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수사 기정사실화…양 전 대법원장 향한 검찰 칼끝 사상 초유 ‘사법파동’으로 비화 가능성

이혜리·박광연 기자

판사 성향·동향 작성 지시

임 전 차장 1차 수사 대상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70)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현직 판사가 공개적으로 검찰 고발을 선언한 데 이어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법원행정처를 압수수색하고, 전직 대법원장이 수사선상에 오르는 사상 초유의 ‘사법파동’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 되면 일차적 수사 대상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판사의 재산관계를 조사하도록 윤리감사관실에 지시하고,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조사한 보고서를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작성하게 한 당사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 지원 업무를 해야 할 심의관들에게 (판사 성향을 조사하는) 보고서를 쓰게 했기 때문에 직권남용 혐의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 전 차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으로 법원 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조치를 내린 의혹도 받고 있다. 중복가입 금지 조치가 내려진 지난해 2월13일 실제로 판사 16명이 연구회를 탈퇴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인권법연구회 소모임인 ‘인사모’의 활동 내용 등을 보고받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현 대법관)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 수사의 끝은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같은 법원행정처의 행위를 양 전 원장이 지시하고 보고받았는지 여부가 규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이와 관련, 양 전 원장에게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임 전 차장도 양 전 원장에 대해서는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에서 특히 규명돼야 할 부분은 2015년 8월6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 전 원장의 오찬회동을 비롯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소위 ‘재판 거래’가 있었는지,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다. 오찬으로부터 불과 일주일여 전인 2015년 7월27일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와 7월31일 작성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 문건 등에는 국가배상 제한 등 과거사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등 사법부가 청와대에 협력한 판결들이 열거돼 있다.

이 판결의 당사자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대법원은 고등법원까지 계속 승소해온 KTX 승무원 관련 판결을 이유 없이 뒤집어 해고승무원들을 절망의 나락에 빠뜨렸다”며 “삼권분립을 교란한 양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들을 즉각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도 “양승태 대법원이 통진당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은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반헌법적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지난 25일 이들 재판에 실제로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고, 이 문건들이 양 전 원장에게 보고됐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2월20일 김모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1심의관이 2만4500여개의 파일을 삭제한 경위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조사단은 “김 심의관이 인사이동 당일 새벽에 대량의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삭제된 파일 중에는 민감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170124)인사모 관련 검토+1[박ㅇㅇ].hwp’ ‘(160408)인권법연구회_대응방안.hwp’가 대표적인 예다. 공용서류를 손상한 것으로 범죄 혐의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법원 내에서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파일명을 봤을 때 의혹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유실되거나 암호가 없어 열람하지 못한 파일도 많다. ‘(141203)전교조 집행정지 취소+1.hwp’와 ‘박모 판사의 향후 동향’ 파일 등이다. 검찰 수사가 이뤄지면 이 파일들도 복구해 내용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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