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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노조 활동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재계약 거부…“노조 탄압” 논란

이혜리 기자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모습. 연합뉴스

쿠팡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인천물류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재계약을 최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은 객관적인 근무 평가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노조 쪽에선 쿠팡이 노조를 탄압할 의도로 한 부당 해고라며 반발했다.

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지난달 말 인천물류센터 노조(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분회)의 정성용 분회장과 최효 부분회장에게 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정 분회장은 3개월·9개월·1년 계약을 맺고 일을 하면서 근무기간 2년을 채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고, 최 부분회장은 1년을 일하고 1년 계약을 연장하는 시점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계속 근무를 희망했는데 회사가 무기계약직 전환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31·30세 청년으로, 계약 기간 만료 시기는 이달 말이다.

정 분회장과 최 부분회장은 사측에 재계약 거부 사유를 물었지만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계약직 노동자이더라도 지속적으로 계약이 갱신돼왔다면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노동자에게는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쿠팡은 이에 대해 기자에게 “객관적인 근무평가 기준을 갖추고 있으며 이 기준은 모든 직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평가 기준에 미달하면 기본적인 업무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직원들은 근로계약이 종료됐고, 업무 평가기준 미달로 인해 갱신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근무평가 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조 쪽에선 정 분회장과 최 부분회장이 업무를 해태한 적이 없으며, 근무평가 기준과 내용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계약 거부는 노조 탄압 목적의 부당 해고라고 반발하고 있다. 근무평가에 노조 활동 내력이 부정적으로 반영됐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이고, 노동조합법은 사용자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면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형사처벌하라고 규정한다.

정 분회장과 최 부분회장은 노조 활동 과정에서 상부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 문제 관련해 의견을 개진하다가 징계를 받거나, 퇴근길 피켓 선전전을 하다가 경고를 받는 식이었다. 최 부분회장은 상급자로부터 ‘사외 노조를 왜 배려해야 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사실상 반성문에 해당하는 사실관계확인서 서명을 요구받았다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다. 쿠팡의 사실관계확인서는 앞서 다른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노동청이 남용하면 안 된다고 권고한 것이다. 노동자에게 과도한 심리적 위축을 불러올 수 있고 비공식적 징계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쿠팡 물류센터의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가도 탈퇴하는 사례가 나왔다. 최 부분회장은 “처음에는 (노조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지지가 엄청났지만 회사가 점점 눈치를 주면서 심정적으로 많이 힘들고 위축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노조는 최근까지 폭염에 대비한 에어컨 설치와 유급 휴게시간 보장에 대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쿠팡 인천 물류센터에서 부당 해고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의 모습. 노조 제공

쿠팡 인천 물류센터에서 부당 해고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의 모습. 노조 제공

쿠팡 측은 노조 활동 여부는 근무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이번 재계약 거부는 노조 활동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또 “노조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이슈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했고,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노조를 지원하는 장혜진 노무사는 “(쿠팡 물류센터는) 구인난으로 허덕이기 때문에 대부분 재계약이 되는 상황”이라며 “노조 활동 외에 다른 (재계약 거부의) 이유는 찾을 수 없고,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고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쿠팡의 재계약 거부는 노조와의 단체교섭이 난항인 상황에서 이뤄졌다. 노조(쿠팡물류센터지회)의 조정 신청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노조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노조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 지난해 12월 80개 조항이 담긴 요구안을, 지난 4월말 8개 조항으로 추린 핵심 요구안을 보냈지만 쿠팡이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핵심 요구안 내용은 폭염·혹한 때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냉난방 기구 설치, 유급 휴게시간 보장, 직장 내 괴롭힘 심의위원회 구성, 노조 활동 보장 등이다. 특히 이번에 재계약 거부 대상이 된 정 분회장은 노조 쪽 교섭위원 중 한 명이다. 정 분회장은 “교섭위원을 해고했다는 점에서 (이번 재계약 거부를) 쿠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골적인 탄압을 하는 시발점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측에 교섭 재개를 요구하고, 부당 해고에 항의하는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다.

쿠팡은 “노조가 일방적으로 요구사항을 서면으로 제출한 후 교섭 없이 조정 신청을 했다. 노조가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며 “회사는 근로자들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노조와 성실히 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의 핵심 요구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쿠팡은 답변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쿠팡 노조 “회사가 외면한 직장 내 괴롭힘, 노동부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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