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제로’ 돈 많은데 고용 외면한 공공기관부터

박용하 기자

고연봉 ‘신의 직장’ 대부분 비정규직 쥐어짜 경영 효율

기재부, 실태 파악 진행 중…노동자들은 서로 양보해야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 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일부 공공기관들은 그간 충분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고용으로 연결하지 않고, 기존 임직원들은 고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었다. 소위 ‘신의 직장’으로 불려온 이들 기관이 비정규직 제로화의 첫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6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공공기관들의 비정규직 실태 파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우선 간접고용(파견직) 규모가 큰 10개 공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17일 회의를 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재정 여력이 충분한 공공기관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재정 여력이 충분하고 기존 임직원들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신의 직장’ 공공기관 중 상당수가 1000명 이상의 인력을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 중 대통령이 방문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제외하고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곳은 한국공항공사였다. 공항공사는 지난해 2000억원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등 좋은 경영지표를 기록했고, 기관장에게는 2억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영효율화의 배경에는 4061명에 달하는 고용 불안정 노동자들이 있었다. 공항공사 이외에도 마사회나 건강보험공단, 카이스트 역시 좋은 경영지표를 기록하면서도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비정규직·파견직으로 유지했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문제는 그간 지속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카이스트는 고학력 노동자 다수를 비정규직 포스트닥 연구원 혹은 계약직 연구교수로 채용하고 있다. 건보공단의 파견직은 주로 전화상담으로 ‘감정노동의 외주화’란 지적을 받았다. 강원랜드는 지역민들 다수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지역고용 창출’이란 구호를 무색하게 했다.

재정 여건이 좋음에도 고용에 소홀한 이들 공공기관에서 정규직화 작업이 이뤄지면, 정부나 국민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재원 부담이 없다. 또 ‘성과급 잔치’에 쓰일 재정 여력을 고용 확대에 투입한다는 측면에서 공공기관의 과다 연봉 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과제는 있다. 공공기관들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파견직의 형태를 확인해야 하며, 자회사 도입 등 정규직 재고용의 방식도 결정해야 한다. 또 기존 노동자들과의 갈등 문제, 재정 여건상 정규직 전환이 힘든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논란도 해결 과제다.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을 입안한 김용기 아주대 교수는 “정규직화가 시작되면 노동자들은 서로 의견을 모으고, 필요한 경우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공기관 정규직화를 통해 사람보다는 경영효율성을 우선시하던 기존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일부 민간기업들은 경영 여건이 나아지고 고용을 더 창출할 여력이 생겨도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인력을 줄이거나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규직 직원들마저 과도한 업무 강도에 시달릴 때가 많다.

김 교수는 “핵심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외주화하는 방식은 현재 국내 기업들의 경영 방식에 있어 ‘ABC’로 인식돼 있다”며 “하지만 이는 중·장기적으로 공동체는 물론 그 기업의 경쟁력마저 갉아먹을 수 있다. 공동체를 염두에 둔 경영 방식을 민간으로도 조속히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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