 불법의료행위 리스트. 간협 제공

대한간호협회가 배포한 불법의료행위 리스트. 간협 제공

신고센터에 접수된 불법진료 행위 유형을 보면, 검체 채취와 천자 등 검사가 69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처방·기록이 6876건으로 뒤를 이었다. 또 L-튜브·T-튜브 교환과 기관삽관 등 튜브 관리가 2764건, 치료·처치 및 검사 2112건, 대리수술·봉합·수술수가입력 등 수술과 수술보조 1703건, 항암제 조제 등 약물관리가 389건에 달했다.

24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4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간협이 배포한 불법 업무 리스트 외에 본인이 시행한 불법 진료 행위가 있으면 자유롭게 기재를 하는 란이 있었는데, 간호사가 인턴 교육과 레이저·내시경 시술, 환자 사망신고, 심지어 대장 용종 절제술까지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불법진료인지 알면서도 하는 이유는···“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현장 간호사들은 “출근해서 하는 일 모두가 불법진료 사례”라고 말했다.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혈액종양내과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 A씨는 지난 23일 경향신문에 “항암 처방, 진단·소견서 작성, 필요한 투약 등 일하는 모든 것이 (원래는) 교수가 해야 할 일”이라며 “레지던트가 항암처방을 내는 법을 모른다. 준법투쟁을 하게 된다면 출근해 할 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하는 일 모두가 (불법진료) 사례”라고 했다.

흉부외과 PA 간호사 B씨는 “PA가 없으면 레지던트(전공의)가 모든 정규수술과 응급수술, 병동·중환자실에서 루틴·추가 처방,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 케어, 응급실까지 모두 커버해야 하는데 전공의가 부족한 기피과는 현재 인원으로 모든 업무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장항문외과 PA 간호사 C씨는 “간호사가 의사 ID로 대리처방, 소독, 서류 작성을 하는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연락 못하는 것을 간호사에게 주로 넘겨서 하고 있다”며 “만약 PA가 (불법진료를) 안 하더라도 병동 간호사가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분비외과 PA 간호사 D씨도 “외래에서 호르몬 검사를 할 때 고위험약물이기 때문에 의사가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PA가 놓고 있다”고 했다.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대한간호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간호사들은 PA 간호사의 불법진료에 의존하는 병원 현장에서 준법투쟁에 참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지역 상급종합병원의 김미화 간호사는 “워낙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PA 간호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병동 간호사들도 의사 ID를 빌려 의사 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준법투쟁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눈앞에 있는 중증 환자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준법투쟁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간협이 공개한 ‘불법인지 알면서도 불법진료를 한 이유’ 중에도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라는 응답이 31.7%(2925건)로 가장 많았다.

간협 “간호사가 개별상황에서 스스로 유·무죄 밝혀야 한단 것이냐”

정부는 간호사가 수행가능한 업무의 범위는 ‘개별적’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밤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간협이 배포한 ‘불법 의료행위 리스트’에 담긴 24개 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불법이라고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행위별로 의료법상 유권해석을 통해 간호사 업무범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시를 제시했다.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탁영란 간협 제1부회장은 “‘간호사가 수행 시 불법이 되는 업무 리스트’는 복지부가 수행하고 보건의료발전협의체를 통해 충분히 숙의된 2021년 ‘진료지원인력(PA) 시범사업’ 관련 1차 연구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며 “복지부 주장대로라면 현장에서 진료 보조를 한 간호사가 개별적 상황에 따라 기소 대상이 되고 본인이 직접 법원에 가서 유·무죄를 밝혀야 한다는 것을 복지부가 말하고 있는 것이고, 정부가 추진한 시범사업 결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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