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최기상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국민에 사죄…엄정한 조치 촉구하겠다”

이혜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미끼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고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뒷조사한 정황이 드러난 것에 대해 최기상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49·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촉구하겠다는 입장을 30일 밝혔다.

법관대표회의는 전국의 판사 119명이 모여 사법행정 등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기구다. 법관대표회의는 최 의장이 지난 28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이같은 입장문을 올렸다며 이날 전문을 공개했다.

최 의장은 입장문에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행위로 인해 직접 고통을 겪으신 분들, 그리고 사법부와 법관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신 국민들께도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최 의장은 이어 “저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으로서 대법원장께 이번 조사결과 드러난 헌정유린행위의 관련자들에 대하여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했다.

아래는 최 의장의 입장문 전문.

지난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상훈 기자

지난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상훈 기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관 여러분께

지난 주 금요일(5. 25.)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최종 조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의 무리한 입법 추진 등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하여 성향과 동향, 심지어 재산관계까지 파악하고, 좋은 재판을 향한 법관들의 학술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사보고서에는 국민 여러분께 차마 고개를 들기 어려울 정도의 사실마저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정치·사회적 이해대립이 첨예한 특정 사건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여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하거나, 재판장과 접촉하여 잠정적 심증을 확인하거나, 판결의 취지를 청와대에 설명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청와대 설득방안’에서는 과거사 국가배상 제한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정리해고 사건 등의 재판 결과를 ‘사법부가 그 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온 내용’으로 설명하는 등,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정치적 거래나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통하여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와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법부 스스로가 그 존재의 근거를 붕괴시키는 참담한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더욱이 위 사건들은 재판을 받은 당사자의 삶을 비극으로 바꾸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KTX 승무원 사건의 원고 중 한 분은 패소 판결을 받은 후 절망감과 빚 부담으로 힘들어하다가 직접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때 3살이던 고인의 딸은 이제 6살이 되었고,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엄마를 찾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고인의 극단적인 선택과 어린 딸의 엄마 없는 삶을 보상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를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견제와 감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그 책임을 통감합니다. 나아가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행위로 인해 직접 고통을 겪으신 분들, 그리고 사법부와 법관에 대해 신뢰를 보내주신 국민들께도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상응하는 조치 없이는 더 이상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받는 사법부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으로서 대법원장께 이번 조사결과 드러난 헌정유린행위의 관련자들에 대하여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겠습니다.

아울러 전국법관대표회의도 법관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여 조사결과의 후속조치를 마련하겠습니다. 이번 조사결과가 법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국민 여러분의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사법행정권 남용사태가 처리되도록 전국의 법관대표들과 함께 반성하고 토론하며 고민함으로써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사법’, 그 존재이유를 잊지 않겠습니다.

2018. 5. 28.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최기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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