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도 울리는 AI시대, 재능 죽이는 사교육은 왜 할까요”

임아영 기자

‘다른 인생 전략’을 찾아서

지난 4일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서울 오디세이학교 수료생인 양연주양, 안혁군(왼쪽부터)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 소장은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회, 양양과 안군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 4일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서울 오디세이학교 수료생인 양연주양, 안혁군(왼쪽부터)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 소장은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회, 양양과 안군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알파고에 처음 패한 날. 언론 헤드라인은 이렇게 장식됐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겼다.” 알파고는 거침없는 행보 끝에 세계랭킹 1위였던 중국의 대표 바둑기사 커제 9단까지 3 대 0으로 물리쳤다. 커제 9단은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국 중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커제의 울음은 사람의 두뇌가 인공지능에 패배한 상징적인 장면이 될 거예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45)은 그 장면을 보고 며칠간 멍하게 보냈다. 이어 그해 전 소장은 모교인 대구대에 강의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후배들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모습에 “우리 때보다 더 처참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지방 사립대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면서요. 기껏 20대 초반인 친구들이 그렇게 위축돼 있는 게 맞는 시대냐고요.”

후배들에게 성공 모델이 있다고 소개하고 싶었다.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전국 평생학습관에서 요청이 왔고 강의 횟수가 70회를 넘어서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아이의 미래는>이라는 책을 냈다. “교육 전공자가 아니에요. 내 얘기를 한 것뿐이죠. 저도 학원 엄청나게 다녔지만 하나도 안 남았거든요.”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못했지만 법학과에 진학해 ‘법의 이해’ 수업을 들으면서 잘하는 걸 알게 됐다.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시험이었다. A+를 받았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책 쓰는 게 꿈이었고 지금은 책을 공저까지 6권 냈으니 꿈을 이룬 거죠.”

그는 2002년 참여연대에서 처음 정보공개운동을 시작했고 2008년 정보공개 및 기록관리 전문 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만들었다. 2015년에는 협동조합 ‘알권리연구소’를 출범해 현재 대통령기록관리 전문위원, 청와대 정보공개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를 스타트업에 비유한다면 2개의 스타트업을 만들어냈고 성공시킨 셈이다.

■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라”

두 아들 키우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공부로 상처주지 말고 아이들이 무언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다르게 산다는 자부심만 있으면 늦게 일 시작해도 재밌게 살 수 있어


전 소장은 16세, 11세 아들 둘이 있지만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는다. 작은아들이 태권도학원을 다니는 정도다.

공부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으면 학원을 아무리 보내도 안 한다는 것이다. “공부로 상처주지 말고 무언가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까지 아낀 돈을 줘야겠다고 생각 중이죠.” 한 달 학원비 70만~80만원을 1년 모으면 1000만원이다. 5년만 학원에 안 다녀도 5000만원이 생긴다. “아이들 공부시키는 목적이 재능을 발견하는 것인데 우리는 재능을 죽이는 데 돈을 쓰고 있는 거예요.”

알파고가 이세돌을 물리칠 때 깨달았다. “그전에는 강남의 유치원 보내고 학원 보내고 차로 데려오고 똑같았어요. 한 달에 70만원 넘게 썼죠. 2016년부터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에게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도 안 가도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서른살 될 때까지는 기다릴 생각입니다. 저도 스물세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공부 안 하고 장사해도 되고요.”

큰아들은 집 앞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밝혔다. “저는 그게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라는 불안이 에너지가 되겠죠.”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어떤 공부를 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초·중·고, 대학교까지 한 번도 자기 인생을 실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는다. ‘유튜버’라는 직업을 몇 년 전에는 상상할 수 있었을까.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4147명을 대상으로 ‘미래에 사라질 직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1위는 번역가(31%)였고 2위는 계산원(26.5%)이었다. 5위는 비서(11.2%), 8위는 약사(9.3%)로 조사됐다. “제가 어릴 땐 말 잘하는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다고 했어요. 지금은 말 잘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죠. 저도 대중 강연을 하면서 느꼈어요.”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80%는 앞으로 필요 없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본다. 대학도 구조조정되고 있다.

전 소장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것, 사람과 교감하고 나누는 능력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집 주위에 있는 평생학습센터에 등록하라고 조언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20세까지 교육시켜서 60세까지 일을 시키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학교 지식 사용기간이 10년도 안돼요. 저는 마흔 넘어서도 책 읽는 사람들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놀고 나이 들면서 더 공부해야 해요.” 인생은 ‘맞고 틀리고’가 없다. ‘다른 것’이다. “다르게 산다는 자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 있어요. 마흔 정도에 본격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40부터 80까지 일하면 되니까 청년들에게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실패할 기회가 있어야죠”

서울 오디세이학교 수료한 양연주양·안혁군

사람을 등급화하는 학교는 싫어… 교육은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사회가 말하는 길을 못 따라갈까 걱정하지 않고 내 길을 찾는 법 배워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나서는 청소년들도 있다. 안혁군(17)과 양연주양(17)은 지난해 12월 서울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했다. 오디세이학교는 중학교 3학년 졸업생을 대상으로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1년 과정의 서울 공립학교다.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를 본떠 만들었다. 애프터스콜레는 덴마크 의무교육인 9학년 졸업 후 10학년 진학 전 학생들이 1~2년 정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학교다. 오디세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온갖 위협과 유혹을 물리치며 난파와 표류의 고비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 오디세우스의 항해처럼,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아가는 ‘교육원정대’를 뜻한다.

일반고나 자율형공립고에 학적을 둔 상태에서 1년간 배움을 거친 후 원적 학교 1학년 또는 2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다. 하자센터, 꿈틀, 서울혁신파크, 민들레 등 오랫동안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온 민간 대안교육기관들이 협력운영기관으로 참여한다. 학생들은 이 4곳 중 원하는 곳에서 수업을 받는다. 1년에 90명 선발한다.

양양은 중학교 때 사람을 등급화하는 게 싫었고 공부를 왜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중3 때 성적이 잘 나오니까 친구들이 너는 시험 못 봐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어차피 오디세이학교 갈 건데 학교 활동 열심히 한 게 아깝지 않으냐는 것이었다”며 “다들 학생회·동아리 활동을 스펙 쌓으려고 한 건데 저는 혼자 거기서 놀았구나 싶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오디세이학교를 추천하지 않았다. 안군은 “3학년 때 학생회장을 했다. 스펙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려는 의미가 컸는데 오디세이학교 간다니까 선생님들이 많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안군이 오디세이학교를 알게 된 것은 중3 때 오디세이학교 체험의날을 다녀와서다. 선생님 중 한 명이 말했다. “100년의 인생 중 한줄기 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1년 정도는 아무것도 못 찾더라도, 놀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양양은 “다들 그저 안정적으로 대학 가면 되겠지 생각하는데 오히려 교육은 실패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오디세이학교에서는 사람과 세상을 넓게 보는 법을 배웠다. 오디세이학교는 분절적 지식 체계에서 벗어나 통합적으로 배우는 ‘넘나들며 배우기’,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배우는 ‘실행하며 배우기’, 협력과 상호작용을 통해 배우는 ‘더불어 배우기’, 노작과 수행으로 배우는 ‘몸으로 배우기’로 교육과정이 구성돼 있다. 양양은 서울혁신파크에서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제품들을 만드는 ‘비전화(非電化) 공방’ 운영진을 만난 연계수업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함께 카페 벽면을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했는데 손으로 하는 것의 즐거움, 같이 노동을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다 같이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흙을 바르고 있는데 뭉클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미래가 명확하진 않다. 입시는 여전히 숙제다. “오디세이학교를 마치면서 선생님이 수능이나 입시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고 수단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열심히 하면 재밌는 걸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뜻이었죠. 기존에 사회가 말하는 길을 못 따라갈까 걱정하지 않고 제 길을 찾으러 간다고 생각하려고요.”(안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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