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거래STOP(3)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 없는 법 바꿔야”

박은하 기자

정부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예방 종합대책이 마련되면서 관련 법 개정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가 있는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가해 행위를 중심으로 법정형을 높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처벌법의 특징으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법’으로 요약했다. 온라인상 성폭력에 관한 처벌규정은 대부분 음란물 제작 및 성매매와 관련된 규정으로 처벌된다. 여성들을 불법촬영한 영상물을 올리는 사이트를 운영해 성매매 광고업자들로부터 14억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된 최모씨(37) 등 4명의 경우에도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와 관련해서는 디지털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확실히 특정하기 쉽지 않다. 특정하더라도 수치심과 트라우마, 협박 등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나서기도 어렵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은 피해자를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성매매나 음란물 유포죄 적용에 좀 더 힘을 기울이게 된다.

장 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에 대해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이지만 이에 대한 형사 제재는 주로 음란물과 관련한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로만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범죄영상 촬영 및 유포자가 실제로 법정에서 처벌받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커다란 피해를 미쳐서가 아니라 사회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연구위원은 이는 ‘성매매 특별법’에 적용된 관점의 연장선상으로 봤다. 현행법상 성매매 특별법 역시 성 판매 여성에 대한 착취나 폭력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죄라는 관점이 적용된다.

장 연구위원은 “향후 디지털 성폭력 및 성매매에 대한 법적 개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범죄행위들이 개인적 법익 침해 행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사회적 법인과 관련된 개념 구성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음란물’의 조건에 대해 국가가 법으로 상세히 정하는 과거의 법해석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권익 중심으로 형사 체계를 바꾸기 위해 필수적이다. 현행법에서 성폭력범죄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찍은 행위에 대해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2015년 타인의 신체 사진 300여장을 찍은 혐의로 회부된 남성의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은 치마 속 사진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해석해 유죄를 선고한 반면, 다리 사진에 대해서는 무죄로 선고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재판에서는 다리 사진이 유죄고 전신사진은 무죄를 선고받는 등 판사의 해석에 따라 들쭉날쭉인 결과가 됐다. 장 연구위원은 9월 23일 중앙대에서 한일 여성학자들이 개최한 ‘디지털 성범죄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제출했다.

김현아 법무법인 GL 변호사는 범죄 영상의 촬영 및 유포자들이 사법부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받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청 <범죄통게>에 따르면 카메라 등의 이용촬영죄의 검거는 2015년 7430건으로 검거율은 97.6%에 달했다. 그러나 재판에 회부되는 비율(기소율)은 31.2%에 불과했다. 기소율은 2013년에는 53.6%, 2014년에는 43.7%으로 계속 낮아졌다. 2010년의 기소율은 72.6%였다.

경찰이 수사에 나설수록 오히려 기소율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변호사는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지고, 가해자가 초범인 경우 대부분 기소유예되거나 불기소처분되고 있으며, 신상정보공개제도라는 불이익 때문에 기소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지난해 이화여대에서 받은 박사학위논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레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에 관한 연구>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인들의 호소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몰카도 성폭력 범죄라서 신상정보공개가 20년 동안 등록되기 때문에 검사 입장에서 이 사진 찰영 한 번으로 남자 인생을 망치나 싶어서 기소를 안 하는 경우도 많아요.”, “법원의 판단으로 무죄논란이 있었던 신체 부위나 전신 촬영 같은 사진은 경찰이나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김 변호사는 “여성의 피해감정을 대변되는 성적 수치심의 표현을 성 중립적인 언어로 개정하고 처벌의 규정을 가해자의 행위 중심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폭력처벌법에는 촬영행위와 유포행위 처벌이 함께 규정돼 있는데, 유포행위를 별도로 분리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 몰래카메라 처벌 강화를 위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등이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상태다. 9월 26일 발표된 정부 대책에 따르면 연인 간 복수 목적으로 촬영된 영상물을 유포하면 현재는 징역 3~5년 또는 벌금 500만 원~1000만 원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벌금형을 없애고 징역형으로만 처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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