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인구와 도시 기능 ‘압축도시’ 전략으로 모아라

박용하 기자

소멸위기 지방도시의 해법

[다시 쓰는 인구론]흩어진 인구와 도시 기능 ‘압축도시’ 전략으로 모아라

“지방소멸에 대한 보고서를 쓴 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왜 자기 지역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못 박느냐는 항의였죠. 사실 지방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얘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표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국토교통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인구감소에 대한 지자체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는 지방의 현실인데, 대다수 지자체들은 현실을 인정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자체도 인구감소 대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인구감소에 ‘적응’하는 계획이라기보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한’ 개발계획인 경우가 많다.

■ 소멸 위험에도 개발 욕심은 여전

대다수 지자체들은 새롭고 저렴한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도심보다 땅값이 싼 외곽에 아파트를 지어 공급했다. 인구가 늘어나던 시기에는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음에도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땅을 소유한 지방의 자산가들과 건설업자들의 이익이 들어맞아 개발계획은 그치지 않았고, ‘도시가 커져야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한 지자체들도 관공서를 대거 이전해 개발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추세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국토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5~2015년 문경 등 ‘축소도시’ 20곳 중 17곳에서 녹지나 자연환경보전지역의 개발 행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원이나 삼척, 경주 등 8곳의 축소도시에서는 개발 면적 증가율이 연평균 1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도시들은 개발에 앞장서며 일부 주민들의 만족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인구감소를 막을 순 없었다. 구도심에 있던 인구가 신도심으로 일부 이동했을 뿐이다. 반면 부작용은 심해졌다.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에서 주택 개발로 외연을 넓히게 되면 신도심에 인구를 빼앗긴 구도심은 오가는 사람이 없는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상가에는 폐업이 속출하게 된다. 구도심에는 빈집 등 이용하지 않는 땅도 많아진다. 1995년 약 3만6000호를 기록했던 전국의 빈집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 2015년 100만호를 넘어섰다. 이런 빈집은 범죄에 악용되는 등 남은 주민들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 또 사람들이 흩어져 살면 주민들끼리 교류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1인 노인가구의 경우 ‘고독사’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구도심에 남아도는 시설들을 관리하는 비용은 계속 발생하는데, 외곽에 새 기반시설까지 공급하느라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시 쓰는 인구론]흩어진 인구와 도시 기능 ‘압축도시’ 전략으로 모아라

■ 인구감소에 적응하는 전략, ‘압축도시’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이 이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인구감소를 인정하고 새로운 국토·지역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압축도시 전략’이 대표적이다. 도시가 무분별하게 외곽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고, 흩어져 사는 인구와 주거·상업 등 도시기능을 주요 거점에 모으는 것이 압축도시 전략의 핵심이다. 생활 반경을 압축하면 공동화 현상도 줄일 수 있고, 인구가 집약돼 상권도 살아날 수 있다. 지방정부가 관리해야 할 지역의 범위도 줄어 재정 부담도 덜 수 있다.

압축도시 전략은 도시 외곽에 새로운 개발 사업을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도시 내에 빈집이 다수 생기는 것은 인구가 한계점에 왔다는 신호인데, 새로 집을 더 지으면 또 다른 빈집을 양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으로는 과다한 개발 행위를 제한할 수 없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에 개발을 허가하지 않는 사유가 있긴 하지만 모호하기 때문에 민간에서 신청하면 지자체가 대부분 허가하는 게 현실”이라며 “법을 개정해 불허 사유를 세부적으로 정하거나, 지자체에서 조례를 만들어 과다한 개발을 자중시키는 방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개발 사업을 제한할 수 있다면, 그 뒤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생활거점’을 정하고 도시 기능을 장기간에 걸쳐 한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 생활거점은 위치상 지역의 중심부에 있는 구도심이 될 수도 있고, 새로 도시의 핵심이 돼 버린 신도심일 수도 있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모여 살기 좋은 곳이 구도심일 경우 빈집이나 쓰지 않는 땅을 최대한 활용해 주택이나 상권, 문화시설 등이 들어서게 해야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외곽에 생기는 남는 시설물들은 철거한 뒤 녹지로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드문드문 살고 있는 주민들을 생활거점으로 어떻게 유도할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원래 살던 곳에서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센티브 등의 간접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민성희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자에게는 생활 거점의 공동주택 건설비 등을 보조하고, 주민들에게는 해당 지역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금, 상가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등의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압축도시 전략, 한국에는 언제?

압축도시 전략은 일본과 미국 등에서 시도됐으며, 인구감소를 줄이는 등 일부 효과를 보기도 했다. 일본 아오모리시의 경우 역 앞에 상업시설과 공공시설을 섞은 빌딩을 지어 도시기능을 집약했으며, 도야마시는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대중교통이 모이는 곳에 살도록 유도한 뒤 교통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폈다. 시설 재배치 등으로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도 했으나, 인구감소세가 줄어드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압축도시 전략을 두고 학계 일각에서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소규모 마을들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지방 소멸이 워낙 급격히 진행되며 부작용이 커지고 있기에 학계나 정부 모두 압축도시 전략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편이다. 박윤미 이화여대 교수는 “생활거점이 아니라 개발되지 않는 외곽 마을이 생긴다 해도 이곳에 생활 필수 시설을 충분히 지원한다면, 압축도시의 부작용은 충분히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지방도시에 압축도시 전략이 적용되기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는 압축도시 전략을 직접 추진하지 않고,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들이 압축도시 전략을 도시계획에서 일부 언급하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지자체 대다수는 개발을 제한하는 전략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 책임연구원은 “인구감소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지자체들이 도시계획 방식을 스스로 바꾸길 기다리는 것보다 새로운 전략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조직을 마련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생활 위한 시설 얼마나 필요한지, 가이드라인 만들고 지원해야

생활시설 부족 개선하려면

경영난으로 폐업한 군위군의 옛 군위병원 건물. 박용하 기자

경영난으로 폐업한 군위군의 옛 군위병원 건물. 박용하 기자


도시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택뿐 아니라 보육과 교육, 의료, 문화 등 기초생활에 필요한 시설(생활SOC)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이런 시설들은 수익성이 줄어 운영하기 어렵게 된다. 생활SOC가 하나둘 사라지면 주민들의 불편은 가중되고 인구도 빠져나갈 수 있다.

지방에서 생활SOC가 부족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10가지 생활SOC(보육시설, 노인복지시설, 응급의료시설, 일반 병·의원, 보건시설, 공공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문화시설, 공공주차장)에 닿는 시간을 지역별로 측정한 결과, 전국의 약 66만4000명은 10분 안에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 도시 근교와 농어촌 지역, 특히 ‘축소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이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 ‘압축도시’ 전략 등을 통해 드문드문 사는 주민들을 모여 살도록 유도해야 하고, 생활SOC도 이 지역에 모아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이 생활필수 시설을 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각 시설들도 운영·유지가 가능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전국 지방도시의 약 66만4000명생활
SOC 10분 안에 이용 불가능


정부·지자체 예산으로 지원 필요
민간 위탁해 지원금 주는 방법도

덜 필수적인 시설은 폐쇄하더라도
소수 주민 사회적 배려를 고려해야


문제는 압축도시 전략은 현실화되지 않는 반면, 생활SOC 부족에 따른 불편은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에선 생활SOC가 줄어들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지역을 찾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생활SOC사업 추진방안’은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정부는 지방의 생활SOC 확충에 8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에 어떤 SOC를 보완할지를 정해 오는 3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생활SOC를 효과적으로 확충하려면 우선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멸위기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떤 종류의 SOC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조정실 ‘생활SOC사업 추진단’ 관계자는 “지역의 인구수와 분포, 주요 시설까지의 거리, 주민들의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생활SOC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 지역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투입해 시설을 지원해야 한다. 충분하지 않아도 생활SOC를 이용할 수요가 있다면 시설을 새로 마련해 관에서 운영하거나, 민간에 위탁하고 지원금을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근처에 유휴시설이 있다면 정부가 시설을 사들인 뒤 개·보수해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지역은 여전히 땅값이 비싼 경우가 많다는 점, 또 인구가 줄어드는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튼튼하지 않다는 점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수요가 적어 생활SOC를 새로 짓기 힘들다면 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시설을 최대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셔틀버스나 저렴한 공공형 택시를 운영해 이동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현재 섬이나 산간 지역에는 영화상영이나 도서대여, 의료 서비스를 배달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구감소로 생활SOC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졌는데, 개선이 쉽지 않다면 이런 배달 서비스를 운영할 필요도 있다.

이용하는 주민이 적은데도 생활SOC가 운영돼 비용만 나간다면, 시설을 닫거나 옮길지의 여부도 판단해야 한다. 특히 다른 생활SOC보다 상대적으로 덜 필수적이고, 재정 부담만 가져오는 시설이 있다면 폐쇄하는 게 낫다. 구형수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방에는 이용객이 없는 곳에 대형 종합체육관이나 전시관 등을 지어놓아 지자체의 재정 부담만 주는 경우가 꽤 있다. 향후 지자체 스스로 지역 상황과 맞지 않는 시설들을 객관적으로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생활SOC를 폐쇄하는 과정에선 소수의 주민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폐교의 경우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멸위기지역에서 만난 한 교사는 “경제논리로만 보면 사람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다”며 “농촌 지역이 다른 도시 지역보다 낙후됐다고 교육받을 권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대학 폐교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지속 가능성이 없어진 대학들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폐교되고 있으나, 지역사회에선 “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폐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도 최근엔 대학 폐교에 따른 부작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대학을 지역혁신 및 지역발전을 위한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라며 “대학 폐교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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