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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판결은 완성차 제조 간접공정에도 원청 책임 인정한 것”

고희진 기자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및 현대 그린푸드 노조 조합원들이 2019년 7월 서울 중구 삼일대로에서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청와대까지 행진을 했다. 이준헌 기자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및 현대 그린푸드 노조 조합원들이 2019년 7월 서울 중구 삼일대로에서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청와대까지 행진을 했다. 이준헌 기자

기아(옛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간접공정 업무를 수행하던 2차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의 원청 고용의무를 법원이 인정한 것은 2000년 초중반 현대자동차와 기아 공장에서 들불처럼 일었던 비정규직 투쟁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하청의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완성차 업계에 만연한 불법파견 문제를 직접공정 외에 간접공정까지 넓혀봐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의미 부여했다.

2000년대 초중반 대우캐리어, 현대중공업, GM대우, 현대·기아차 등에서 차례로 비정규직 투쟁이 일었다. 기아 화성공장은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가입률이 높아 파업을 하면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2007년 점거 파업도 이같은 조직력에 힘입어 가능했다. 이후 기아에 1사1노조가 만들어지고 ‘기아차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도 결성됐다. 갈등과 협력 과정에서 일부 해고자들이 복직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 기아 비정규직 투쟁과 해고자 복직 문제는 이미 해결된 과거 사건처럼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잊혀졌던 기아 비정규직 투쟁과 해고자 복직 문제는 이번 소송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현대차에 이어 2차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고용의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에서도 간접공정인 생산관리업무를 하던 2차 하청업체 노동자 등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내서 각각 1·2심 승소한 바 있다. 기아 사례를 포함해 이들 사건 중 하나라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다면 완성차 업체를 포함해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직접공정, 컨베이어벨트 라인이 아닌 업무에 대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며 “그러나 전반적으로 간접공정도 자동차 제조업무의 하나이기 때문에, 유럽 다수의 사례를 보면 회사가 직접 간접공정도 운영하거나 자회사 등을 통해 해결한다. 국내에서도 하급심이지만 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 문제는 앞서 법원에서 수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현대위아가 사내하청 비정규직 64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등 완성차 업계의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인력구조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제철도 2019년 순천공장 노동자 109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2심에서 패소하자 지난 7일 사내 하청 노동자 고용 목적의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현대위아는 아직까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현대제철이 설립한 자회사에 대해서도 노동계에서는 소송을 진행한 하청 노동자의 본청 정규직화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경영계가 불법파견과 도급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법원 판결이 이어져도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은 것이다.

노동 운동 차원에서는 과거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 사례를 앞으로의 다양한 비정규직 운동에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최근 자동차회사에서 1차 하청은 계속 줄어드는 대신 노조 조직이 잘 안되는 2·3차 하청이 늘고 ‘촉탁직’이라는 계약직 직원이 증가하는 추세다. 사회적으로도 고용형태는 플랫폼 노동까지 훨씬 다변화되고 열악한 곳이 생겨난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노조가 어떻게 열악한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을 품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할 때”라고 했다.

노조의 산별교섭 능력을 키울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20년째 공장마다, 직원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해서 원청에 ‘직접고용하라’고 하는 방식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인정받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원청 고용의무가 없는 노동자도 있을 수 있고 상황이 다양하다”며 “지위 소송을 할 것은 하되, 전반적으로 산업현장의 차별을 줄일 수 있도록 금속노조의 산별 단체교섭을 확장할 방법을 만드는 것이 노조의 미래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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