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소정 기자 “앵커 50일, 내 점수는 53.5점…김정은에 송곳 질문 해보고 싶다”

김민아 선임기자

지상파 간판뉴스 첫 여성 메인 앵커 KBS 이소정 기자

KBS <뉴스9> 메인 앵커를 맡고 있는 이소정 기자가 지난 15일 뉴스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44세인 그는 “전통적 메인 앵커들에 비해 연륜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두세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KBS <뉴스9> 메인 앵커를 맡고 있는 이소정 기자가 지난 15일 뉴스 스튜디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44세인 그는 “전통적 메인 앵커들에 비해 연륜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두세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중”이라고 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처음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감
열흘간은 밥도 안 들어갈 정도
‘평정심 유지하게 해주세요’
뉴스 전 기합 넣고 기도하기도

뭐든지 조금씩 늦었다. 대학 입시에선 재수했다. 졸업 후 케이블방송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뒤늦게 지상파 방송사 공채를 준비했다. 가까스로 입사에 성공했을 때 만 27세. 여자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KBS <뉴스9> 앵커 이소정 기자(44)다. 지난해 11월25일부터 앵커석에 앉은 이소정은 ‘지상파 최초의 간판뉴스 여성 메인 앵커’다. 삼겹살집에서 저녁 먹다 앵커 발탁을 통보받은 그는 ‘보도본부장이 지금 농담하시나?’ 싶었다고 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와 KBS <뉴스9>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 <뉴스9> 앵커석에 앉은 지 50일이 넘었습니다.

“저녁 8시45분 스튜디오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되나?’ 싶을 때가 있어요.”

- 아직도요?

“앵커 통보를 받은 게 갑작스럽기도 했고…. 첫 여성 메인 앵커라는 무게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먹는 낙으로 사는 사람인데 (앵커 맡고) 처음 열흘간은 밥도 안 들어가더라고요. 지금은 조금씩 적응해가는 단계입니다. 8시45분에 카메라감독님과 함께 들어가서 (뉴스에 앞서 방송되는) 일일드라마 끝부분 보며 웃기도 하고 ‘무사히 갑시다’ 하며 스스로 기합을 넣기도 해요. 제가 가톨릭 신자여서 성호도 한 번 긋고요.”

- 어떤 기도를 하나요.

“돌발상황이 생기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주세요, 시청자와 눈을 잘 맞추게 해주세요…. 사실 신실한 신자는 아닙니다만(웃음).”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됩니까.

“오전 10시쯤 출근해서, 각 부서 취재계획을 살펴보고, 신문을 골고루 읽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해당 부서 가서 물어보고, 원래 알던 취재원에게 전화 걸고, 전문가 찾아 자문도 구하고요. 오후에는 2시30분 열리는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이후엔 ‘변신’하죠.”

이소정은 방송용 의상으로 갈아입고 머리 손질·메이크업 받는 과정을 ‘변신’이라 했다. 여성 앵커이다보니 “들리는 이야기가 하루에도 50만가지는 된다”. 특히 머리·화장·옷 이야기가 많다. 가능한 한 무뎌지려 한다. 시청자는 뉴스가 궁금해서 볼 뿐, 앵커가 궁금해서 보는 건 아닐 거라고 여긴다.

- 뉴스 전에 저녁은 먹나요.

“오후 4시쯤부터는 정신이 없어요. 뉴스 큐시트가 계속 바뀌기도 하고, 최근의 국회 상황처럼 중계차를 연결할 일이 생기면 더 긴장해야 합니다. 저녁은 거의 못 먹어요. 주전부리로 때우다가, 뉴스 끝나고 나면 먹지요. 퇴근하면 밤 12시 가까이 됩니다.”

- 집에 가도 바로 잠이 안 오죠.

“맞아요. 실수한 것, 아쉬운 것이 자꾸 생각나고, 다른 방송사 뉴스 찾아보고 해요. 새벽 2시쯤 자고, 오전 7시반쯤 일어나서 유치원 가는 아들 챙겨줘요.”

- 사내외에서 조기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본인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고 싶습니까.

“53.5점요.”

- 60점 아래는 낙제 아닌가요.

“제가 뭐든지 조금 늦어요. 대학도 재수했고, KBS 입사도 늦었고요. 앞으로 조금씩 높여가려고요(웃음).”

- 스스로 평가할 때 비교적 잘하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은 어떤 겁니까.

“밀림에 숨어 있는 멕시코 농민 반군을 찾아나서거나, 북·중 국경을 몰카 들고 뒤질 때나, 취재할 때 겁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생방송할 때도 떨거나 긴장하지 않고요. 부모님, 옆집 아저씨, 친구, 조카와 ‘이야기’한다는 생각으로 방송해서인지 편안하다, 친절하다고 칭찬해주는 시청자들이 계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전통적인 메인 앵커들에 비해서는 연륜이 부족한 게 사실인지라 두세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둔기부터 송곳까지, 다양한 연장을 준비하고 벼리는 중입니다.”

전통미디어 입지 좁아져가는 때
앵커는 우직하게 사실 쌓아올려
시청자와 어젠다 고민하는 역할
생방송 떨거나 긴장하지 않아
부족한 연륜 채우려 채찍질 중

2003년 입사한 이소정은 사회·문화·국제·경제·통일외교부 등을 두루 거쳤다. 국제부 시절엔 멕시코 반군 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를 단독 인터뷰해 ‘2006년 올해의 여기자상(한국여기자협회 선정)’을 받았다. 스페인어를 전공해 중남미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이소정은 1999년 멕시코를 여행하며 사파티스타에 대해 알게 됐다. 관심의 끈을 계속 놓지 않고 있다가 국제부에 배치된 후 세계적 특종을 낚았다.

- 최근 JTBC <뉴스룸> 앵커에서 물러난 손석희 사장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랜 레거시 미디어(전통적 매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저는 이제 카메라 앞에서 물러설 때가 됐다.” 레거시 미디어의 입지가 좁아져 가는 때에, 레거시 미디어의 전형인 KBS 뉴스와 이를 진행하는 앵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레거시 미디어의 예전 모습이 ‘가르치는 듯한’ 쪽이었다면, 이제는 ‘같이 손잡고 가는’ 방향으로 ‘뉴 이어러(New Era·새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뉴스란 무엇인가, 기본으로 돌아가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앵커는 우직하게, 사실을 쌓아올리며, 무엇을 어젠다로 만들지 시청자와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 지난 7일 KBS <뉴스9>에서 내보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인터뷰가 논란이 됐습니다. 남북관계, 호르무즈 파병 등 인터뷰 내용이 미국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비판을 받았는데요.

“후배 기자가 어렵게 섭외한 단독 인터뷰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핵심은 기자가 인터뷰하는 방식과 보도하는 방법에 대한 기준 같습니다. 최근 저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했습니다. 추가 질문을 준비했지만, 돌발 질문에 모호하게 답하는 경우도 많았고, 시간 제약 때문에 보도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자들은 인터뷰를 하고, 거기서 중요 부분을 뽑아 팩트(사실)를 보도해왔죠. 점점 해석과 판단 등 더 많은 부분을 원하는 것 같아 저희 기자들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앵커석으로 향하는 이소정의 뒷모습이 출진(出陣)하는 전사 같다.  김정근 선임기자

앵커석으로 향하는 이소정의 뒷모습이 출진(出陣)하는 전사 같다. 김정근 선임기자

- 앵커로서 생방송 인터뷰를 꼭 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습니까.

“희망사항입니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서 송곳 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전 세계가 갈라지고 분열돼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진정한 ‘어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얼마 전 교황이 자신의 손을 잡아당긴 여성에게 화를 냈는데, 그 사연도 직접 듣고 싶네요.”

‘메인앵커 이소정’의 등장은 기존의 ‘나이 든 남성 앵커-젊은 여성 앵커’ 구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양승동 KBS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오여삼(남성 앵커는 50대 이상, 여성 앵커는 30대 이하)’ ‘남선여후(남성 앵커가 먼저 발언한 뒤 여성 앵커가 발언)’ ‘남중여경(남성 앵커가 중요한 이슈를, 여성 앵커가 가벼운 이슈를 소개)’ 등의 관행 개선을 촉구했다. KBS가 이소정을 간판뉴스 메인앵커로 발탁한 후 JTBC에서도 여성인 한민용 기자를 주말 뉴스룸 단독 앵커로 기용했다. 변화의 단서가 보이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남오여삼’ 등 기존 구도 바꿔
방송사도 조금씩 변하는 분위기
남자든 여자든 언론인 꿈꾼다면
뭐든 선 긋지 말고 덤벼봤으면

- 해묵은 관행을 바꾸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우선 여성 기자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여성 기자, 남성 기자 구분할 필요가 없도록요. 제가 입사했을 때 최고참 여성 선배가 밥을 사주며 ‘무조건 버티라’고 하신 게 기억나요. 펄펄 날아다니던 여자 선배들이 중간에 (육아 문제 등으로) 그만둘 때는 정말 슬펐습니다.”

- 방송사의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부분 아닐까요.

“회사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기자도 <뉴스9> (진행)하는구나…. 이렇게 하나씩 바꾸다보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젊고 예쁘고 꽃 같은 이들이 앵커를 맡는 게 아니라, 기자로 차근차근 성장해온 이들이 맡는 쪽으로요.”

- 시청자에게 어떤 앵커로 남고, 기억되고 싶습니까.

“이소정 개인은 모르셔도 됩니다. 대신 제가 하는 KBS 뉴스를 통째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촌므파탈’ 용식이(강하늘)처럼 든든하고 신뢰할 수 있는 KBS 9시 뉴스 속에서 기억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꿈이 너무 큰가요?(웃음)”

- 후배 여성 기자들, 예비 여성 언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앵커가 된 후 ‘막내급’ 여자 후배들이 저를 응원하며 이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마흔 넘고 쉰 넘으면 (회사에서) 내 쓰임이 뭘까 고민했는데, 선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 스스로 미리 한계를 긋지 말았으면 합니다. 언론인을 꿈꾸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대학(학벌)이 이러니까, 환경이 이러니까…선을 긋지 말고 덤벼봤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사회 나오면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으니까요.”

카페에서 이소정은 톤이 낮았다.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확 달라졌다. 스튜디오를 지배했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