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126년

‘99% 노동·1% 끼’가 만드는 세상

권재원 | 성원중학교 교사

권재원 | 성원중학교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꿈과 끼.” 최근 교육계에서 가장 많이 남용되는 말 중 하나다. 보통 ‘진로교육’과 한 묶음이 된다. 교육부나 교육청 복도와 로비마다 “꿈과 끼를 찾는 진로교육”이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걸려 있다. 얼핏 보면 좋은 말이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세상에는 ‘꿈과 끼’와 별로 상관없는 일들이 많으며, 하필이면 그런 일들이 대체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운반, 판매를 담당하는 중요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노동절 126년]‘99% 노동·1% 끼’가 만드는 세상

세상은 꿈과 끼와는 거리가 먼 이런 일들을 누군가가 하기 때문에, 즉 노동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돌아간다. 한 사람의 스티브 잡스가 혁신의 영웅이 되려면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꿈과 끼와는 거리가 있는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는 노동하는 사람들 덕분에 움직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노동을 해야 하며, 학생들 역시 졸업하면 대부분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노동은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지루한 고역의 성격을 털어내지 못한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노동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하지만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이라는 말처럼 생계를 위해 하는 일뿐 아니라 이른바 창조적인 작업조차 지루한 노동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말을 “99%의 노동과 1%의 끼”라고 바꾸면 적당한 비유가 될 것이다. 갈채를 받는 화려한 순간 뒷면에는 언제나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이 감추어져 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그토록 많은 예술가, 댄서, 배우, 이벤트 기획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등등이 필요하지 않다. 세상에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엔지니어, 산업 노동자, 농민, 운수업자, 판매원들이 필요하다. 선진화된 사회란 이런 종류의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일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그 고역을 견뎌내면서 성실하게 수행하며, 또한 그 노고에 대해 적절한 보답과 존중을 받는 사회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 그런 사회 풍토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이는 반드시 교육을 통해 길러야 한다.

교육은 노동을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에 감춰두지도, 마냥 장밋빛으로 포장하지도 않아야 한다. 노동이라는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경험을 통해 몸에 익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또 인내의 쓴맛은 필연적인데, 달콤한 열매가 대가로 주어지지 않을 경우 그 열매를 따는 방법, 누군가가 그 열매를 가로채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익히는 그런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노동’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노동’이라는 용어 자체가 꼭꼭 숨어 있었다. 그 대신 유사품으로 ‘진로·직업교육’이 유행했다. 자유학기제도 진로교육, 진로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직업들 중 ‘꿈과 끼’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많지 않다. 세상의 직업들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직업’은 ‘노동’하라고 있는 것이지 ‘재미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는’ 직업조차 사회의 필요에 따른 ‘노동’을 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돈을 번다. 이런 냉정한 현실을 감추고 꿈과 끼를 찾으라고 장밋빛을 칠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며, 거기에다 “개천에서 용 난다”까지 붙이며, 이건 사기다.

교육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자 그 사람의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노동’해야 함을, 그 노동이 때로는 꿈과 끼와는 무관한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임을, 하지만 그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 노동의 쓴 인내의 대가로 달콤한 행복의 열매를 얻을 권리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학교가 이런 것들을 중심에 두고 교육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사치품이나 장식에 불과하며 공교육 기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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