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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개입한 어용노조는 무효’ 판결 나오기까지 10년 걸렸다

이혜리 기자
2018년 10월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이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무노조 경영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8년 10월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이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무노조 경영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 방침 아래 만든 ‘에버랜드 노동조합’은 어용노조로 설립 자체가 무효라는 1심 법원 판결이 지난 26일 나왔다. 이 노조가 설립된 때로부터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다. 어용노조라는 증거는 보통 바깥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삼성의 경우 2018년 검찰의 강제수사로 인해 삼성 내부의 노조 대응 문건들이 확보되면서 확인이 가능했다.

판결을 보면,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은 2011년 7월 시행된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와 맞물려 있다. 제도는 노조 와해 수단으로 활용됐다. 와해 대상이 됐던 이들은 행정청과 삼성이 하루빨리 어용노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 “삼성 개입 노조, 자주성·독립성 없어”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2부(재판장 김순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에버랜드 노조를 상대로 낸 설립 무효 확인 소송에서 금속노조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던 삼성그룹이 부당노동행위를 통해 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했고, 현재까지도 어용노조로 유지되고 있다고 봤다. 노조 와해 혐의로 기소된 삼성 관계자들의 형사 판결(지난해 11월 2심까지 유죄)이 어용노조 판단의 토대가 됐다.

에버랜드 노조가 설립된 시점은 2011년 6월이다. 현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인 당시 ‘삼성노조’가 설립되기 불과 20여일 전이다.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삼성의 ‘그룹노사전략’ 문건에는 ‘만약 진성노조가 설립되거나 설립이 예상되는 경우 회사 차원에서 대항노조를 설립해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하고 교섭권을 독점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성노조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회사에 교섭을 요구한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교섭 대표를 정하지 못하면 조합원이 가장 많은 노조가 교섭권을 갖도록 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이같은 전략에 따라 삼성은 삼성노조에 관여하는 직원들을 압박하는 한편, 다른 직원을 노조 위원장으로 낙점하고 에버랜드 노조 설립 신고를 하게 했다.

법원은 “(대항노조가 사측과) 2011년 6월30일까지 단체협약을 마무리함으로써 복수노조 관련 법률이 시행되는 2011년 7월1일 이전에 친사노조(에버랜드 노조)를 설립하게 했다”며 “진성노조(삼성노조)가 2년간 아예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교섭대표 노조 선정 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삼성이)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 속에서 삼성노조는 조합원 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은 에버랜드 노조가 적당한 조합원 수를 확보하도록 관리했고, 그에 따라 에버랜드 노조로 교섭 창구가 단일화됐다. 검찰 수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 삼성지회 조합원 수가 늘면서 올해부터 삼성지회가 교섭을 하고 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뚫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옛 삼성노조)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다. 지난 7월2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에서 민주노조 10년을 말하다’ 토크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뚫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옛 삼성노조)가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다. 지난 7월2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에서 민주노조 10년을 말하다’ 토크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에버랜드 노조 취소 못한다는 행정청

판결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노조는 해체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 경기 용인시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에버랜드 노조가 어용노조이니 설립을 직권으로 취소하라는 진정을 냈다. 진정서에는 형사 판결 내용을 첨부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거부 처분을 했다. 경기지청은 용인시가 관할이라고 넘겼다.

금속노조 측 박다혜 변호사는 “형사 판결을 통해 법원의 사실 인정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립 무효 확인 소송이라는 민사소송까지 오게 된 게 안타깝다”며 “행정부의 역할과 존재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삼성지회는 판결 후 성명에서 “어용노조 설립 신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임지지 않는 고용노동부와 용인시청은 법대로 어용노조 설립 무효 절차를 진행하라”며 “삼성그룹은 즉각적인 어용노조 해체와 지난 10년 동안 박탈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라”고 했다.

용인시는 10년 전 에버랜드 노조의 설립 신고 당시 정당하게 서류 검토 후 수리했기 때문에 어용노조라는 추가 자료가 제출되지 않는 한 당장 설립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에버랜드 노조가 설립총회를 개최하지 않았거나 임원을 선출하지 않은 증거,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 증거 등이 제출돼야 한다고 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시에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조사권 등 사법적 기능이 없다”며 “추가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고,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가 임의로 (에버랜드 노조를 설립 취소)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에버랜드 노조 측은 “형사 법원에서 2013·2015·2017년 단체협약 체결은 유효하다고 인정했었는데, 민사 법원은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 검토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에서) 여러 논의 중이며, 항소는 시간을 갖고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측은 회사는 소송 당사자가 아니고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5월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법적인 경영권 승계 의혹과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와의 불통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해 5월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법적인 경영권 승계 의혹과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와의 불통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노동계에선 ‘교섭 창구 단일화 폐기’ 요구

노동계에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노조 파괴 도구로 활용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 제도 때문에 소수 노조가 교섭에서 배제되고, 사용자 측 노조만 교섭과 단체협약을 하면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대법원도 유성기업의 어용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을 하면서 “현행 노동조합법 하에서 복수노조 중 어느 한 노조는 원칙적으로 교섭 대표노조가 되지 않는 한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대표노조가 아닌 노조는) 쟁의행위가 교섭 대표노조에 의해 주도되는 등 법적인 제약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은 처음으로, 이번 에버랜드 노조 판결에도 인용됐다.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10년이나 지나서 (어용노조가) 법으로 입증되는 기간 동안 회사가 목표한 교섭 무력화나 노조 활동 저지는 이미 달성됐고 노조의 피해는 계속됐다”며 “제도와 법이 빨리 보완돼 삼성 뿐 아니라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하는 데 자본의 꼼수로 인해 피해받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법원 “삼성이 개입한 에버랜드 노조 설립은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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