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구해주세요” 사육곰 300마리의 외침

송진식 기자

2026년부터 사육 금지…도축되거나 구조되거나 갈림길

한 농가에서 사육 중인 반달가슴곰이 고개를 내밀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한 농가에서 사육 중인 반달가슴곰이 고개를 내밀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겨울 초입이던 2021년 11월 22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농장에서 사육 중이던 반달가슴곰(아시아흑곰) 5마리가 탈출했다. 무게 70~80㎏, 태어난 지 3~4년 된 새끼 곰들이었다. 주변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대대적인 포획 작업이 벌어졌다. 낯선 세상 밖이 처음인 새끼 곰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3마리가 바로 농장 인근에서 발견됐다. 1마리는 사살됐고, 2마리는 포획됐다. 이튿날 역시나 멀지 않은 곳에서 1마리가 또 발견됐다. 사살됐다. 남은 1마리는 제법 멀리 갔다. 4개월이 지난 이듬해(2022년) 3월에야 발견됐다. 산 하나를 꼬박 넘어간 곳에서다. 본능적으로 동면을 했으리라는 추정도 나왔다. 그 또한 사살됐다.

“제발 구해주세요” 사육곰 300마리의 외침

반달가슴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국내에선 천연기념물 제329호(토종 반달가슴곰)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사육곰은 예외다. 동남아·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다른 아종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육곰의 새끼 역시 부모의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사육장을 탈출한 곰은 포획하기도 어렵고, 사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사살된다.

지난해 12월 20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사육곰의 소유·사육·도축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사육곰 종식법)’이 통과됐다. 1981년 농가 소득 증대 목적으로 곰 사육을 허용한 이래 40년 넘게 이어져 온 사육곰 동물 학대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법안이다. 국내 동물권 증진 활동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법이지만 아직 ‘숙제’가 남아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2026년까지 현재 사육 중인 322마리의 반달가슴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도축하거나 구조하거나. 사육곰들이 양 갈래 길 앞에 섰다. 2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바늘 꽂아 산 채로 쓸개 채취, ‘국제적 망신살’

“제발 구해주세요” 사육곰 300마리의 외침

처음부터 웅담(곰쓸개) 채취를 위해 곰 수입과 사육을 허용한 건 아니다. 농가에서 곰을 수입해 기른 뒤 재수출하면 돈벌이가 될 것으로 정부는 생각했다. 당시 담당 부처도 산림청(현재는 환경부)이었다. 정부 인식은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멸종위기종인 곰을 놓고 국제적으로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곰 사육을 허용한 지 4년 만인 1985년 7월에 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때까지 수입된 사육곰이 모두 439마리다.

정부가 곰 사육 문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사이 허술한 규정문제까지 더해지면서 1990년대 들어 불법적인 웅담 채취가 기승을 부렸다. 웅담이 만병통치약인 양 잘못 알려지면서다. 살아있는 곰에 링거 바늘을 꽂고 ‘실시간’으로 웅담을 채취하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 야생동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의 재수출은 금지됐다. 이후 사육곰 문제는 열악한 사육환경과 학대, 불법 증식과 착취, 탈출로 인한 사고 등을 양산하며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불법 증식으로 한때 1300여 마리까지 늘었던 사육곰 수는 2000년대 들어 동물권 인식이 높아지고, 웅담 수요가 감소하면서 줄기 시작했다. 정권이 수차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며 방치되다시피하던 사육곰 문제의 돌파구는 2021년 8월 정부, 농가, 시민단체(동물보호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가 출범하면서 마련됐다. 같은해 12월 곰 사육 종식을 위한 민관 협약이 체결됐다. 지난해 12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야생동물법 개정안의 사육곰 관련 신규 조항들은 이 협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말 집계한 내역을 보면 전국 21개 농가에서 322마리의 곰을 사육 중이다. 웅담 채취 목적의 사육용 곰이 284마리(18개 농가), 개인 전시용 사육곰이 38마리(3개 농가)다. 야생동물법 개정안에 따르면 2026년부터 사육곰의 소유·사육·증식, 그 부속물(웅담)의 운반·유통·섭취가 금지된다. 이들 322마리의 사육곰 모두가 해당 규정 적용 대상이다.

■2년 내 구조 못 하면 모두 도축 위기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에 있는 곰 피난처 ‘애니멀스 아시아 생추어리’  /동물권 행동 카라 제공

베트남 땀다오 국립공원에 있는 곰 피난처 ‘애니멀스 아시아 생추어리’ /동물권 행동 카라 제공

법이 마련됐다고 해서 사육곰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게 아니다. 현재 사육 중인 322마리의 곰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어서다. 2026년부터는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되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사유재산’에 해당하는 곰을 그때까지 어떻게든 처분해야 손해를 줄일 수 있다. 열 살이 넘은 사육곰은 웅담 채취를 위한 도축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전국 322마리 사육곰 중 열 살 미만은 몇 마리 안 된다. 내년(2025년) 말까지 사육곰을 농장에서 구조하지 못하면 대다수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정부도 나름 준비는 하고 있다. 법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사육곰 보호시설을 설치·운영하거나 공공기관·법인 등에 위탁해 보호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환경부는 농장에서 사육을 포기하는 곰들을 수용해 보호하기 위해 충남 서천과 전남 구례에 각각 보호시설을 건립할 예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예산 90억원이 투입되는 구례 보호시설은 올해 말 완공 예정이고, 240억원이 투입되는 서천 보호시설은 2025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구례 보호시설의 경우 연간 10억원의 운영 예산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보호시설은 짓고 있지만 정작 농장주들로부터 사육곰을 ‘어떻게’ 이관받을 것인지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다. 농장주들은 사육곰들을 그냥 포기할 생각이 없다. 결국 농장주들로부터 사육곰을 매입해야 하는데, 환경부는 “매입 예산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 문제는 2021년 민관협의체에서도 주요 과제로 논의됐다. 협약에서는 농가에서 보호시설로 곰을 이송하기 위해 필요한 매입 비용 등을 동물보호단체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협약에 따라 동물보호단체들이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동물자유연대는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사육곰 22마리를 구조해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보호시설로 보냈다. 이 사례는 다큐멘터리 영화 <곰마워>로 제작돼 지난해 소개됐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등은 모금활동을 통해 조성된 비용으로 강원도 화천에 ‘곰 피난처(생추어리)’를 조성 중이다. 이 같은 전례를 들어 동물보호단체들은 실제로 곰을 매입해 정부나 해외 보호시설 등으로 보내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이 생각하는 매입 비용과 농장주들이 생각하는 매입 비용 간 격차가 현재로선 너무 크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단체 측은 곰 1마리당 매입 비용을 300만~400만원을 생각하는 반면 농장주들은 2000만~3000만원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무리 규모가 큰 단체라도 매입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곰 사육 농장주 A씨는 “농가에서는 20년 넘게 시설비와 인건비, 사료비 등 막대한 돈을 들여 곰을 사육해왔다”며 “300만~400만원으로는 손해가 막심해 매각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정부도 법만 만들어놓고 방관하지 말고 사육곰 매입이나 농가의 전업 등 예산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개 식용 종식 문제도 ‘닮은 꼴’

동물보호단체 등이 지난 1월 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식용 종식 특별법’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농가에서 반발 중이어서 험난한 시행과정이 예상된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동물보호단체 등이 지난 1월 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식용 종식 특별법’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농가에서 반발 중이어서 험난한 시행과정이 예상된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국제 멸종위기종인 곰 보호에 대한 우리나라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곰 사육 및 웅담 채취를 종식하고, 남아 있는 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법으로 제도화함으로써 곰 사육과 관련한 그간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국회가 야생동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밝힌 입법 취지다. 남아 있는 사육곰에 대한 매입·구조가 늦어질수록 도축, 폐사, 사살 등의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입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는 “사육곰 문제는 우리 사회 틀 안으로 들어와 있는 야생동물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해줄 지표가 될 것”이라며 “남아 있는 사육곰을 살리기 위한 정부와 시민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사육곰 문제는 최근 특별법이 마련된 ‘개 식용 종식’ 문제와 닮은꼴 선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개식용 종식법)’이 통과됐다. 2027년부터 식용 목적의 개 사육이나 도살이 전면 금지된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특별법을 동물권 증진을 위한 또 하나의 기념비적 성과로 꼽고 있다.

개 식용 종식의 경우 사육농가 절반 이상이 “결사반대”를 외치며 협의를 거부한 가운데 특별법이 통과됐다. 험난한 시행과정이 예상된다. 사육 중인 식용견 수도 52만 마리(정부 추정)에 달해 사육곰보다 훨씬 문제가 복잡하다. 사육농가, 유통업체, 식당 등에 대한 보상 및 전업 지원 등 개 식용 종식에 필요한 비용만 1조원이 훌쩍 넘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장은 “정부와 국회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종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농가의 생존과 권리를 위해 헌법소원, 개 반납 운동, 국가·정치 폭력에 대한 난민신청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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