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익스프레스’ 시각장애인 금지한 에버랜드···법원 “차별 맞다, 손해배상하라”

이혜리 기자

에버랜드가 롤러코스터 티익스프레스 등 놀이기구를 시각장애인에게 타지 못하게 한 것은 ‘차별 행위’로 시각장애인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놀이기구를 타는 데 별다른 위험이 없는데 무조건 막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다. 법원은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에버랜드의 내부 규정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에서 드문 ‘적극적 조치’다.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재판장 김춘호 부장판사)는 시각장애인 김모씨 등 6명이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 등에게 에버랜드가 200만원씩 총 600만원을 지급하라고 재판부는 선고했다. 당초 청구금액인 2250만원의 25% 수준이다. 이번 판결은 2015년 8월 소송이 제기된 지 3년여만에 나왔다.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 출처 에버랜드

에버랜드 티익스프레스. 출처 에버랜드

김씨 등은 에버랜드에 놀러가 티익스프레스 등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했는데 에버랜드 측이 안전상의 이유를 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에버랜드는 40여개 놀이기구 중 티익스프레스와 범퍼카 등 일부 놀이기구에 대해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의 즐길 권리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안전 문제 때문에 일부 놀이기구만 부득이하게 탑승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이 놀이기구에 탔을 때 위험이 늘어난다는 증거가 없다며 “정당한 사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라며 “시각장애인들에게 놀이기구를 이용하게 하면 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한다는 삼성물산 측 주장은 추측에 불과할 뿐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놀이기구 이용에 있어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며 “에버랜드가 김씨 등에 대해 차별을 함으로써 김씨 등이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으로 인정되고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시각장애인 탑승 금지를 규정한 에버랜드 내부 가이드북을 시정해야 한다는 원고들 청구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차별행위는 자체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가이드북을 고치지 않으면 계속 같은 차별행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이드북을 변경하라는 청구를 모두 받아들인다”고 했다. 에버랜드가 가이드북을 시정하지 않을 때는 원고들에게 돈을 추가로 내야 한다.

다만 재판부는 에버랜드가 의도적으로 차별을 한 것이 아니고, 다른 놀이기구에 대해서는 장애인 우선 탑승 제도를 두는 등 노력했다는 점을 감안해 위자료 액수는 1인당 200만원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 중 비장애인인 3명에 대해서는 청구 기각 또는 각하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날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판결은 장애인의 위험 또는 보호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많은 행위들이 장애인 차별행위라고 밝히는 기준이 될 것”이라며 “합리적 이유 없이 추측과 선입견만으로 장애인들에게 제한을 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큰 붕괴점이 되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놀이기구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관리시설이나 안전요원의 문제이지 개인의 장애 문제로 돌릴 수 없다”며 “원칙이나 기준 없이 무조건 시각장애인은 더 위험하니까 놀이기구를 못탄다고 한 에버랜드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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