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원칙 → 양질 기사 → 독자 신뢰 선순환이 신문 위기를 이긴 힘

김민아 선임기자

옥천신문이 성공한 비결과 미래

[커버스토리]저널리즘 원칙 → 양질 기사 → 독자 신뢰 선순환이 신문 위기를 이긴 힘

|‘공룡 언론’ 경영의 딜레마

광고시장, 콘텐츠 따른 보상보다
언론사 위상이나 영향력에 좌우
독자와 끈끈한 유대감 형성 방식
중앙 언론 벤치마킹 쉽지 않지만
옥천신문 ‘선순환 방식’ 주목해야

옥천신문의 지난 30년에 주목하는 것은 ‘처음’이어서가 아니다. 지역주간신문 가운데는 이미 서른 살을 채운 ‘선배’들이 있다. 옥천신문이 특별한 이유는 ‘건강하게’ 그리고 ‘잘’ 성장했다는 데 있다. 작은 지역공동체 내에서 언론의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경영기반을 구축했다는 건 의미가 작지 않다. 언론학자 김영욱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지역공동체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본 단위”라며 “옥천신문은 지역 주민과의 유대를 형성하며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다른 지역신문은 물론 전국단위 신문에도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성공적이라 해서 미래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소멸’이라는 공포와 디지털 혁신이라는 기술 변화의 물결 앞에서 옥천신문은 또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 옥천신문의 성공 비결은

우희창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은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라고 하는데 옥천신문은 위기의 원인을 ‘뛰어넘고’ 있다”고 말했다.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난점이다. 그러나 옥천신문은 이를 뛰어넘어 저널리즘의 정도를 걸어왔다고 평했다. 실제로 옥천신문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해서 다양한 취재원을 등장시키고 있다. 1월31일자에 실린 200자 원고지 16장 분량의 <‘법’은 된다는데 ‘학칙’은 안 된다는 청소년 정치참여> 기사에는 취재원이 8명 등장한다. 모두 실명이다.

우 전 부위원장은 또 ‘미디어가’ 말하고 싶은 콘텐츠가 아니라 ‘주민이’ 보고 싶어 하고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제공해온 점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우 전 부위원장은 “잘되는 동네는 사람 채용에 투자를 한다”며 옥천신문이 여력이 생기면 신규 인력을 늘리는 데 꾸준히 투자해온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역신문 이슈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는 옥천신문의 성공 비결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창간 작업을 주도하고 오랫동안 신문사를 이끌어온 오한흥 대표이사의 리더십이다. 둘째는 옥천이라는 지역의 특성이다. 옥천은 농촌으로서의 고립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근 대도시인 대전의 합리성도 받아들였다. ‘특수성을 갖고 있되 갇히지 않은’ 지역의 성격이 신문 성장에 유리한 토양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셋째는 언론인의 사명감과 우수한 자질을 갖춘 양질의 인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젊은 기자들에게 편집 자율권을 부여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이들이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점이다. 장 교수가 꼽은 마지막 비결은 저널리즘 원칙의 실천이다. 권력과 금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성에 입각해 신문을 만든다는 사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신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다수의 지역주간신문들이 지리멸렬한 이유는 이런 원칙을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 전국단위 신문도 옥천신문을 벤치마킹할 수 있나

옥천신문은 ‘독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철저한 현장 확인을 통해’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중앙언론에서도 이를 따라할 수 있을까. 5만1000여명의 인구를 상대로 4000부를 발행하는 매체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장호순 교수는 이를 인정하며 언론이 가진 본질적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서빙을 해야 할 클라이언트가 늘어날수록, 각 클라이언트를 향한 서비스는 부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 교수는 옥천신문이 지역 독자와 밀착해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중앙언론이 그대로 벤치마킹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저널리즘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이를 통해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독자의 신뢰를 얻는” 옥천신문의 선순환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희창 전 부위원장도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는 역할이 다르다. 제대로 된 어젠다(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독자와의 밀착 관계 형성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뉴스 가치 판단에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구상해볼 것을 제안했다. 시민 패널 구성 등을 통해 공론장을 형성하고, 이 공론장에서 ‘이것이 뉴스’라고 결집된 사안을 실제 뉴스로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김영욱 교수는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전국 대상 언론은 지역(주민)에 특화하기는 어려운 만큼 ‘영역’에 특화하라는 것이다. 그는 한정된 인력과 재정으로 정치부터 스포츠까지 모든 분야를 커버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경쟁력이 있는 몇몇 분야에 집중해 전문성을 강화하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의 광고시장이 콘텐츠에 대한 보상보다 언론사의 위상·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기존의 광고비 집행 관행도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다. 변화를 통해 미리 충성 독자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옥천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의 미래는

지역신문의 위기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1월 펴낸 ‘지역신문 발전 지원계획 수립 연구’(책임연구 최민재)는 “기존 뉴스미디어의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되면서 각국의 지역언론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지역언론을 지키고 복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2월 ‘저널리즘을 위한 지속 가능한 미래’ 보고서를 통해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지역언론에 대한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미국 나이트재단은 지난해 지역언론 강화를 위해 5년간 3억달러(약 35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역신문의 새로운 도전

생존 선결과제는 ‘지속 가능한 사회’
국가 차원 인구 감소 해결책 필요
언론도 디지털 혁신 게을리 말아야

한국의 지역종합주간신문은 2017년 현재 291곳이다. 평균 발행부수는 3345부다. 유료부수 비율은 25.7%로 4부 중 1부꼴에 그친다. 한 곳당 평균 종사자 수도 5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포털사이트가 뉴스 유통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한국적’ 디지털 환경은 지역신문의 입지를 더 좁히고 있다.

잘나가는 옥천신문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지역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독자층은 고령화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우희창 전 부위원장은 “옥천신문 같은 건강한 지역언론이 지역사회에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매우 크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역사회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리를 파헤침으로써 예산 낭비를 막고 투명한 행정을 이끌어내는 순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수도권 인구가 전 인구의 50%를 넘었는데, 과도한 수도권 집중은 한 국가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을 촉구했다. 지역신문들을 향해선 “지금부터라도 인터넷방송과의 결합 등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그런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옥천신문도 젊은 세대가 마음껏 실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비용의 관점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장호순 교수는 옥천신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기존 사회구조 측면에서 예측할 때, 기술 혁신 흐름에 조응하며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장 교수는 “옥천에만 갇혀 있지 말고 인근 보은이나 영동에 새롭고 건강한 매체를 이식·전파하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병리현상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신문의 생존에만 치중하지 말고 옥천 지역사회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영욱 교수는 “디지털 전환은 숙명”이라며 “언론사 플랫폼이 지역 커뮤니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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