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시켜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니…정부는 뭐 했나”

류인하 기자

고 한성옥씨 한국으로 데리고 온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가 8월20일 서울 동대문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가 8월20일 서울 동대문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64)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고 한성옥씨(42)와 그의 아들(6)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광화문 분향소에 가지 않았다. 그는 한씨를 한국으로 데리고 온 주인공이다. 중국에서 인신매매혼 피해를 입은 탈북여성들을 구조하고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김 대표가 하는 여러 일 중 하나다. 그는 고인이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그러더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데려오지를 말았어야지. 왜 데려와서 사람이 죽는데 도와주지도 않았느냐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무슨 낯으로 거길 찾아가겠나. 통일부 사람들도 내가 오는 건 달갑지 않을 것이고…”라고 했다.

1995년 중국을 거쳐 탈북한 김 대표는 남파간첩으로 몰려 9년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 이후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거나 구출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쳐 한국 또는 제3국으로 간 탈북민은 어림잡아 6500명에 달한다.

그의 휴대전화에 등록된 탈북민이 몇 명 정도 되는지 물었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바꿨다. 지금 등록된 사람이 1309명이고, 내가 저장하지 않았는데 내 번호를 알고 전화하는 사람들 연락처까지 하면 2000명은 족히 넘는다”고 했다. 중국 국경지대에서 걸려오는 낯선 전화번호는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받았다. “내가 이것 때문에 불면증이 있다. ‘나 좀 도와주시오’ 하는 요청을 어떻게 거절하겠나”라고도 했다. 탈북민을 대신해 여러 국가기관들과 싸우다 두 차례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은 작은 비영리단체다. 정부로부터 단 한푼의 재정지원도 받지 않는다. 김 대표는 “이전 정권에서 수고비로 딱 한 번 80만원을 받아본 게 내가 정부로부터 받아본 가장 큰 돈”이라고 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탈북민이다. 그들은 무급으로 일한다. 점심은 매일 생양파와 컵라면으로 때운다. 8월 20~21일 이틀에 걸쳐 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고 한성옥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분으로 알려졌다.

“그때 성옥이가 다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서 ‘일단 동사무소로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한다는 말이 ‘이혼했다는 서류부터 내놓으라’였다. 성옥이가 ‘거기서도 못도와준답니다’라고 하기에 내가 관악구청에 전화를 했다. 관악구청 복지팀장한테 ‘(성옥이가 일을 할 수 없고, 아이가 아프다는 말이) 허위이거나 부정이면 나중에 가중처벌하면 되지 않느냐. 일단 생계가 어렵다고 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재지정을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 했다. 그러니까 복지팀장이 한다는 말이 ‘법대로 한다’는 거다. 그때부터 쌍욕이 나왔다. 싸워도 도저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통화가 끝나고 성옥이한테 ‘야, 내 힘으로는 안 된다’라고 했다. 교회 쪽도 소개했었다. 그런데 도와주는 게 없었다. ‘기도합시다’고만 했다. 성옥이는 내가 도와주면 해결될 줄 알았을 텐데 나도 안 된다 하니 그냥 맥을 놓은 것 같다.”

-왜 한씨가 숨진 지 두 달이나 지난 뒤에 발견돼야만 했을까.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나오면 보안계 경찰이 신변보호관으로 지정된다. 경찰 한 명당 40~50명의 탈북민들을 담당한다. 이 인원규모도 말이 안 된다. 경찰도 탈북민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드믈다. 성옥이가 죽은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고 하는데 그러면 성옥이 담당 경찰은 뭘 했단 말인가. 두 달 동안 자기가 담당한 탈북민이 연락이 안 되는데 전화가 끊겼으면 집에 찾아가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경찰은 뭘 했느냐는 것이다. 거기다 1년에 한 번씩 담당자가 바뀐다. 그래놓고 무슨 탈북민 신변보호를 해준단 말인가. 얼마 전에도 지방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탈북민이 여기 사람(한국인)이랑 다툼이 있어서 신변보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나 좀 도와주시오’ 했더니 경찰이 하는 말이 ‘112에 전화해봐라’였다. 신변보호관이 아니라 무슨 일 있을 때 감시만 하는 감시관들이다. 성옥이도 담당형사에게 전화해서 함께 동사무소에 갔으면 엄청난 힘이 됐겠지. 경찰은 매년 관할지역 탈북자들을 모아 사이즈도 맞지 않는 옷을 잔뜩 갖다주고는 단체사진만 찍는다. 사진 찍히는 게 싫은 사람도 있을 것 아닌가. 그것도 탈북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아이가 아팠다던데.

“걔가 둘째다. 첫째는 중국에 있고. 애가 간질(정식 병명은 ‘뇌전증’)을 앓고 있으니 성옥이가 아이를 맡겨놓고 일을 하러 다닐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서도 간질환자는 입소를 안 시켜준다고 했다. 아픈 아이를 하루종일 돌봐야 하니 일을 나갈 수가 있었겠나.”

-통일부나 남북하나재단 등에서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거기는 실적 쌓기만 하는 곳이다. 탈북민들은 무슨 법적 문제만 발생하면 나를 찾아온다. 그런데 내가 무슨 공신력 있는 기관도 아니고 나 혼자 활동하는 곳이지 단체 아니다. 내가 만약 돈을 받았으면 나는 변호사법에 걸렸을 거다. 하나재단이고, 통일부 정착지원과고, 전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공부 잘해 시험 쳐서 들어간 공무원들이지 않나. 북한 사람들의 심리도 현실도 전혀 모른다. 하나재단은 매년 270억원의 예산을 받는 곳이다. 그런데 그 돈을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다. 탈북민이 폭행건으로 법률상담을 받으려고 하나재단에 전화를 걸었더니 ‘일단 찾아오라’고 했단다. 가보니 거기 공무원이 계속 질문하면서 서류작성을 하더란다.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지 아나. ‘법률구조공단으로 가세요’였다. 법률구조공단으로 가라고 할 거였으면 우리도 인터넷 검색해서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재단에 가서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 경험담이 계속 쌓이면서 탈북민들이 재단과 멀어졌다. 처음 만들 때 취지야 좋았겠지. 성옥이는 게다가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나 재단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였다. 10년쯤 살았으면 재단이나 통일부 도움 없이 (남한 사람처럼)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부검이 끝나지 않아 아직 모자가 정식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통일부랑 관악구청에서 장례를 치러주겠다는데 하나원을 다니시는 목사님이 있어서 교회장으로 하자고 했다. 거기는 가야지.”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나재단은 수백억 원의 예산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재단을 통해 정착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탈북민이 80%가 넘는다. 탈북민들이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것들, 도움받을 수 있다는 정보가 없어 놓치는 것들을 하나재단이 적극적으로 연결해주고, 구체적 사정을 동사무소나 지자체에 알려주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탈북민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재단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 탈북민 한 명 한 명에게 묻지 않는 이상 ‘제2의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단 이사장이나 거기 사람들은 ‘우리는 탈북자들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천만에. 탈북자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지.”

한편 관악구청 관계자는 “고인이 동 주민센터에 방문해 생활이 어렵다거나, 지원요청을 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당시 담당자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2차례 방문에서 아동수당과 양육수당 신청 및 계좌변경 외에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지원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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