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청문회

‘피해구제’ 핵심 조항의 오류, 뒤늦게 수정하겠다는 환경부

김한솔 기자

‘상당한 인과관계’ 조항으로 구제 범위 좁혔던 특별법 개정해 피해자 구제 확대 추진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구제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개정을 추진한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 인정 범위를 축소·제한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일부 조항들을 뒤늦게 수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환경부가 특별법을 만들 때 피해구제 범위와 밀접하게 연관된 조항에 대해 정밀한 법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지난 27일 열린 1차 가습기살균제 청문회에서 “9월 중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된 조항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5조와 내용이 충돌하는 시행령 2조 2항이다. 이는 피해 인정 범위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조항이다. 현재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5조는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해당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당한 개연성’은 환경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해내기 쉽지 않아 도입된 개념이다.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행령 2조 2항은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피해”를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로 규정하고 있다. ‘상당한 인과관계’란 “일정한 조건에서 ‘원인’에 의해 ‘결과’가 발생한다는 관계가 확인된 것”을 말한다. 법에서는 개연성이 있으면 피해를 인정해준다고 넓게 규정해놓고는 시행령에서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확인돼야 한다고 범위를 좁혀버린 것이다.

원래 환경부가 2017년 4월 입법예고한 시행령 제정안 초안에는 ‘상당한 인과관계’ 대신 이보다 넓은 개념인 ‘관련성’이란 용어가 쓰였다. 그러나 7월 법제처와의 논의 과정에서 갑자기 용어가 바뀌었다. 당시 이 문제에 관여했던 송상훈 법제처 과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피해 범위 축소를 의미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이미 법으로 ‘상당한 개연성’이 있으면 피해 발생으로 추정한다고 했기 때문에 시행령도 당연히 그에 따라 (해석)될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서흥원 전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장도 “내용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바꾸기로) 결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실무진의 설명대로라면 시행령에 ‘상당한 인과관계’라는 표현이 있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 인정이 제한돼서는 안된다. 하지만 환경부도 해당 조항이 피해 인정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다.

박천규 차관은 청문회에서 ‘지난 2년 동안 호흡기 질환 등 다른 피해질환이 한 건도 가습기 피해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특조위원의 지적이 나오자, “공감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상당한 인과관계’ ‘의학적 개연성’ 등 용어 때문”이라며 “법을 개정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또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돼 건강이 악화된 사람이, 다른 원인에 의해 관련 질병에 걸린 것이 아닌 경우는 모두 지원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필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은 “‘상당한 개연성’ 조항은 정부 입장에서는 정부 예산과 구상권,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배상과 기금 분담금,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였다”며 “엄격한 인과관계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의미 있는 원칙인데, 어떻게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상당한 인과관계’를 썼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만약 환경부가 법을 개정하면서 ‘상당한 인과관계’만이 아니라 ‘상당한 개연성’ 문구까지 손을 댈 경우 오히려 피해 인정 범위를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열린 2차 청문회에서 황 위원이 이 같은 우려를 제기하자,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법 조항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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