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택시기사, 출근길 서울 한복판서 기 싸움하다 결국…

글·사진 이상호 기자

19일 아침 9시30분 세종로에서 생긴 일

19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도심인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로.

5차로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가던 일산발 광역버스와 6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던 개인택시가 서로 스쳤다. 버스에는 자국도 남지 않고, 택시는 왼쪽 사이드미러가 꺾이면서 1㎝가량 틈이 생긴 경미한 사고였다.

버스와 택시 기사는 사고가 나자 하차해서 잘잘못을 따지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마치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도 하는 듯했다. 이들은 차량을 복잡한 도로 위에 그대로 세워놓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19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난 광역버스와 택시가 도로에 멈춰선 채 이동하지 않아 버스 승객들이 다른 차량으로 옮겨타고 있다(위쪽 사진). 경미한 접촉으로 택시의 사이드미러 케이스에 1㎝가량의 틈이 생겼다(아래쪽). 이날 두 차량으로 세종로 일대는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19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난 광역버스와 택시가 도로에 멈춰선 채 이동하지 않아 버스 승객들이 다른 차량으로 옮겨타고 있다(위쪽 사진). 경미한 접촉으로 택시의 사이드미러 케이스에 1㎝가량의 틈이 생겼다(아래쪽). 이날 두 차량으로 세종로 일대는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30여명의 버스 승객들은 “출근 늦었어요” “다친 승객도 없고, 차도 파손되지 않았으니 연락처 교환하고 출발합시다”라며 항의했다. 이날은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면서 교통정체가 심했고, 버스운행도 평소보다 30분 이상 지체된 상황이었다. 상당수 승객들은 회사에 교통상황을 전하는 등 ‘지각출근’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두 운전기사는 승객들의 불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버스기사는 “다른 차량을 이용하시라”며 택시기사와 따지기에 바빴다. 당황한 승객들은 출근시간에 쫓겨 다른 버스를 타기 위해 빗속을 뛰었다. 승객들의 볼멘소리에 버스기사는 “자칫 뺑소니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어 출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차에 상처가 났고 잘못한 게 없다. 차를 옆으로 빼면 무슨 문제가 생길 줄 누가 아느냐”고 말했다.

두 운전기사의 다툼이 이어지면서 교통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5·6차로는 아예 차량들이 전진을 못해 100여m 줄을 섰고, 일부 차량은 급히 차로를 바꾸느라 3·4차로마저 교통혼잡이 가중됐다.

10여분이 지나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두 운전기사는 경찰을 보자마자 다시 자신의 주장에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관은 이들에게 급히 두 차량을 60여m 앞 도로변으로 이동토록 했다. 하지만 이들 차량 2대는 옮겨진 뒤에도 다시 6차로를 막아 우회전 차량들의 정체는 20여분간 더 지속됐다.

이날 사고현장은 일단 사고만 나면 차량 그대로 세워두기, 목소리 높여 싸우기, 타인 불편 무시하기, 신고하고 보기 등 어긋난 교통문화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버스 승객 박모씨(46)는 “사이드미러에 틈이 생긴 경미한 사고임에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차를 세워두고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티는 문화는 아마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두 운전기사는 경찰서에서 사고를 신고한 뒤에 양측 보험사에 연락하기로 하고 곧바로 돌아갔다”며 “두 차에는 블랙박스가 있어 잘잘못을 밝히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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