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력 부재·힘겨루기… 최저임금위 예고된 파국

이영경 기자

합리적 기준 마련·공익위원 공공성 강화 시급

최저임금위원회가 노사 위원 동반 사퇴라는 파국을 맞은 것은 지금까지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녀온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결과다. 공익위원의 중재력 부재, 사용자 측의 막무가내식 태도, 합리적 기준 없이 노사 간의 힘겨루기로 정해지는 최저임금 논의구조가 매년 반복되다 결국 위원회 자체가 깨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파행으로 시작해 파행으로 끝났다. 친재계 성향의 박준성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으로 유력시되면서 이에 반대한 노동계 측 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회의는 2회 연속 파행을 겪었다.

공익위원의 중재력 부재는 노사 양측을 자극하는 불씨가 됐다. 지난달 29일 열린 회의에서 법정시한을 1시간30분 앞두고 공익위원이 2.9~10.9% 범위에서 노사 양측이 수정안을 내놓으라고 제안했지만 민주노총은 “최저한도가 물가상승률(3.9%)에도 못 미친다”며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30일에도 공익위원은 회의 시작 13시간 만인 1일 오전 5시가 돼서야 6.0~6.9% 인상의 중재안을 내놓았다.

조금이라도 불리하게 논의가 시작된다 싶으면 일단 뛰쳐나가고 보는 노사 위원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파행을 부르는 원인이 됐다. 민주노총 위원 4명이 먼저 회의에 불참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안이 투표에 부쳐질 경우 자신들이 책임을 지게 될까 부담스러웠던 한국노총 위원 5명마저 사퇴를 선언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사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최저임금법 취지와 결정기준을 무시하고 물건값 흥정하듯 중재안을 내고, 걸핏하면 위원들이 퇴장하며 파행을 빚는 논의구조를 지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3.1% 인상안을 내놓고 버티기를 하던 사용자 위원 9명도 기다렸다는 듯 사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공익위원들이 일방적으로 노동계를 잡기 위한 안을 내놨다”고 말했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협상을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다시 열어 내년 최저임금 심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제도개선 없이는 내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민주노총은 본격적으로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정하는 것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또한 공익위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익위원을 정부에서 임명하는 방식을 노사에 추천권이나 제척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사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논의 기준이 없다보니 한 해는 경영계가 퇴장하고 한 해는 노동계가 퇴장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을 고려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최저임금은 생계비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며 “소모적 접전만 벌이다가 결국은 기껏 5% 내외 올라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최저임금위원회가 해마다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이니 만큼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토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정할 것과 못 받은 최저임금을 정부에서 우선 지급하고 회사로부터 정부가 돈을 받아내는 내용을 담았다. 홍 의원 측은 “노사 위원이 모두 사퇴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현행 최저임금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정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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