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법’은 차별금지법이어야 한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여성혐오는 가려진 채 왜곡된 논의 이어지는 ‘최진리법’

왜곡된 이름은 왜곡된 논의로 이어진다. ‘설리’라는 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가수 최진리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이후, 악플에 대한 방지 대책이 소위 ‘설리법’이란 말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15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진리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선 인터넷 포털 기사에 대한 댓글 실명제와 무책임한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자격 정지를 요청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21일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박대출 의원은 직접 설리의 이름을 언급하며 인터넷 준실명제 발의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악플이 고인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설리법’은 잘못된 명명(命名)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인을 괴롭힌 것이 단지 연예인에 대한 악플로만 규정되면 유독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한 잣대와 여성혐오적 통념의 문제가 지워진다. 둘째, 현재 논의 중인 인터넷 준실명제는 실제로 악플을 줄이는 효과보단 정치적 의견 개진의 자유를 위축시킬 확률이 더 높다. 셋째, ‘설리법’이란 이름을 붙여 입법까지 밀어붙여 마땅할 차별금지법은 정작 논의되지 않고 있다. 마치 악플 방지법이 고인의 유지라도 되는 것처럼 이름이 수없이 인용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죽음으로부터 배우고 반성해야 할 것들은 논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개인에 대한 애도로서도, 사회에 대한 개선 요구로서도 미덥지 못하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설리법’은 차별금지법이어야 한다

댓글 실명제 요청하는 국민청원…국회서도 인터넷 준실명제 발의 준비
‘연예인에 대한 악플’로 문제 규정 땐 여성 연예인에만 가혹한 잣대, 여성혐오도 지워져
실제 악플 줄이는 효과보다 정치적 의견 개진 자유 위축시킬 우려도
‘차별주의 대 개개인의 평등한 권리’로 전선 재정비해야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인의 죽음으로부터 사회 개선의 논의를 진행한다면, 핵심은 혐오 생산과 확산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처음 ‘설리법’을 제안한 국민청원에서 규제의 대상으로 악플러와 기자를 지목한 이유는 그래서 꽤 명확하다. 이들이 고인에 대한 혐오의 재생산에 공모했기 때문이다. 대상 A가 도덕적인 잘못은 없지만 누군가의 마음엔 들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의 기분을 근거로 A를 성토하는 말들이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물 형태로 등장하며, 그런 가치 없는 말들을 연예매체는 ‘네티즌 의견’이란 이름으로 인용해 기사화한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A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지만, 기사는 이를 A를 둘러싼 ‘논란’이라 이름 붙인다. 이러한 ‘논란’ 기사엔 다시금 A에 대한 비난의 댓글이 달리며, 이 댓글은 또다시 ‘논란’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한다. 이러한 공모가 한 사람을 코너로 몰아넣는 건 금방이다. 이에 대해 악플러와 기자 개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인터넷 실명제나 준실명제는 혐오의 고리를 끊는 효과적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당장 얼굴을 드러내놓고 여성혐오 콘텐츠를 내놓으며 따봉을 받는 악성 유튜버들을 보라. 반대로 혐오에 대항하는 목소리 중 상당수가 익명성에 기대 용기를 내는 것도 사실이다. 악플이 종종 익명성에 기댄 비겁한 행위이긴 하지만 여기에 얼굴을 드러낼 용기가 더해진다고 옳은 일이 될 수 없는 것만큼, 익명성에 기대야 겨우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이 모두 비겁한 것도 아니다. 말하는 행위 전체에 대한 부담감을 늘리는 방식보단, 단지 말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폭력으로서의 혐오발화 범위를 설정하고 금지하는 것이 더 온당하고 더 효과적이다. 즉 표현의 자유 전체를 위축하기보단,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될 수 없는 발화를 걸러내야 한다.

논의의 중심을 악플에서 혐오발화로 옮길 때의 장점은 뚜렷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차별이라는 맥락에 근거해, 대상에 대한 단순한 비난과 대상의 실존적 삶을 억압하거나 위협하는 발화를 구분할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가령 고인의 경우 고작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본인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플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개인에 대해 다수가 비난하고 분노했다는 것보다 중요한 건, 부당한 이유로 누군가의 실존적 선택을 부정하고 통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리 개인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특정 범주 전체에 대한 차별적 요구이기도 하다. 혐오발화를 하는 차별주의자들과 동조자들은 ‘너(여기엔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만 바뀌면 모두가 편한데 왜 이기적으로 굴어?’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개인의 자주적 삶을 일탈로 규정해 그 개인이 속한 특정 범주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고인은 누구보다 이것을 잘 이해했다. 그는 JTBC2 <악플의 밤>에서 “제가 무서워하고 숨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의 노브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넘어, 여성들이 브래지어로 가슴을 가리고 흉부를 조여야 한다는 차별적 통념 전체를 문제 삼았다. 여기서 전선은 익명의 대중 대 연예인이 아닌, 차별주의 대 개개인의 평등한 권리로 재정립된다. 당연히 ‘설리법’은 차별금지법이어야 한다.

당장 인터넷 준실명제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포털 기사 댓글창 폐쇄 역시 혐오발화의 맥락에서 검토할 때 더 강한 정당성을 얻는다. 고제규 ‘시사IN’ 편집장은 ‘‘설리법’을 만들지 말자’는 제목의 에디토리얼에서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난은 혐오의 배출구”라 규정하며 “포털 사이트의 뉴스 댓글난 자체를 없애고 해당 언론사를 방문해 댓글을 달게 하는” 방법을 ‘설리법’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조금 부연하자면 포털 댓글난은 혐오의 배출구를 넘어 혐오의 결집 장소가 되고 있다. 당장 네이버의 해외축구 기사 댓글에선 기사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성혐오 발언들을 심지어 베스트 댓글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특정 인물을 향한 악플이 아니더라도 그 해악은 명백하다. 혐오표현 규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법학자 제러미 월드론은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에서 “혐오표현의 공표, 즉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이러한 상징과 낙서를 드러내는 행위는, 그 행위가 표현하는 태도들의 확산과 조직화를 위한 중심을 제공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쓰레기들을 금과옥조처럼 모아 ‘의견’이랍시고 인용하는 기사들과 그 기사들에 붙은 또 다른 혐오발화들, 그리고 그것을 ‘댓글 많은 뉴스’, ‘많이 본 뉴스’, ‘공감 많은 뉴스’ 같은 이름으로 분류해 더 많이 노출시키는 포털의 공조를 통해 혐오는 응집 및 과대표되고 공공선에 대한 우리의 암묵적 믿음과 합의를 위협한다. 차별금지법이 혐오표현 자체에 대한 규제라면, 포털 댓글난 폐쇄는 차별주의자들이 혐오를 확대 재생산할 장소를 일시적으로나마 막아두는 것이다.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 소각할 수 없다면, 적어도 길거리엔 못 버리게 해야 한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설리법’은 차별금지법이어야 한다

물론 당장 차별금지법과 포털 기사 댓글난 폐쇄가 결정된다고 고인이 생전에 겪었던 수많은 불합리가 모두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정치적 문제해결 능력은 파산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의 세상은 불완전해서 비극을 통해서만 비로소 깨닫고 배울 때가 있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부터도 배우지 못한다면 끔찍하고도 역겨운 일이다. 보수 기독교계를 비롯한 차별주의자들의 표가 빠져나가는 게 두려워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거나 외면하는 정치권이 당장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는 데나 좋을 인터넷 실명제에 고인의 이름을 붙여 정당화하는 걸 가증스럽게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포털 기사 댓글난 없이도 얼마든지 개인의 의견을 표출할 통로가 있음에도 포털이 기사 댓글난을 포기하지 않고 유독 연예기사의 댓글 수와 공감 수로 클릭을 유도하는 것에 대해 혐오 장사가 아니라고 선해해 줄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하지 않는가. 애도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실천이며 어떤 애도는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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