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얼굴 없는 천사’ 올해도 남몰래 왔다

박용근 기자

공원 숲에 5천여만원

16년째 기부…4억 넘어

해마다 세밑 감동을 전해온 전북 전주시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남몰래 찾아왔다. 올해로 16년째다. 30일 오전 9시53분 전주 노송동주민센터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사무소 직원은 나지막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얼굴 없는 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민센터 뒤 공원 가로등 쪽 숲속에 돈을 놓았으니 가져가시고 어려운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 달라”란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직원이 급히 달려가 보니 현장에는 A4 복사용지 박스가 놓여 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박스와 편지. 전주시 제공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박스와 편지. 전주시 제공

박스 안에는 5만원권 다발 10뭉치와 빨간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이날 그가 놓고 간 돈은 총 5033만9810원이다. 작은 쪽지도 들어 있었다. 쪽지에는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써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해마다 연말이면 소리없는 기부를 해오고 있다. 한 해에 두 번 한 적도 있다. 200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6년째다. 지금까지 그가 기부한 성금은 4억4764만1560원이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항상 전화를 걸어 박스 위치를 알려준 뒤 직원이 성금을 들고 가는 것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확인하고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언론에서 그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잠복 취재를 하기도 했지만 “천사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행동”이라는 시민들의 비판에 언론사들도 취재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그의 선행은 기부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전주시는 선행을 기리기 위해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쓴 표지석도 세웠고, 천사의 거리도 지정했다.

노송동 주민들은 천사의 뜻을 기리고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했다. 천사의 사랑이 지역의 불우이웃을 돕는 또 하나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천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연말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면서 “그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시도보다 그 분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