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어떻게 적이 되었나

박은하 기자

IS 가담 추정 김군 ‘여성혐오’ 이후 논쟁 부활

▲ “여성부, 게임 막는 페미들” 초등생 아들 말에 엄마 충격
신자유주의시대 남성 위기감… 경제적 라이벌로 여겨 공격

경기 군포시에 사는 주부 서남희씨(48)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아들이 대화 도중 “여성부(여성가족부)는 게임 못하게 하는 페미들(페미니스트들)”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선언한 이슬람국가(IS)의 김군과 같은 사례가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어떻게 적이 되었나

‘페미니스트(feminist)’는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 강렬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IS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소년 김모군(18)은 지난해 10월 터키로 떠나기 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지금은 남자가 차별받는 시대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고 남겼다.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서 ‘페미니스트’는 며칠 동안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머물렀다. 여성단체는 페미니스트의 정의에 ‘여성숭배자’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 등을 넣은 국립국어원에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연애 칼럼니스트인 김태훈씨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문제”라는 칼럼을 잡지에 기고했다 반발을 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이 봇물을 이뤘다.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대학생 윤수정씨(25·가명)는 “선언만으로 뭔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악’소리라도 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새삼 이슈로 떠올랐다. 여성혐오가 IS와 같은 극단주의와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2005년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IF)가 폐간하는 등 최근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를 전면에 내건 활동이나 단체들이 급속하게 사라져갔다. 1999년 군 가산점 폐지, 2001년 여성부 출범 등 페미니즘 운동이 2000년대 초반 성취를 이룬 것과 동시에 반감도 커졌다.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보다 ‘페미X’이라는 욕설이 친숙했다. 낙인찍기 공격에는 ‘개똥녀’ ‘된장녀’ 같은 비하 표현은 물론 성기에 비유한 자극적인 언사까지 들어 있다. 지난해 민·관·군 병영혁신위는 군 가산점제 부활을 권고해 다시 논란을 예고했다.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은 현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과거 ‘여성멸시’와 구분한다. 여성멸시가 과거 남성이 우월한 입장에서 여성을 깔보는 것이었다면, ‘여성혐오’는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을 경쟁 상대 내지 무임승차자로 여기고 혐오한다.

손 위원은 “신자유주의 시대는 민주주의와 노동의 위기를 동시에 부른다. 기득권이었던 남성들이 경제적 안정과 정치적 참여의 봉쇄된 공백을 여성에 대한 혐오로 채운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신자유주의에 반격할 수 있는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적이 된 페미니스트] 20대 여성들의 체험 “온라인서 페미니스트라 밝히면 욕설만 되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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