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판결 후 재판부에 들려온 말 ‘윗분들이 화가 많이 났다’

이혜리 기자

‘윗분들이 화가 많이 났다. 알고 있어라.’

2015년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재판장이던 반정우 판사는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1심에서 각하 판결을 선고한 뒤 조한창 당시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반 판사가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다.

■각하 판결에 법원행정처 대책 논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하면서 이 결정에 따라 통진당 국회의원도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의원 지위를 확인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법원에 냈다. 법원행정처는 이 소송을 법원이 헌재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법원과 헌재의 권한 분쟁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지만 통진당 사건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간 주요 쟁점이던 한정위헌(헌재가 법원의 법률 해석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것)이나 재판소원(헌재가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것)은 헌재가 법원을 심사하는 구도였는데, 통진당 사건은 반대로 법원이 헌재를 심사하는 구도였다. 법원에 헌재 결정에 대한 판단권한이 있다고 인정될지 여부가 법원행정처 입장에선 중요했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가 법원에 판단 권한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각하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구체적인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소송을 끝내는 것이다.

2014년 12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에 항의하며 김재연 전 의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12월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에 항의하며 김재연 전 의원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헌재 관련 업무를 했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3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을 때, 양 전 대법원장이 각하 판결이 나왔다는 보고를 받고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도 ‘법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결한 게 맞느냐’며 놀란 반응이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재판부에 직·간접적으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반 판사는 조 판사로부터 ‘어려운 사건을 하느라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윗분들이 화가 많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질책은 아니었다고 했다. 반 판사는 ‘윗분들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마음이 어땠느냐. 지나가는 말로 들었느냐, 진지하게 들었느냐’는 임 전 차장 측 변호인 질문에는 “(조 판사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저는) 그냥 들었다”고 했다.

통진당 사건의 주심이었던 서범욱 판사는 14일 증인으로 나와 김문석 당시 서울행정법원장이 회식 자리에서 ‘왜 그렇게 판결했느냐, 반 판사가 시키더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김 원장이 통진당 사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김 원장이 통진당 사건의 각하 결론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이해하고 ‘합의해서 결정했다’고 답했다고 했다. 서 판사는 각하 판결 이후 반 판사로부터 ‘판결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다만 조 판사와 김 원장은 증인신문에서 자신들이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판사 인사권은 대법원장에게 있고, 평정은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가 매긴다. 판사들이 윗선 눈치를 보는 법원 내 관료화가 ‘양승태 대법원’ 때 문제로 지적됐다. 1심 판결 이후 법원행정처는 2심 재판을 놓고 대책을 논의한다.

■말한 사람은 있는데 들은 사람은 없다?

임 전 차장 공소사실을 보면 통진당 사건의 1심 재판 과정에서 조 판사가 ‘각하는 부적절’이라는 법원행정처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하고, 이를 반 판사가 검토한 행위가 직권남용죄 성립 요건인 ‘의무 없는 일’로 구성돼있다. 검찰은 반 판사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도 방해됐다고 주장한다.

법원행정처 입장이 과연 재판부에 전달됐느냐는 대목에서 말이 엇갈린다.

조 판사는 사법농단 재판에 여러 차례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2015년 5월 이규진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법원행정처 문건을 받았고 문건은 파쇄했지만, 그해 6~7월 회식자리에서 반 판사에게 ‘각하 등에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검토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법원행정처가 각하 결론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점을 반 판사에게 전달하고자 했느냐’는 검사 질문에 조 판사는 “넓은 의미로 보면 맞다. 각하는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반 판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조 판사는 당시 부담도 느꼈다고 했다.

반면 반 판사는 조 판사로부터 통진당 사건과 관련해 그런 말을 들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증언한다. 반 판사는 “기억에 없는 것을 물으니 답하기가 어렵다”면서 “(조 판사가) 말 안 한 것을 말했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말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말했을 텐데 (들은 입장에서는) 기억에 남아있는 게 없다”고 했다. 반 판사는 “당시 회식을 많이 했고, 어떤 회식을 말하는 것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법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법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법원행정처의 입장 전달 시도와 별개로 재판부는 통진당 사건을 심리하면서 이 사건에 헌재와 법원의 권한 분쟁 문제가 결부돼있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었다.

반 판사는 통진당 사건을 심리하기 전에 사법제도비교연구회 모임에서 통진당 사건과 대법원·헌재의 권한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서 판사는 “대법원과 헌재 판례를 공부하다보면 (두 기관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며 “(통진당 사건을) 합의할 때 대법원과 헌재가 권한이 중첩되는 부분에서 갈등되는 판례를 계속 내고 있으니 이 판결 결론에 따라서 그런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은 말했다”고 했다. 이들은 재판 바깥에서 부적절하게 권한 분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고, 재판부 판사 3명이 모두 합의에 참여해 논의한 끝에 각하 결론을 도출했다고 했다.

임 전 차장 측은 해당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재판했다고 강조하며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이 없었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권한 분쟁 문제를 알면서도 각하 판결을 했는데 법원행정처가 이 판결이 잘못됐다며 대책을 논의한 게 잘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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