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된 페미니스트

경제적 낙오자 양산하는 양극화 시대… ‘남성의 위기’가 페미니즘 혐오 부추겨

박은하 기자

본질은 생계·노동의 문제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우선 불편해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몸에 밴 반응 정도로 치부하기엔 도를 넘는 경우도 있다. 2001년 부산대 ‘월장’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흡연 시위를 통해 여성주의를 선언한 부산대 여학생들은 사이버 공간에 여성주의 매체인 ‘월장’을 만들었다. 그들은 웹진에서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기획을 통해 대학 내 예비역 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발했다. 파문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국 예비역들은 사이버 게시판에서 “전쟁 나면 너그 X들부터 쥑이고 봐야 쓰것다”는 ‘점잖은’ 공격부터 극단적인 성적 폭언까지 퍼부었다.

15년이 흐른 지금 페미니스트와 남성의 관계는 편해졌을까. 틈새가 더 벌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림대 신경아 교수는 <젠더와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확장 속에서 대다수의 남성은 더 이상 생계 부양자로 살기 어려운 조건에 놓였다”고 말했다. 실제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 뒤 남성들은 기존 ‘그들만의’ 공적 영역을 두고 여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단속사회>의 저자 엄기호씨는 ‘루저 문화’란 개념을 빌려왔다. 엄씨는 “양극화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에 비해 루저라는 의미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들로부터 루저로 낙인찍힌 존재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군 가산점제·징병제 논란은 이 같은 남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군대는 남성들이 갖는 유·무형의 기득권을 함축하는 단어다. 통상 남성들의 노동은 국가와 사회, 가족에 대한 희생이라 여기는 반면, 여성들의 노동은 자아실현 정도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전 영역에서 여성들과 경쟁해야 한다. 군 가산점제 폐지와 징병제 유지는 이런 남성들 입장에선 역차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성의 위기를 부추기는 본질은 노동 문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남성 입장에선 여성들과의 경쟁이 생계가 걸린 일이라는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엄기호씨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다수 여성들이 빈곤을 재생산하는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면서 “남성의 위기가 아니라 노동의 몰락이다. 노동의 몰락이 남성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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