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간’의 도시” YS 일화, 사실일까

정용인 기자

“제주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강간’의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외무부 장관이 ‘강간’이 아니라 ‘관광’이라고 정정해줬다. 그러자 YS 왈 “애무부 장관은 애무나 잘해!” YS 서거 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생전 일화’라며 올라온 글이다. 유명한 이야기다. 서거 후 보도 기사들에도 정치부 간부들의 회고담이라며 거론되는 이야기다. 인터넷에 이 ‘일화’가 퍼진 것은 상당히 오래전이다.

“제주도의 유세현장에서 저런 일이 있었다”는 부연설명도 있고, 국무회의 석상이라는 말도 있다. 정말 저런 ‘일화’가 있었던 걸까. 일단, 국무회의 석상에서 발음 문제를 가지고 장관이 대통령의 발언에 토를 달았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청와대 시절 YS 회고담들을 보면 YS가 평상시에 “자네…”라며 농을 건 경우는 꽤 있는 듯하지만, 반대로 ‘모시는 입장에서’ YS의 발음을 지적했던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유세?

1992년 12월 12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가 제주 서귀포시에서 야간 유세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2년 12월 12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가 제주 서귀포시에서 야간 유세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야기가 그럴 듯한 사실처럼 퍼지는 것은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음성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군부독재를 ‘학실히’ 종식시키겠다”는 그의 연설 육성이 자동으로 떠오를 것이다. 일단 제주를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1987년에는 기사검색으론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1992년 대선? 있다. 옛날 신문을 검색하면 1992년 12월 12일 제주도 서귀포시 야간 유세에서 YS는 관광도시 발언을 한다. 하지만 YS의 발음 문제를 거론하는 매체는 없다. 당시 현장 취재기자는 뭐라고 할까. 벌써 23년 전이다. 이미 현역에서는 은퇴했다. “그날 YS의 유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YS 따라다니면서 취재할 때 제일 답답한 것은 유세현장에 갈 때마다 늘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미 쓴 이야기는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잖아요. 그게 상당한 고역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실 ‘강간의 도시’ 이야기의 출처는 YS 집권 후 나온 유머집 <YS는 못말려>다. KBS <유머1번지>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 작가였던 장덕균 개그작가의 책이다. 그는 현재 tvN의 <코미디 빅리그>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책 출간 전날 뜬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책이 나온 후 방송국 제작국으로 가보니 청와대에서 사장 비서실로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삐삐를 꺼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통령도 책을 보고 많이 웃었으며 집사람(손명순 여사)과 함께 읽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생각도 못했던 정치의 민주화, 풍자의 민주화의 길을 YS가 열어줬던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풍자의 한계나 대상을 ‘학실히’ 종식시켜줬던 분이라고.” 그런데 2015년 현재, 종식된 게 맞을까. 최근 몇몇 코미디 프로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보면 다시 ‘부활’한 것 같은데. 어쨌든 최근의 경험과 비교하더라도 YS는 ‘학실히’ 대인배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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