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김기범 기자

문 닫은 부산 구포 개시장
구청·상인회, 도살 등 중단 합의
상점 17곳 폐업하며 86마리 구조
“상인들끼리도 오래 못 갈 것 체감”
모란·경동시장은 아직 지육 판매

지난달 25일, 폐업을 닷새 앞둔 부산 구포 개시장 일대를 둘러보던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택시를 타고 온 한 60대 남성이 트렁크에서 살아있는 개 한 마리를 꺼내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남성이 개를 끌고 간 곳은 개고기 판매 상점이었다. 개는 상점 뒤쪽의 도살장에서 목숨을 잃기 일보 직전이었다. 활동가들은 개 주인과 협상한 끝에 기존에 도축돼 있던 지육을 주는 대신 이 남성이 끌고온 개를 넘겨받았으며 현재 한 동물병원에서 보호 중이다. 활동가들은 이 개에게 ‘대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물자유연대는 대박이의 건강 체크가 끝나면 남양주의 동물보호소로 옮겨 보살필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부산 구포개시장 도살장 입구에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대박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달 25일 부산 구포개시장 도살장 입구에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대박이’ 동물자유연대 제공.

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대박이가 목숨을 건진 구포 개시장이 지난 1일 60년 넘는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부산 북구청과 구포가축시장 상인회가 지난 5월 이곳에서 동물 전시와 도살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상인들은 폐업하는 대신 이전할 상가가 준공될 때까지 매달 313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현재 도살장을 폐쇄하고 지육만 판매하고 있는 성남 모란시장, 현재도 운영 중인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꼽혀온 구포 개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생겼다. 1970~1980년대에는 점포 수가 60~70곳에 달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지만 폐쇄 직전 기준으로 개고기를 취급하는 상점 수는 17곳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지난달 14일 폐업을 앞둔 부산 구포개시장의 한 개고기 취급 상점 앞에 진열돼 있는 개들의 모습. 바로 옆에 도살 당한 개의 고기가 전시돼 있다. 김기범기자

지난달 14일 폐업을 앞둔 부산 구포개시장의 한 개고기 취급 상점 앞에 진열돼 있는 개들의 모습. 바로 옆에 도살 당한 개의 고기가 전시돼 있다. 김기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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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구포 개시장 상점들이 폐업하는 과정에서 구조된 개는 모두 86마리다. 이들 중 다수는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을 통해 해외로 입양될 예정이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상점 6곳, 22일 1곳이 조기 폐업에 합의하고, 당시 보유하고 있던 개들의 소유권을 동물보호단체로 넘긴 덕분에 당초 예상보다 많은 수의 개를 구조할 수 있었다.

국내 개 유통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던 모란시장과 구포 개시장의 식용견 상가가 잇따라 문을 닫는 데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시민들의 음식문화가 빠르게 달라지면서 개고기나 개소주를 찾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드는 등 수요 자체가 사라지자 상인들이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지난달 14일 구포 개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상인들끼리는 (장사를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5년 정도 남았을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둘러본 구포 시장은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 반면 개시장 쪽은 인적이 뜸했다. 부산시와 북구청이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한 것 역시 개시장을 없애는 편이 지역상권 활성화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지난달 14일 폐업을 앞둔 부산 구포개시장의 한 개고기 취급 상점 앞에 진열돼 있는 개들의 모습. 김기범기자

지난달 14일 폐업을 앞둔 부산 구포개시장의 한 개고기 취급 상점 앞에 진열돼 있는 개들의 모습. 김기범기자

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도축시설 있는 개 시장, 이제 '대구 칠성' '경주 안강' 남았다

구포 개시장이 사라지면서 전통시장 내에 도축시설을 갖춘 개고기 취급 상점이 밀집된 개시장은 칠성시장과 경주 안강시장 정도만 남은 상태다. 모란시장은 2016년 12월 성남시와 모란가축상인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도살장을 철거했고, 서울 경동시장에서는 올해 초 마지막 남은 도살장이 폐쇄됐다. 구포 개시장과 달리 모란시장과 경동시장에는 현재 개고기를 유통하는 상점 일부가 남아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오는 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12일 칠성시장 앞에서 집회를 갖는 등 전통시장 내 개시장들을 폐쇄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는 “정부는 이미 사양 국면에 접어든 개 식용 산업을 종식하는 계획을 수립해 잘못된 관행을 끝내고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불법 개도살을 엄단하는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청와대 앞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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