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청소노동자 스러진 휴게실, 폭염에 창문 하나 없었다

글·사진 탁지영 기자

서울대 제2공학관 지하쪽방서 휴식시간에 잠자다 숨져

1평 공간엔 곰팡이 냄새…환풍기도 노동자가 직접 설치

노조·학생들 “학교 측 비정규직 열악한 환경 방치 책임”

<b>창고 같은 방…3명이 겨우 쪽잠</b> 14일 경향신문이 찾은 서울대 제2공학관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창문은 없고 환풍기만 있다(왼쪽 사진). 휴게실 내부는 성인 3명이 눕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창고 같은 방…3명이 겨우 쪽잠 14일 경향신문이 찾은 서울대 제2공학관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 창문은 없고 환풍기만 있다(왼쪽 사진). 휴게실 내부는 성인 3명이 눕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성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ㄱ씨(67)가 숨졌다. 휴식 시간에 휴게실에서 잠을 자다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ㄱ씨는 이날 오전 11시50분쯤까지 동료 노동자와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낮 12시30분쯤 동료 노동자가 ㄱ씨를 깨우러 왔지만 ㄱ씨는 일어나지 못했다. 동료는 “ㄱ씨의 입술이 새파랗고 손끝은 싸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ㄱ씨의 사인을 병사로 처리했다. ㄱ씨는 수년 전 심장 수술을 받았다. ㄱ씨는 내년이 정년이었다.

노조와 학생들은 ㄱ씨 죽음의 원인에 열악한 휴게실 환경이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 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공동행동)은 14일 성명을 내고 “너무 덥고 비좁은 데다 지하 구석에 위치해 환기조차 잘되지 않아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던 공간을 고령의 노동자들이 ‘휴게실’이라 부르며 이용하고 있었다”며 “(서울대는) 그를 비인간적 환경에 방치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최분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휴게 공간은 사람이 기거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며 “학내 청소노동자 휴게실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를 포함해 제2공학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총 8명이다. 남성 노동자 3명, 여성 노동자 5명이다. 2만6671㎡(8068평) 규모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의 휴식 공간은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가건물이다.

휴게실엔 창문은 없고 환풍기만 있었다. 휴게실에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가 났다. 환기가 제대로 안되는 듯했다. 환풍기도 ㄱ씨와 함께 2011년부터 제2공학관에서 일한 원호진씨(67)가 직접 달았다. 원씨는 “내가 여기서 일할 때부터 이 시설이 있었으니 적어도 8년 이상은 된 공간”이라며 “처음에 왔을 때 공기가 너무 탁해 직접 벽을 뚫어 환풍기를 달았다”고 했다. 원씨가 공과대학 사무실에 공기가 탁하니 창문을 달아달라고 했지만 사무실은 “알았다”는 말만 할 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휴게실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면적은 가로 1.6m, 세로 2.1m 정도다. 성인 3명이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없다. 3명이 누우면 1명은 다리가 늘 출입문 쪽 빈 공간으로 나왔다. 에어컨도 없다. 휴게실 벽에 선풍기 한 대가 달려 있다. 휴게실에서도 땀을 식힐 수 없어 노동자들은 소형 선풍기를 목에 걸고 다녔다. 에어컨이 설치된 학생 휴게실에서 더위를 식히다가도 학생들이 오면 눈치가 보여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에 오가는 학생들이 보여 휴게실 출입문을 열 수도 없었다. 겨울에는 벽과 천장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휴지조각으로 틈을 막았다.

사고 이후 2명의 남성 청소노동자는 제2공학관 7층 스터디룸을 임시 휴게실로 이용한다. 사고 당일 노조가 학교 본부와 공과대학 측에 남자 휴게실을 옮겨달라 요구해 화학생물공학부 학부장이 7층 스터디룸을 임시 휴게실로 정했다. 화학생물공학부 측에서 ‘미화원 임시 대기실’이라 적힌 A4용지를 문에 붙였지만 10분 만에 안내문은 떼어졌다. 안내문이 떼어진 경위를 두고 공과대학 관계자는 “안내문을 뗀 학생이 당일 사고가 난 줄 모른 채 잘못 붙인 줄 알고 뗐다고 했다”고 말했다.

공과대학 측은 사고 이후 청소 노동자들에게 심리 치료와 1주일간 휴가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작년 하반기부터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면서 6월 학내 노동자들 휴게시설 전수 조사를 우선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노조 측과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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