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평협노조 정당성’ 법원 판단 엇갈린 와중 임금협약 체결

이혜리 기자
2020년 2월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삼성화재 노동조합 출범선언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2020년 2월3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삼성화재 노동조합 출범선언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삼성화재가 평사원협의회 노동조합(평협노조·현 리본노조)과 임금협약을 맺어 삼성화재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폐기 이후 설립된 삼성화재노조는 평협노조가 어용노조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한 상황에서 임금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노사협의회와 임금조건에 합의해 삼성전자노조가 “무노조 경영의 부활”이라며 사측을 노동청에 고발하는 등 삼성 계열사들의 임금협상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삼성화재노조와 삼성화재에 따르면, 사측은 최근 평협노조와 2021년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공통 임금인상률을 직급에 따라 2.0%에서 5.5%로 정하는 내용이다. 평협노조는 현재 교섭대표노조다.

평협은 노사협의회 일종으로, 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가 노조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삼성은 노조 와해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재판을 겪으면서 무노조 경영 폐기를 선언했는데, 이후 삼성전자 등 여러 계열사에서 사측이 노사협의회와 협상을 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노조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노동계에선 법상 단체교섭권은 노조에 부여돼있는데 삼성이 노사협의회와 교섭하며 노조를 무력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화재 평협노조는 지난해 3월 설립한 뒤 교섭대표노조가 됐다. 삼성화재노조는 “평협노조가 무효”라는 소송을 내고 삼성화재와 평협노조의 단체교섭을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삼성화재가 평협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평협노조 설립 절차에 중대한 흠결이 있고, 노조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있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는 게 그 이유다. 재판부는 사측과의 합의 속에서 평협이 설립·구성·운영됐고 평협이 2019년까지 ‘근로조건에 관한 협약’을 맺어 진성노조 설립을 사실상 저지한 점, 평협노조가 평협을 계승한 조직이라고 공표한 점 등을 감안해 단체교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삼성의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노조 설립시 대항마로 활용’,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 문구가 등장하는 등 삼성이 노사협의회를 전략적으로 육성·활용했다고 했다.

반면 항고심인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1심과 달리 “평협노조는 평협과는 실체와 목적이 다른 별개의 단체”라며 평협노조에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평협노조에 가입한 3000여명 노동자들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사측에 의해 어용노조로 전환된 자주성·독립성이 결여된 단체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삼성화재노조는 대법원에 재항고해 대법원은 지난달부터 사건을 심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측이 평협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삼성화재노조는 이번 임금협약 체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사를 규탄했다.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은 “최종 타결안은 지난해 제시한 회사의 최종안과 다른 게 없고, 핵심 조건은 사무실 지원과 전임자 활동보장이 전부”라며 “우리 노조는 추가적인 임금협상을 통해 더 높은 인상률과 소외된 계층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했으나, 사측과 평협노조로 인해 무산됐다”고 했다. 오 위원장은 “창립 이래 삼성화재 직원들에게 노동인권과 근로조건 유지 개선, 임금결정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68년 만에 최초로 설립된 진성노조로서 잘못된 상황을 바꾸지 못해 직원들에게 죄송하며,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바꿀 것”이라고 했다.

홍광흠 평협노조 위원장은 2021년 임금협약은 법원 결정 전에 이미 교섭·잠정합의 절차를 거쳤고 조합원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이 나와 체결식만 앞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화재노조 주장에 대해서는 “가처분 인용에 대한 항고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교섭을 할 수 있는) 원래의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삼성화재노조가) 대법원에 또 항고를 했다고 해서 이 기간을 기다려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홍 위원장은 “조합원들은 노조 사무실과 타임오프(전임자 활동지원)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임금협약 체결 배경엔 이달 평협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14조의10 제3항은 교섭대표노조가 1년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때는 어느 노조든지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삼성화재 측은 “가처분 항고심 결정으로 기존 교섭을 중지하라는 결정이 취소됐기 때문에 교섭대표노조인 리본노조(평협노조)의 교섭 요구를 회사가 거부할 경우 교섭 회피로 부당노동행위가 된다”고 밝혔다. 또 “노·노간 분쟁으로 임금인상이 무기한 지연되는 상황에 대한 직원들 불만이 확산되면서, 노조 동의를 받아 잠정합의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이미 적용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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