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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용기로 내딛은 한발…더는 ‘사회적 합의’ 뒤로 미뤄선 안 돼
지난 14일 오후,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동료들과 함께 국회 국민청원 동의 숫자를 지켜봤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국민청원)에 찬성한 사람이 국회 소관상임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새로고침’을 누르던 동료가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오후 4시42분, 10만명의 동의가 채워졌다. 국민청원이 시작된 지 22일 만이다. 잠시 박수치고 환호했다. 곧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2007년 첫 발의·폐기 다섯 번·철회 두 번…마침내 시민의 힘으로 법사위 테이블에 올려“먼저 떠난 성소수자·노동자·난민…오늘을 함께 맞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차별을 가시화한 이들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핑계와 후퇴 없이 제대로 된 논의할 때”“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쁜 순간에 ‘슬픔의 현장’들이 생각났어요.”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다 먼저 세상을 등진 이들의 장례식장, 그곳에서 눈물짓던 얼굴... -
임명묵 “90년대생에게 ‘공정’은 가치·논리보다 감각적·반사적 반응에 가까워”
불안·위축의 결과물로 개혁이든 특혜든 ‘시스템 교란’에 경계심K방역, 자유주의 지키면서 안전·편의 지켜낸 것처럼 말하는 모순자유와 편의성 등 가치 충돌 재연될 텐데 무엇 선택할지 생각해야21세기 한국은 접두어 ‘K’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K팝, K드라마, K뷰티, K방역에 이어 K할매, K장녀까지….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한국적인’ 그 무엇을 설명할 때 ‘K’는 유용하다. 1994년생 임명묵(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은 이 같은 ‘K열풍’의 명암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야심찬 작업에 도전했다. 그 결과물로 펴낸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는 키워드 ‘K’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파헤친다. 임명묵은 K가 상징하는 자부심과 그 뒤편에 숨은 스트레스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특질”이라고 말한다. 90년대생·코로나19 방역·민족주의와 다문화·86세대·입시와 교육 등 전혀 달라 보이는 다섯 가지 영역을 촘촘하게 연결시킨 그의 솜... -
오늘도 벽을 탄다, 이 짜릿한 성취감 ‘터치’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비가 와서 몸이 찌뿌드드하다”는 빈말 한마디 없다.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손가락 보호용 테이프를 감고 스트레칭을 준비했다.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냅다 벽을 타는 이도 있었다. 3월 말부터 강습을 받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 기초반 회원들이다. 회원 16명은 지난 2개월 동안 주 2회, 기초 과정을 함께 익히며 돈독해졌다. 스트레칭을 마친 회원들은 3~4명씩 팀을 이뤄 강사가 지정해준 벽면의 홀드를 잡고 벽을 올랐다. 다양한 색의 홀드 중 이번 문제는 보라색. 호기롭게 먼저 나선 양정현씨가 보라색 홀드를 점선 삼아 연결하듯 잡고 디디고 오르더니 이윽고 최종지점(Top) 홀드에 양손으로 매달렸다. 1, 2, 3초 성공! 이어 양씨는 자신이 어떤 루트로 올랐는지 팀원들에게 브리핑했다. 노하우를 공유한 뒤에는 출발 지점에 선 회원을 잡아주고 격려했다. 뒤에서 영상을 찍어주기도 했다. “파이팅... -
굿바이 장도리... 박순찬 화백이 직접 뽑은 ‘장도리 10선’
경향신문 1995년 2월6일자를 들춰본다. “새 시사만화 장도리 오늘부터 연재.” 1면 사고(社告)이다. “신예 박순찬 화백 촌철살인 풍자”라는 작은 제목이 이어진다. 장도리 26년의 시작이다.익숙하면서도 낯선 박순찬이 보인다. 1994년 경향신문 최초의 만화가 공채로 들어왔다. 당시 만 25세. 이 신문 사상 최연소 화백이다. 연세대 만화동아리 ‘만화사랑’에서 노동운동 관련 만화와 유인물과 걸개그림을 그렸다.사고는 “신세대 감각이 뛰어난 신인”이라고 소개한다. “평범한 봉급생활자 ‘장도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 연재만화는 그날그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네 컷의 그림과 짤막한 대화 속에 압축시켜 독자에게 전달해드릴 것”이라는 글이 세로쓰기로 나온다. 23면 첫회로 이동한다. “자네 목욕 안 하나?” 때가 온몸에 묻은 한 인물이 “그런 일로 물을 낭비할 순 없죠”라고 답한다. 또 다른 인물은 “배 속에 있는 물도 버릴 수 없다”며 요의를 참는다. 난해... -
‘인생기술자’ 도대체 작가의 '일상에서 귀여움을 발견하는 법'
2019년 3월1일 홀연히 토요판에 나타나 ‘그럴수록 산책’을 권하던 캐릭터가 있다. 산책길 철쭉 화단 앞에 핀 민들레보다 철쭉 덤불 사이에서 자라는 민들레의 키가 더 크다는 걸 발견하고서는, ‘운 나쁘게 그 자리에 떨어졌지만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려고 용을 썼구나’ 감정이입을 한다. 길에서 만난 작은 생명체, 별스럽지 않은 일상에서 웃을 거리를 찾아내고,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잘한 거라며 스스로를 도닥인다. 머릿속에만 맴돌 뿐 콕 집어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일상의 감정을 8컷 안에 담아내는 통찰력은 도대체 작가 만화의 백미로 통한다.그동안의 산책 일화에 에세이를 더해 이달 초 출간한 <그럴수록 산책>은 2주 만에 중쇄에 들어갔다. 지난 2년간 경향신문 토요툰을 연재해온 도대체 작가는 야외배변을 고집하는 반려견 태수(네이버 동물공감 만화 ‘태수는 큰형님’의 주인공) 덕분에 하루 네댓 번 산책을 하고 있다며 가무잡잡, 건강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 -
‘20대 남성 힘드니 여성도 군대가라’ 말고 “평화에 기회를 주세요”
모두가 평화를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까지 ‘평화’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평화는 헌법에도 등장한다. 평화적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그런데 과연 강한 군대만이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 진정한 평화란 무엇일까?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군 복무 때문에 20대 남성이 힘드니 여성도 군대에 가라는 식의 주장으로 ‘성 대결’ ‘불행 경쟁’을 몰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평화는 먼 이야기로 비쳐왔다.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시민단체 ‘전쟁없는 세상’ 사무실에서 이용석씨(41)를 만났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이면서 평화운동가인 이씨는 최근 책 <평화는 처음이라>를 펴냈다. ‘어떻게 하면 평화운동을 더 많이 알릴 수 있을까, 시민들이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만들까’라는 생각에서 쓴 책이다.... -
길은 막혔어도 여행 갈 수 있어, 문화원은 열려있으니까
온라인으로 배우는 인도 전통무용과 노래터키식 피자 ‘피데’ 만들며 체험하는 음식예절…“이럴 때일수록 ‘마음 여는 일’ 더 소중해”“랑그 바르세 비게 쭈나르 왈리, 랑그 바르세.”지난 24일 저녁,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타고 한국인이 부르는 인도 노래 ‘홀리 송(Holi song)’이 울려 퍼졌다. 주한인도문화원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힌디(Hindi) 노래 수업이다. 수강생인 고모씨가 몇 소절씩 끊어 부르면, 강사인 아비짓 차크라바티가 중간중간 주의할 점을 일러주며 음을 교정했다. 강사와 고씨가 함께 한 소절씩 되짚어 부르는 동안 노래가 언어도,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을 연결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여행자들을 멈춰 세웠다. 흐릿해지던 국가 간 경계가 견고해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다반사’였던 이국으로의 여행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 됐다. 나와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직접 몸을 담가보는 경험이 막혔다. 이런 때에도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 -
경비·청소·의료·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찾아왔다···노동평등세상 아직 멀기에
사진으로 기록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6개월반세기가 흘렀다. 청년 전태일이 뛰어다니던 복개천은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며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제 몸을 불살랐던 그의 몸은 거인이 되어 평화시장 앞을 흐르는 청계천을 바라보고 있다. 각혈로 핏덩이를 토해내던 여공들이 일하던 평화시장은 이제 정말 평화를 찾았을까?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전태일 동상 앞에서 영화배우 조진웅이 <전태일 평전>을 낭독했다. 그 역시 몸뚱이로 ... -
‘의문사’ 김 일병…46년 만에 죽음의 퍼즐 맞춘 사람들
1974년 12월14일12년 전 탈영했다는 이유로처와 자식이 있던 36세 청년이 헌병대에 끌려갔다체포 하루도 안 돼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이틀 뒤인 12월 17일 사망사망경위서에는 ‘뇌출혈에 따른 뇌부종 및 호흡정지’군은 그가 ‘병사’했다고 했다1962년 김모 일병이 탈영했다. 건설현장 등지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내와 함께 자녀를 길렀다. 12년 뒤인 1974년 12월14일, 헌병대가 집에 들이닥쳤다. 김 일병은 육군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현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대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다음날인 15일 점심 무렵 바로 국군수도통합병원(당시 서울 영등포구 등촌동)으로 이송됐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구토 및 전신경련으로 쓰러졌다. 이송 당시 이미 위중한 상태였다. 당직 군의관의 수술 시도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뇌출혈에 따른 뇌부종 및 호흡정지로 17일 사망했다.체포에서 이송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 -
안익태 공과 평가 과정도 없이…매번 ‘진영 갈등’에만 머물러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애국가” 김원웅 광복회장이 불 댕겨 보수 진영 “좌파의 적폐 몰이” 여권 “친일 청산에 반대하나”‘애국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의혹이 도마에 오르면서 ‘친일 청산’과 ‘적폐몰이’ 양론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념 대립 속에 소모적 갈등이 빚어진다는 점에선 예년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 이후 재개됐고, 광복회가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는 측면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애국가 논쟁은 2006년 독일 유학 중이던 송병욱씨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국내에 알리면서 시작됐다. 송씨는 안익태가 1942년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 연주회를 지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논문을 통해 애국가의 원곡인 ‘한국환상곡’이 만주국 축전음악의 일부 선율과 흡사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애국 음악가’ 안익태의 신화가 흔들리면서, 친일 인사가 만든 애국가를 아무런 문제 없이 불러도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