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건방져 보인다”

박용필 기자

청소년들의 몰이해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우는 초등 6-2 사회교과서 54쪽에는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계산원에 관한 두 가지의 그림(사진)이 실려 있다. 하나는 마트 계산원이 의자에 앉아서, 또 하나는 서서 계산을 하는 그림이다. 서 있는 마트 계산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다면 앉아서 일하는 마트 계산원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 교사가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학생들 상당수가 “건방져 보인다” “예의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힘들게 일하는 계산원들을 위한 당연한 배려’와 같은 답을 예상했던 교사는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노동인권을 생각해보라는 취지로 삽입된 내용이지만, 상당수 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것이다. 해당 교사는 “‘건방져 보인다’는 답을 한 학생들 대부분이 지극히 모범적인 학생이어서 더 의외였다”며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에게 체화된 것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노동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문제 등이 결합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 사회교사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해당 교사는 2년 전 학생들에게 조를 짜 기업체를 운영해보게 하는 수행평가를 실시했다. 5개 학급에서 6명씩 30개조가 이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30개조 가운데 단 한 개조를 빼놓고는 모두 직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했다.

이 교사는 “수익이나 최대 이윤만 염두에 둘 뿐 그 최저임금으로 노동자가 어떻게 생활을 꾸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학생들은 노동문제를 노동자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나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노동이 부끄러워요?]앉아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건방져 보인다”

■학생 대부분 노동자가 되지만…

학생들은 본인들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실상 대다수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5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 70%가량이 관리직이나 전문직 등을 희망하며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20% 정도만 그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실제 취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관리직은 1.5%에 불과했고, 전문직은 19.8%에 그쳤다. 대신, 마트 계산원 등 판매직이 10.7%, 장치·기계조작직 11.9%, 서비스직 10.3% 등 학생들의 희망 직종과는 거리가 먼 직종이 실제 취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b>“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b>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학생들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가치나 권리는 배우지 못한 채, 노동자보다는 사용자나 소비자의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학생들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가치나 권리는 배우지 못한 채, 노동자보다는 사용자나 소비자의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노동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노동의 소중함이나 가치, 또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을 제대로 알아야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노동자로서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권리 배운 적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있고(95.3%, 5298개교), 진로와 직업 교과 채택률도 95%가량에 이른다. 이미 진로교육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실제 상황에서 절실한 노동의 가치나 노동자의 권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

[노동이 부끄러워요?]앉아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건방져 보인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교수가 2013년 전국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 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노동의식 및 노동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동의’하거나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5.5%에 불과했다. 반면 부족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61.1%에 달했다.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고 있다는 응답은 15.1%,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의 의미, 사회적 연대 등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응답은 19.2%에 불과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노동시장이나 노사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8.5%에 불과했다.

영국의 교육·고용부 장관실 향상교육진흥위원회의 자문그룹 보고서에는 영국의 필수과목인 ‘시민교육’의 모토가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시민을 “공동체 구성원이고 소비자이며 가족 구성원이고 평생학습자이면서 납세자이고 유권자이고 노동자”라고 규정하며, 이 중 어떤 한 역할도 빠져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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