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된 페미니스트

“성의 상품화” “성의 자유”… 같은 사안에도 다른 시선

이윤정 기자

성 상품화시대의 페미니즘 걸그룹 ‘몸의 상품화’ 논란에 ‘외모가 성공의 열쇠’ 시각도

‘못생긴 여자들의 피해 의식’ ‘예쁘고 똑똑한 여자들의 영역’ 그녀들 내부서도 정의 달라

2015년 현재 페미니즘을 옥죄는 논쟁은 다양하다. 한쪽에선 페미니즘을 ‘못생긴 여성들의 자기변명이자 피해 의식’이라고 비난한다. 반대편에선 페미니즘을 똑똑하고 예쁜 여성들의 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지난해 8월 미국의 유명 팝가수 비욘세가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페미니스트(FEMINIST)’라는 글씨와 함께 등장한 모습은 극단의 논쟁을 보여준다. 흑인 페미니스트 학자 벨 훅스는 “비욘세는 테러리스트이자 안티페미니스트”라며 “자신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상업화는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예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미국 퍼듀대학 록산 게이 교수는 “여성 스스로가 성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하고 싶다면 허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은 외모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몸 계급화 등이 얽히고설켜 더욱 복잡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예쁘고 똑똑하거나 드세고 못생긴 여성, 여성 우월주의자로 몰리기 일쑤다. 사진은 다큐영화 <나는 10대 페미니스트였다> 포스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예쁘고 똑똑하거나 드세고 못생긴 여성, 여성 우월주의자로 몰리기 일쑤다. 사진은 다큐영화 <나는 10대 페미니스트였다> 포스터.

■ 외모지상주의가 성의 상품화로 직결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性)은 성을 강조하는 소비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은 여성과 성의 관계를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성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소비문화는 여성의 몸에서 성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섹시하다’는 표현이 아름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에바 일루즈는 저서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의 소비학>에서 “소비문화는 욕구를 강조하고 섹스는 욕구의 일반적 비유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외모지상주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성의 상품화를 촉진시키는 주요인이다. 외모지상주의는 심각한 수준이다. ‘외모가 아름다운 것이 선하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착한 몸매’ ‘착한 얼굴’이라는 용어부터 그렇다. 김양선 한림대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몸’은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산업과 미디어가 결합해 다이어트, 성형, 몸 만들기 등 이윤을 만드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사람들은 이를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과거 외모는 천부적인 것이었지만 현재는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됐다”며 “2000년대 이후엔 스펙 쌓기 열풍이 ‘몸’에도 적용돼 얼굴과 몸매를 가꾸는 것이 능력처럼 됐다”고 덧붙였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김고연주 연세대 젠더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과거엔 주로 여성이 남성의 시선에 맞춰 몸을 가꾸고 관리했다면 현재는 남성도 외모 관리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 ‘키 180㎝ 이하 남성은 루저’ 발언 이후 남성 외모 비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외모 비하 발언이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전 세대를 걸쳐 ‘가꾼 몸은 아름답고 아닌 몸은 혐오하는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덧붙였다.

[적이 된 페미니스트]“성의 상품화” “성의 자유”… 같은 사안에도 다른 시선

■ 아이돌 걸그룹과 소녀 육체 상업화

상업적 페미니즘과 소비주의의 결합은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온라인상에서 여성 혐오를 드러내면서도 걸그룹에 대한 동경과 찬사, 비난과 질시가 동시에 이뤄지는 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외면적으로는 성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지만 실상은 젊은 여성성이 더욱 견고하게 규제돼 왔다”고 말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기획사를 통해 만들어진 ‘걸그룹 신드롬’만 봐도 알 수 있다. 10대 소녀는 걸그룹의 음악, 춤, 패션 스타일을 따라하고 30·40대의 삼촌 팬덤은 걸그룹과 공모적 가족관계를 맺는다. 가부장적 관계 안에서 남성은 소녀 이미지 소비를 정당화하고 10대 소녀들은 걸그룹을 본받는 자기성애화를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소녀산업은 한류 열풍을 주도하면서 ‘한국의 유럽 침공’식의 국가주의화를 만들기도 한다”며 “여기엔 ‘롤리타 민족주의’라 부를 수 있는 이념도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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