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키지 못하는 사람들

“섭식장애, 치료받지 못하고 혼자 고립되지 않게···이 병의 본질 제대로 알아야”

김향미 기자
김율리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본인 제공

김율리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본인 제공

음식 또는 몸무게와의 투쟁, 그 이면에 감추어진 정서적 어려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는 섭식장애 환자일 수 있다.

김율리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제대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 소장)는 최근 몇 년새 건강보험공단 진료인원 통계상 섭식장애 환자가 늘어난 데 대해 “빙산의 일각만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국제섭식장애학회 종신직 석학 회원으로 선임된 섭식장애 권위자다. 김 교수를 지난 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섭식장애는 정신질환의 하나로 먹는 행동과 관련한 이상 행동과 생각”을 통틀어 일컫는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신경성 폭식증, 폭식장애 등이 포함된다. 김 교수는 “이런 전형적 섭식장애들은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고 몸무게나 몸매에 대해 왜곡하는 생각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서 ‘정형화된 섭식장애’의 유병률은 인구의 3%로 나타났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55만명에 달한다. 체중은 정상범위에 있지만 거식증 양상을 보이거나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 등 ‘비정형화된 섭식장애’를 포함하면 미국에선 인구의 9%가 섭식장애에 해당한다고 조사됐다. 김 교수는 “섭식장애는 더 이상 특정인의 질병이 아니라 누구든지 관련될 수 있는 질환”이라고 했다.

섭식장애는 10~20대 때 발병하는 사례가 많다. 김 교수는 “사춘기 에스트로겐 호르몬과 관련된 체형의 변화부터 청소년기의 내·외적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며 “청소년기엔 자아와 외모에 민감해지는 부분, 이 시기 적응의 어려움이나 또래 간 외모에 대한 언급이 일상화된 문화 등이 원인이 된다”고 했다. 이어 “사회가 개개인을 다양한 측면에서 인정해야 하는데 외모, 성적 등 획일화된 성취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의 영향도 크다”고 했다. “스스로 존재를 인정받고자, 남에 대한 의식 때문에, 자신에 대한 확신을 느끼기 위해, 완벽주의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로서 섭식장애를 겪기도 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간 섭식장애 환자는 왜 온전히 그 규모가 드러나지 않았을까. 치료를 원치 않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이 병의 특징 중 하나다. 그리고 관리·치료체계가 부실한 탓이 크다.

국내에서 섭식장애 환자 규모를 공식 파악한 유병률 조사는 2006년 정신건강실태조사(5년 주기)가 마지막이다. 당시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대식증’에 한해 조사한 섭식장애의 유병률은 0.1%였다. 전문가들이 볼 때 당시 조사는 섭식장애 유병률을 조사하기엔 설문 설계가 미흡했다. 김 교수는 “그마저도 그 이후엔 섭식장애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의 실태를 반영하는 정확한 역학조사가 우선돼야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섭식장애는 지속적 영양 부족으로 영양실조부터 갑상선 호르몬 저하, 무월경, 난임, 골다공증, 심장·신장 합병증 등 다양한 신체적 질환을 겪는다. 우울과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도 동반하는데 만성화되면 자살 유병률도 높다.

김 교수는 “섭식장애는 정신적·신체적 치료가 병행돼야 하는데 현재 효과가 입증된 근거기반의 치료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없다 보니 진단조차 누락되는 현실”이라며 “섭식장애 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섭식장애로 인한 2차 합병증, 예를 들어 갑상선 호르몬 저하 등에 대한 치료를 받더라도 근본적으로 섭식장애를 치료하지 않게 되면 결국 섭식장애도, 합병증도 좋아지지 않게 된다.

만성화된 거식증의 경우 모든 정신질환 가운데 치사율이 가장 높다. 김 교수는 “만성화된 거식증 환자의 경우 치사율이 10%에 이른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사실상 독립적 생활이 불가능한데도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성화된 거식증은 중증난치성질환 지정을 통해 산정특례제도(과도한 의료비 지출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울증, 불면증 등 많은 정신질환이 실손 의료보험 보장을 받는 것처럼 섭식장애도 실손 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섭식장애의 실손보험 적용은 환자들이 적극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합병증을 감소 시켜 전체 의료비 지출이 절감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섭식장애는 비약물 치료(영양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가 꼭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일본에는 지역마다 섭식장애 거점센터가 있다. 우리나라도 환자와 가족에게 섭식장애 정보 및 상담 제공, 치료자에 대한 교육 등을 수행할 국가가 관리하는 섭식장애 지원센터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뜻 섭식장애와 관련해 앙상하게 마른 몸이나 먹고 토하는 행위,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김 교수는 “대중들은 이 병의 보이는 모습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고, 다이어트의 일종이나 의지나 생활스타일로 여기려 한다”며 “그러나 일단 영양실조로 인한 뇌기능 저하가 오는 상태가 되거나, 절식과 폭식이 반복돼 식욕 통제 중추의 기능이 와해하는 상태가 되면 스스로 고칠 수 없는 병의 상태가 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병은 조기발견 조기 치료 시 완치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라며 “병이라고 인식된다면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섭식장애 환자 가족들의 어려움도 크다고 말한 김 교수는 “가족들이 환자로 인해 지나치게 동요되기 쉬운데 침착하고 따듯하게 그리고 일관된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열리는 제2회 섭식장애 인식주간은 국내 섭식장애 환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자리다. 김 교수는 이 행사를 당사자들과 함께 기획하고 참여한다.

“이 병을 겪는 사람들은 고립됩니다. 이 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 병의 본질을 제대로 알려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행사를 계기로 환자, 가족, 치료자들이 마음을 모을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2024)
*일시: 2월28일(수) 19:00 ~ 3월5일(화) 22:00
*장소: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115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3층 브릭스 ROOM4
*신청 기간: 2월16일(금) 9:00 ~ 2월26일(월) 18:00
*신청 링크: https://event-us.kr/edaw/event/78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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