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인상’ 공시생 울리는 ‘바가지 인강 수강료’

김찬호 기자
‘평생 0원 프리패스’ 상품을 229만원에 판매하고 있는 ㄱ 인터넷 강의 사이트.  홈페이지 갈무리

‘평생 0원 프리패스’ 상품을 229만원에 판매하고 있는 ㄱ 인터넷 강의 사이트.  홈페이지 갈무리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수백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수험생을 중심으로 “돈 없으면 공무원 공부도 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학원가에서는 “아직 수강료를 더 올릴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7, 9급 공무원 시험 인터넷 강의로 유명한 ㄱ사이트는 ‘평생 0원 프리패스’라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강좌를 1년간 무제한 들을 수 있고 시험에 불합격하면 수강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만약 수험생이 수강기간 내에 시험에 합격하면 각종 지원금 및 제세공과금 22%를 제외한 금액도 환급된다.

보기에는 합리적인 것 같은 이 제도를 두고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돈 없으면 공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격’과 ‘선택제한’이라는 두 가지 제약 때문이다. 해당 프리패스 상품의 가격은 229만원이다. 동일한 상품은 2017년 6월 164만원이었고, 지난해 7월에는 192만원이었다. 할인 혜택으로 약간씩 가격 변동이 있지만 매년 수십만원씩 가격이 상승했다.

프리패스 가격이 비싸다고 단과 강의를 듣기도 어렵다. 해당 사이트 유명 강사의 ‘2019년 한국사 기본+심화’ 강의 가격은 131만3000원이다. 공무원 시험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 3과목의 기본+심화 강의만 들어도 300만원이 넘는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강의를 두 번 이상 듣지 못하게 제한한 상품도 있지만 이 역시 50만원이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단과 강의보다 프리패스를 구매하는게 낫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은지씨는 “인강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황에 맞게 강의를 구매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프리패스’를 선택하는게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된다”며 “매해 가격이 오르다 보니 일단 프리패스를 사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사이트는 229만원이 ‘2019년 최저가’라고 광고 중이다.

‘툭하면 인상’ 공시생 울리는 ‘바가지 인강 수강료’


■가격부담에 불법 공유...또 다시 가격이 인상되는 ‘악순환’

업계 1등 사이트의 인터넷 강의 수강료는 후순위 학원들의 수강료 인상도 촉진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원들이 ‘평생 프리패스’ 상품을 판매하며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고가의 수강료가 부담이 되다 보니 수험생들은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강의 공유에 나선다. 한 아이디로 강의를 사서 여러 사람들이 시간을 나눠서 듣는 것이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강의를 공유할 사람을 찾는 홍보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프리패스 공유자를 찾고 있는 수험생들. 인터넷 카페 갈무리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프리패스 공유자를 찾고 있는 수험생들. 인터넷 카페 갈무리

이러한 수험생들의 강의 공유에 인터넷 강의 사이트 역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각 사이트들은 홈페이지에 “강의 공유자에 대한 제재 조치는 물론이고,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아이디에 여러 사람이 동시 접속한 것이 적발되면 해당 아이디를 차단하기도 한다.

ㄱ사이트는 “강의 공유 및 재판매 행위는 개인정보유출은 물론 도용을 통한 2차 저작권 위반 등과 같은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한 회원이 공무원 커뮤니티를 통해 프리패스를 타 회원들에게 판매한 후, 입금이 확인되면 계정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인 재판매를 했다”고 공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불법 공유자를 찾아내려고 노력은 하지만 별도의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근절이 쉽지 않다”며 “불법 공유를 막기 위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불법 공유를 안다고 해도 학생들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기는 어렵다”며 “어쨌든 학생들은 강의를 구매해주는 고객”이라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정의 정지웅 변호사는 “법률상으로는 저작권법 136조 1항 위반이 될 수 있다. 5년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다”면서도 “강의 가격이 적정 수준이면 한 아이디를 여러 수험생이 공유할 필요가 있었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수험생들이 받아들이기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보니 공유를 하고, 학원에서는 또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공무원이 될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법적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강의 공유로 인한 고소·고발 사례는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일부 학원에서 실제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올리고 있지 않은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의 하나에 수백만원, 적정한 가격인가?

실제로 수험생 ㄴ씨는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급격히 인상된 것은 한 학원이 스타 강사들과 독점 계약을 체결한 뒤 발생했다”며 “1등 강사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비싼 강의료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독점으로 인한 가격 인상 가능성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인터넷 강의의 경우 허위·과장 광고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한 바가 없다”며 “수강료의 적정선 기준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 강의 업체의 독점적 지위 판별 기준은 기타 업계에서 적용하는 것과 동일하다”며 “전년도 매출액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50%이상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ㄱ사이트의 인터넷 강의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그럼에도 ㄱ사이트가 독점업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판별 기준에 온·오프라인 강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 형태와 관계없이 공무원 시험 학원 전체를 대상으로 독점업체를 판별하다 보니 웬만해서는 지목되기 어렵다. 해당 학원은 매출액이 전체 시장의 50%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가격을 계속 올려도 문제 될 것이 없다.

ㄱ사이트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강사료와 촬영비 등으로 들어가는 고정비용 때문에 가격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리 찍어둔 강의를 유지·보수 하려면 추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신유형 문제를 반영해 새로 강의를 찍거나 새 강사를 영입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학원 경영 입장에서 보면 온·오프라인 구분이 없다”며 “오프라인 학원을 유지하기 위한 임대료나 직원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인터넷 강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격이 언제까지 오르냐’는 질문에 “아직 가격 인상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가격 인상으로 인한 회원 감소로 수익이 감소하게 되면 그때 가격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수험생은 비싸도 살 수밖에…

인터넷 강의 업체가 가격을 계속해서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공무원 시험에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려서 빠져나가는 회원만큼 신규 회원이 있다면 가격을 내릴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시험의 경쟁률은 41대 1이었다. 총 4953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20만2978명이 원서를 냈다. 지난 2일 인사혁신처는 ‘2019년도 국가공무원 공개채용 선발’ 인원을 6117명으로 확정해 공고했다. 9급 공무원 선발 인원은 4987명으로 소폭 상승했다. 공무원 시험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 5일 한 학원은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무원 시험 합격전략 설명회를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한 수험생은 “합격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남들 다 듣는 강의를 안 들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여러 강사 강의를 체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강의 업체들은 수험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하는 것”이라며 “프리패스 가격이 200만원보다 더 올라도 안 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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